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에 굶주린 귀신, 아귀] 포토에세이 - 감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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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에 굶주린 귀신, 아귀] 포토에세이 - 감로도
  • 유동영
  • 승인 2023.07.26 13: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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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로도,
구천의 영혼을 달래고
아귀 지옥의 이승을 위로하다
<흥천사 감로탱>(1939)

우리나라에서만 감로탱을 봉안하는 까닭은? 그림을 그리던 불모들이 자기표현의 장으로 감로탱을 활용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감로탱(아귀)을 모티브로 작업을 한 이영실·임남진 두 작가와 대화 속에서 찾은 답이다. 

 

<흥천사 감로탱> 중앙의 면연귀왕

<흥천사 감로탱>

마곡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계룡산 화파의 보응 문성·남산 병문 스님이 1939년에 그렸다. 1937년, 일본은 중일전쟁에서 승리했고, 1940년에는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탱화가 그려진 시기는 그 어느 때보다 전쟁 분위기가 고조됐던 시기인 셈이다. 그림을 그린 스님들은 이와 같은 시대 상황을 감로탱 중·하단에 콜라주 기법으로 표현했다. 그 밖에 전차가 오가는 서울 시내를 걷는 모던 걸과 흥천사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남녀, 한강의 스케이트 장, 재판 중인 법정, 벽걸이 전화 통화 모습, 그리고 감로탱에서 빠질 수 없는 추락과 뱀에 물려 죽는 모습 등을 다양하게 넣었다. 상단 좌우에 일본풍의 풍신과 뇌신이 그려져 있다. 

흥천사

 

영암 망월사 감로탱

<영암 망월사 감로탱>      

대흥사 말사인 영암 망월사는 조선 후기 백운 스님이 창건한 절로 영암 신북면에 있다. 1945년 근현대기, 빼어난 승려 불모였던 일섭 스님의 제자 우일 스님이 일섭 스님 본을 모본으로 해서 그린 것이다. 부처님들을 중심으로 좌측 아래로 당시가 제국주의 시대였음을 말해 주듯 33개국의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지옥으로 향하고 있다. 현재 모습은 1997년에 사찰 음식을 하는 정관 스님이 이진경 작가에게 의뢰해 훼손된 부분을 복원하게 한 것이다. 

망월사

 

청양 장곡사 감로탱

<청양 장곡사 감로탱>      

2017년 불화 모사와 단청 등의 작업을 하는 이수예 작가가 그렸다. 상단과 중단은 크게 다르지 않으나, 하단에는 우리 현대사의 고통과 아픔이 전해지는 역사적 사건들이 그려져 있다. 부처님들을 중심으로 우측 하단에서 가장 비중이 큰 장면은 세월호 침몰 사건이다. 그 위로 5·18 민주화 운동과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등이 그려졌다. 모두 보는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사건들이다.  

 

이영실, <영축산 감로도>, 280×270cm, 2021
이영실, <여여문>, 140×100cm, 2021

이영실 작가      

그의 삶은 옻칠의 질감만큼이나 다채롭다. 몸에는 생김새만큼이나 활기도 넘친다. 약사를 하면서 무료함을 이기려고 그림 학원에 다니며 민화의 영역으로까지 발을 디뎠다. 민화에는 질서가 무너진 듯 균형이 있었고, 색이 흐트러진 듯 조화가 있었다. 원근이 사라진 속에 입체가 있었다. 민화를 그리던 중 우리 시대 수묵화로 일가를 이루고 있는 박대성 작가에게서 수묵을 배웠지만, 2017년 현 종정이신 성파 스님의 옻칠 민화 전시를 본 뒤 스님께 옻칠기법을 사사했다. 한번 시작하면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은 지난 2022년 작은 결실을 보았다. 그의 작품이 스승이신 종정 스님의 작품과 함께 국립현대미술관에 걸린 것이다. <영축산 감로도>가 그것이다. 그를 퍽이나 귀여워하신 할머니는 신심 있는 불자였다. “할머니와 같은 분들이 1,500년이 넘는 이 도량을 드나들며 기도를 했다고 생각하면, 그 염원이 켜켜이 쌓여있는 것 같아요. <영축산 감로도>는 그렇게 시작했어요.”

“감로탱은 우리 시대 상황을 담을 수도 있고, 산 자의 기도가 죽은 자까지도 구원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서 그 형식이 좋아요. <영축산 감로도>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표현했어요. 그림을 보는 방향에서 좌측 위에 마스크를 하신 스님이 종정 큰스님이에요. 통도사 극락전 반야용선에는 구원받는 많은 사람이 타고 가잖아요. 제 반야용선은 탈 사람들을 위해 비워두었어요.”

<영축산 감로도>는 2023년 9월 22일 지리산 실상사로 이어진다. 실상사에서 주관하는 ‘2023년 지리산 프로젝트’ 참여 작가로 초대받았기 때문이다. 그와 말을 나누고 작품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그는 작업을 늦게 시작한 게 아니라 이제야 제대로 달리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가 또 어떤 감로탱으로 우리에게 감동을 전할지.  

 

임남진, <장막도>, 204×560cm, 2014
임남진, <취생몽사(醉生夢死)>, 194×130cm, 2009

임남진 작가      

예술가이고자 했던 한 청년이 서 있던 시대의 흐름에 변화가 생겼다. 본래 타고 있던 흐름이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갈래를 쳤다. 그러던 1993년 어느 날 지하철역에 붙은 ‘고려불화전’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어쩌다 절에 들르게 될 때면 오방색 단청이 촌스럽게만 느껴졌었는데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색은 전혀 달랐다. 우리나라에 이런 그림이 있었다니 믿기지 않았다. 그것도 고려시대 그림이라니. 

불화 앞에 선 사람들은 합장 기도를 하기도 하고 어떤 불화 앞에서는 많은 사람이 다닥다닥 붙어서 경외스러운 표정으로 부처님을 바라보았다. 감동과 충격이었다. 청년은 나오면서 각오를 다졌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사람들이 내 그림 앞에 서서 다닥다닥 붙어 있는 날이 오게 하겠다’라고. 그 뒤로 묘하게 인연이 돼 선배가 그리는 불화 작업을 하기도 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떤 형식으로 해야 할까 고민하던 즈음 불화가 자신에게 온 것이다. 

“아귀 작업은 2010년 즈음에 집중돼 있어요. 40대에 보니까 아귀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더라고요. 아귀를 보세요. 가는 목에 불룩한 배, 근육은 사라지고 뼈만 남은 모습을 보면 나이를 먹을수록 욕심만 찬 나이 든 우리들 모습이잖아요. 어렸을 때 욕망은 무지에서 온 것이라 용서가 되지만, 나이 들어서 가지는 욕망은 더럽고 추해요. 저 또한 많은 시간을 피해의식 속에서 살았죠. 감로탱과 아귀는 그런 저를 살피게 했어요.”

청년은 어느덧 화단의 중견 작가가 돼 있다. 그의 그림 속에서 마음속 풍경이 보인다. 그는 요즘엔 아귀도 나한도 우리의 모습이란 생각에 나한을 화두로 잡아보려 한다. 그의 나한은 우리의 나한일 것이다. 

임남진 작가의 그림들은 2023년 8월 27일까지 담양 해동문화예술촌에서 ‘인간의 조건’이란 제목으로 전시된다.

 

글・사진. 유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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