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방에 빗장을 걸어라 도를 이루기 전에는 나갈 수 없다
내륙에 자리한 구례와 곡성까지도 꽤 많은 눈이 쌓이고 있었으나, 눈구름이 화개에 다다라서는 산등성이에서 맴돌 뿐 땅에 닿을 때쯤에는 진눈깨비가 되어 추적거렸다. 지리산 남쪽에 자리한 쌍계사는 평온하고 아늑하다. 쌍계사 뒤로는 주산인 지리산이, 앞으로는 안산인 백운산이 쌍계사를 감싸고 있다. 모두 1,000m가 넘는 큰 산인 데다 지리산 자락의 남쪽 계곡에 자리하다 보니 쌍계사 스님들은 쌍계사를 지리산의 주인으로 본다. 보조국사 지눌, 서산, 부휴, 벽암, 성총 스님 등 조계종의 선맥을 잇는 역대 큰 스님들이 쌍계사를 중심으로 공부를 하셨으니 그럴 만도 하다. 도성암과 사관원은 큰 절에서 겨우 20여 분 거리에 있으나, 쌍계사에서는 굳이 산내 암자로 내놓고 말하지 않는다. 아마 선방 스님들의 수행처로 보호하려는 의도 때문일 것이다. 사관원은 옛 기록에는 옥소암으로 불렸다. 건립 시기는 조선 시대 지리산을 다녀가며 유람기를 남긴 조위안의 글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담양의 선비 이성국이 수행차 들어와 20년을 공부하다 사재를 털어 건립’한 것으로 나온다. 이번 철에는 해인사 수좌 승연 스님이 유구한 지리산 선맥에 좌복을 틀었다.
지금까지는 줄곧 대중들이랑 함께 살다가 암자에 혼자 사는 거는 이번이 처음이에요. 몸이 예민해져서 함께 지내는 게 쉽지 않아서요. 대중에게 폐가 되니까. 나는 밥도 한 30분을 씹어야 하는데 우리 스님네들 알잖아요. 전기가 없어서 불편해도 큰절에서 반찬을 얻어다 먹으니까 불편한 건 없고, 물이 부족하긴 한데 물길을 새로 만들어서 큰 지장은 없어요. 사관원은 옥소암터를 해인사 원규 스님이 20년도 더 전에 복원하면서 중국 고봉 스님의 사관(四關)을 따서 지으신 게 아닌가 싶어요. 처음에는 도성암에서 지냈는데 그 터는 나랑 잘 안 맞아서 비어있던 사관원을 고쳐서 지내고 있어요. 암반 위에다 앞이 시원하게 트인 자리라 수행자가 살기에는 딱이에요.
출가 전, 출가 인연을 만들어 주신 스님으로부터 동국대 총장도 하신 백성욱 박사의 ‘미륵존여래불로 마음 바치는 금강경독송회’ 수행법을 배웠어요. ‘올라오는 모든 생각은 망상이다.’ 이것을 참으면 어디엔가 누적돼서 폭발하니까 이걸 부처님께 공양한다는 게 이 수행법의 기본이에요. 장궤합장을 하고 ‘미륵존여래불’하면서 바치는 거죠. 처음에는 진짜 안 되는데 내가 집요한 데가 있어서 술을 마실 때나 밥을 먹을 때나, 생각이 올라올 때마다 ‘이 자식이 왜 이러지’ 하면서 올라오는 마음을 탁탁 바치니까, 점점 알아차리는 시간이 많아지더라고요. 불면증이 심해서 자리에 누워도 두어 시간 지나야 겨우 잠이 들었는데, ‘미륵존여래불’로 알아차리는 시간이 늘어나면서부터는 누워서 ‘미륵존여래불, 일체중생이 행복하기를 발원합니다’ 하면 바로 잠이 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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