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아귀는 주로 감로탱화에서 등장한다. 필자는 가끔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감로탱화와 같은 그림이 일본에도 있는지 질문을 받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있다’. 다만 감로탱화처럼 한 화면에 아귀와 지옥, 불보살을 모두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각각 분리한 작품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그림들을 일본에서는 ‘육도회(六道繪)’라고 부른다.
육도회는 불교에서 설하는 6가지 세계, 즉 지옥도·아귀도·축생도·아수라도·인도·천도를 그린 변상도(變相圖, 불교 경전이나 교리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그림) 중 하나다. 일본에서는 12세기 말(고려시대에 해당)에 집중적으로 그려졌다.
그 시기 일본은 불안정한 사회정세와 함께 말법사상이 크게 유행했다. 사람들은 지옥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됐고, 육도회 그림 역시 다량으로 제작됐다. 육도회는 결국 인간이 6개 단계를 거쳐 윤회를 거듭한 후 염불로 구제받고 극락왕생한다는 정토사상이 깔려 있다[도판 1]. 육도회 제작은 겐신(源信)이 저술한 『왕생요집』(985)을 바탕으로 했다. 『왕생요집』은 12세기 말부터 13세기에 걸쳐 제작된 일본의 지옥과 정토 그림, 헤이안 문학, 헤이안 노래집 등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육도회 중 하나인 아귀초지 속 일본의 아귀를 소개한다. 초지(草紙)는 종이에 그린 그림을 말하며, 주로 두루마리 형태로 제작됐다.
구제받지 못한 자: 가와모토본 아귀초지
일본의 아귀 그림은 무섭기보다는 보는 이들에 따라 눈을 감고 싶다거나 불쾌감을 토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한국보다 일본 아귀의 표현이 배경과 맞물려 좀 더 구체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아귀초지 그림은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가와모토본(河本本)과 교토국립박물관 소장 소겐지본(曹源寺本) 두 개가 전한다. 먼저 가와모토본은 일본 오카야마 지역의 가와모토 가문이 소장해 왔던 그림을 의미한다. 가와모토본은 당시 풍속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정법염처경』에 나오는 36종류의 아귀 중 일부를 10개의 장면으로 그렸다. 이 중 유명한 몇 개의 장면을 살펴보자.
첫 번째 장면은 연회장에서 인간의 몸에 달라붙는 아귀들이다[도판 2]. 화면에는 다섯 명의 남성과 두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이들 앞에는 음식과 술을 준비한 개인 반상이 놓여 있고, 남녀 한 쌍이 서로 마주 보며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아마도 남성들은 귀족이고 여성들은 유녀일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남성들의 몸에 아주 작은 아귀들이 붙어 있다. 이 아귀들이 바로 ‘욕색(欲色)아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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