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와 구미 선산] 선산의 탑, 통일신라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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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와 구미 선산] 선산의 탑, 통일신라를 말하다
  • 박찬희
  • 승인 2023.09.22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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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과 사지
죽장리 오층석탑(국보). 죽장사 경내에 있다. 돌을 벽돌 모양으로 만들어 세운 모전석탑으로 분류한다. 높이가 10m에 이르며 벽돌 모양의 오층석탑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높은 탑이다.

“정말 경주밖에 없는 걸까?”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을 꼽자면 제일 먼저 석굴암과 불국사가 떠오른다. 다음으로 경주 남산, 감은사지 삼층석탑, 포석정, 월지(月池, 옛 이름은 안압지)가 뒤를 잇는다. 모두 신라의 수도 경주 지역에 몰려 있다. 경주 이외에 꼽을 만한 지역은 어디가 있을까? 충주에 있는 탑평리 칠층석탑 등 개별 문화유산은 어렵지 않게 떠올라도 지역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경주에서 서북 방향으로 가면 구미 선산 지역이 나온다. 이곳은 낙동강이 흐르고 강 주위로 너른 들판이 펼쳐지며 산이 주위를 둘러쌌다. 이런 지역은 예부터 사람이 살기 좋고 문화가 발달하기 알맞은 곳이다. 더구나 아도화상이 신라에 처음으로 불법을 전한 곳이 이곳이다. 이 정도라면 눈여겨볼 통일신라의 문화유산이 여럿이지 않을까.

마침 선산 지역에는 통일신라 때 세운 탑들이 전한다. 죽장리 오층석탑(국보), 낙산리 삼층석탑(보물), 주륵사 폐탑이 대표적으로 통일신라 문화의 절정기에 세워졌다. 이 탑들은 ‘공든 탑이 무너지랴’라는 말처럼 오랜 세월 제자리를 굳건하게 지키며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기도 했고, 세월과 인간의 욕심에 무너지기도 했다. 비록 처음 모습과 달라졌어도 탑들은 온몸 깊숙이 간직한 이야기를 언제라도 나눠줄 준비가 됐다.

지금 그 이야기를 들으러 선산으로 떠난다.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마음과 마을을 품은 명작

“정말, 명작이구나!”

선산의 세 탑 가운데 맏이와 같은 죽장리 오층석탑을 먼저 만난다. 죽장사 입구 모퉁이를 돌아서자 탑이 홀연히, 그리고 느닷없이 나타난다. 높이 10m라는 숫자로는 담기 어려운 존재감이다. 탑을 본 순간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탑의 명작으로 널리 알려진 감은사지 삼층석탑이나 고선사지 삼층석탑에 견주어 결코 뒤지지 않는다.

점점 탑 가까이 다가간다. 그러자 탑은 하늘로 날아오를 기세다. 탑 바로 앞에 서면 탑은 하늘에, 부처님께 잇닿으려는 듯 끝 모르고 올라간다. 이 정도라면 사람들의 기원이 세상 모든 부처님에게 충분히 가닿을 수 있겠다. 탑이 거대하면서도 경쾌하기는 어려운데 이 탑은 두 가지가 적절하게 어우러졌다. 탁월한 수평과 수직의 비례 감각으로 탑을 설계한 통일신라 장인의 안목에 고개를 숙이고 통일신라의 문화적 역량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들뜨고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탑을 찬찬히 살펴본다. 한옥 지붕처럼 만든 옥개석이 일반적인 탑과 다르다. 경사를 이루며 내려오는 매끈한 선이 아니라 계단처럼 층단을 이뤘다. 이 형식은 주로 벽돌로 만든 탑인 전탑에서 보인다. 그래서 이 탑을 전탑을 본떠 만든 모전석탑으로 분류한다. 독특한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1층 몸돌에는 감실이라고 부르는 부처님을 모시는 작은 방을 마련했다. 대개 석탑에는 감실 대신 문의 모습만 새기거나 아예 아무것도 새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연구자들은 이 탑이 8세기 중엽, 혹은 그 이전에 세워졌을 거라고 추정한다.

이번에는 탑을 돌 차례다. 탑을 돈다는 건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고 하나로 모아 부처님께 전하는 거다. 또한 탑을 만든 사람들의 마음을 만나는 거다. 탑을 돌자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던 탑의 부재들이 눈에 들어온다. 마법처럼 그 숫자가 점점 불어난다. 현재 이 탑은 무려 171매의 부재로 구성됐다. 이 정도라면 통일신라 사람은 블록 쌓기의 달인이라고 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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