[아도와 구미 선산] 신라불교의 출발지 도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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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와 구미 선산] 신라불교의 출발지 도리사
  • 주수완
  • 승인 2023.09.22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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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불교의 승부사, 아도화상
도리사 석탑(보물).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지만, 그 형태가 마치 통도사 금강계단을 닮았다. 이 특이한 탑은 도리사가 단순한 사찰이 아니라, 신라불교 초창기에 통도사 역할을 했던 핵심 사찰이었음을 간직한 흔적이라 볼 수 있다. 

 

아도화상은 누구인가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한 것으로 알려진 아도화상(阿度和尙)의 행적은 『삼국유사』, 『해동고승전』, 『수이전』 등에 전하고, 이를 종합한 듯한 내용이 선산 도리사(桃李寺)의 「아도화상사적비」에 기록됐다. 그러나 기록마다 스님의 활동 시기가 다르고, 때로는 신라에 불교를 전파한 묵호자(墨胡子)와 같은 또 다른 스님의 행적과 겹치기도 한다. 때문에 아도화상이 과연 실존했던 인물인가 의심을 받기도 한다.

모든 내용을 종합해 보면 아도화상은 처음으로 신라에 불교를 전한 스님은 아니었다. 이전에도 불교를 전하기 위해 고구려에서 파견된 스님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실패했고, 결국 아도 스님이 이를 성공시킨 것이다. 

그 과정은 크게 두 단계를 거쳤다. 첫 단계는 향(香)과 관련 있다. 중국에 다녀온 사신이 선물로 향을 받아왔는데, 왕실에서 그 사용법을 몰라 전국을 돌며 수소문했다. 그때 마침 아도 스님이 향 사용법을 알려주면서 신라 왕실에 불교의 존재를 알린 것이었다. 두 번째 단계는 공주가 병들었을 때의 사건이다. 아무도 고치지 못한 공주의 병을 아도 스님이 고쳤고, 그 대가로 경주에 흥륜사 창건을 허락받은 것이다. 이 흥륜사 창건 과정에서 이차돈의 순교가 있었는데, 이로 인해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게 됐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아도 스님이 신라에 불교를 전래한 시기는 신라 미추왕, 눌지왕, 법흥왕 시절 등 달리 기록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중국에 다녀온 사절단이 향을 가지고 왔다’는 사실과 흥륜사 창건이 아도 스님과 밀접하게 연관되므로 이 무렵을 아도 스님의 실제 활동 연대로 추정해 서술한다. 

우선 신라가 중국에 사절을 보낸 시기는 521년 양나라가 처음이었는데, 향은 이때 받아왔을 것이다. 또한 이차돈의 순교가 527년에 일어난 사건이었으므로, 실제 아도 스님의 포교 활동 시기는 6세기 초 무렵이었음을 알 수 있다. 모두 법흥왕 때의 일이다. 마침 경주 흥륜사 금당에는 신라불교를 이끈 스님과 불교인 열 분의 초상조각이 모셔져 있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이 보이는데, 그 처음이 아도 스님이고 두 번째가 염촉, 즉 이차돈이었다. 이처럼 아도 스님의 역할이 법흥왕 대 신라의 불교 공인 및 이차돈의 순교와 연관 있음이 이런 사실들에서 확인되는 셈이다.

그러나 아도 스님 이전에도 불교를 전하기 위해 신라에 들어온 스님이 있었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삼국유사』 ‘사금갑’조에는 비처왕(재위 479~500) 시기에 이미 불교가 신라에 들어와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기사가 보인다. 비처왕이 사냥을 나갔다가 서출지에서 신비한 노인을 만났는데, 그의 조언에 따라 궁궐로 돌아와서 거문고를 보관하는 상자에 활을 쏘아보니 그 안에서 왕비와 정을 통하던 분수승이 발각됐다는 것이다. 

분수승(焚修僧)은 아마도 궁궐의 내불당에서 왕실의 안녕을 위해 재를 지내던 스님일 것이다. 만약 이 기사가 사실이라면 분명히 아도 스님 이전에 신라 포교를 위해 들어온 스님이 있었다. 아마도 왕실 여성들을 대상으로 먼저 포교에 들어갔던 불교이기에 토착 종교 세력들에 의해 제거된 사실을 이러한 스캔들로 기록했을 가능성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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