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에 굶주린 귀신, 아귀] 아귀의 왕 면연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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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에 굶주린 귀신, 아귀] 아귀의 왕 면연귀왕
  • 강영철
  • 승인 2023.07.26 14: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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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아귀에서 보살로
[도판 1] 아귀의 왕인 면연귀왕, <해인사 감로탱>(1723) 부분도, 해인사 성보박물관 소장

불교에서 업보의 고통이 가장 큰 곳을 삼악도(三惡道)라 한다. 삼악도는 육도(六道) 중 아수라도·인도·천도를 제외한 지옥도, 아귀도, 축생도 세 곳을 말한다. 지옥도의 고통이 가장 크지만, 아귀도 역시 만만치 않다. 불교는 고통과 그 구제를 말한다.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는 분은 지장보살이다. 그렇다면 아귀도에서 고통받는 중생은 누가 구제할까? 아귀를 구제하는 의식으로 우란분재(盂蘭盆齋)가 가장 많이 알려졌지만, 수륙재(水陸齋) 역시 아귀와 관련된다. 우란분재에서 구원의 주인공은 목련(目連)이다. 그렇다면 수륙재에서는? 아난(阿難)과 면연귀왕(面燃鬼王)이다. 

오늘날 수륙재 설행(設行) 현장을 보면, 면연귀왕은 배고픈 아귀들의 왕에서 보살이 된다. 그러나 역동적으로 신분이 전환된 주인공인 면연귀왕에 대한 관심은 대체로 적다. 일상 의례의 귀의 대상인 ‘보살님’도 아니고 제석천이나 팔부중 같은 ‘신중님’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조선시대 대재(大齋)인 수륙재 의례 현장에서, 혹은 감로탱(甘露幀) 도상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과 아난 그리고 면연귀왕을 중심으로 한 아귀와 중생 구제라는 ‘대자비심’이 수백 년 동안 잊히지 않고 때론 재해석되어 왔던 점은 분명 놀라운 일이다.

면연귀왕(面燃鬼王)

사찰마다 창건 연기(緣起) 설화가 있듯이 우란분재나 수륙재 같은 큰 재(齋)도 설행하는 이유를 담은 연기 설화가 있다. 재를 설행하는 의례 공간은 유형이든 무형이든, 한시적이든 반복되는 것이든 수행과 중생 구제를 위한 도량이 된다. 재 중에서 가장 큰 재는 수륙재로 ‘천지명양수륙재의(天地冥陽水陸齋儀)’나 ‘수륙무차평등재의(水陸無遮平等齋儀)’라 일컫는다. ‘천지(天地)’는 하늘과 땅을, ‘명양(冥陽)’은 밝음과 어둠으로 대응되는 이승과 저승을, ‘수륙(水陸)’은 물과 육지에 사는 중생을 말한다. ‘무차(無遮)’란 천지·명양·수륙 중생을 위한 가르침의 은택이 가려짐 없이 고르게 미침을 뜻할 것이다. 옛사람들의 세계관 범주에서 생각해 낸 최대의 공간적 시간적 표현인 셈이다.

재를 베풀어 미치는 은혜로움과 이익이 하늘만큼 땅만큼 물길만큼 크기와 깊이를 알 수 없으며, 밝은 낮에도 있는 어두움, 어두운 밤에도 있는 밝음의 명양 세계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 크나큰 베풂의 대승사상을 의궤화한 것이 수륙재 같은 대재다. 수륙재를 지내는 이유를 밝힌 것이 ‘수륙연기(水陸緣起)’다. 등장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아난, 그리고 면연귀왕(초면귀왕焦面鬼王)[도판 1]이다. 매우 독특한 캐릭터인 면연귀왕은 목은 바늘처럼 가늘고 무엇을 먹더라도 그대로 불꽃처럼 토해낼 수밖에 없는 아귀들과 기본적으로 다를 바 없다.

『정법염처경』 등에서는 “중생의 날뛰는 탐욕으로 ‘보시’를 행하지 않는 자는 업의 형태에 따라 36종류의 아귀 중 하나의 과보를 받는다”고 말한다. 수륙재 의식문에서는 면연귀왕이 36종류의 아귀가 사는 36부(部)의 왕으로 나타난다. 언제 어떤 업보를 받아 아귀 세계의 왕이 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강(江)의 고통

아귀들의 업보가 주로 미치는 곳은 어디일까? 바로 강(江)이다. 강은 망자와 관련이 깊고 수많은 민간설화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망자들은 저승길에서 강을 건너야 하지만, 세찬 물결에 건너지 못한다. 사십구재의 소의경전인 『시왕경(十王經)』을 보면, ‘나하진(奈何津)’이라는 나루터 이름으로 잘 알려진 강이 있다. 여기서 나하(奈何)란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뜻이다. 저승길에 들어선 망자가 나루터에서 강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망연자실해 하는 모습이 이름이 됐다. 

목이 바늘처럼 가늘고, 먹은 것은 무엇이든 불꽃처럼 토해내는 아귀들에게 강은 또 다른 고통을 안겨준다. 경전에서 아귀들은 주로 항하강(恒河沙) 기슭에 모래알처럼 많이 모여 있다. 항하강은 나하진의 일렁이는 검푸른 물이 아니라 매우 맑고 시원한 물이다. 그렇지만 아귀들은 두터운 업장으로 항하강의 물이 아무리 시원해 보여도 그 물을 마실 수 없다. 마신 강물마저 불꽃으로 토해내기 때문이다. 우란분재의 소의경전인 『불설대목련경』에도 이러한 장면이 나오는데, 지옥에서 아귀로 떨어진 목련의 어머니도 항하강의 물을 마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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