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의 문화이야기] 지리산 암자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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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의 문화이야기] 지리산 암자 순례
  • 노승대
  • 승인 2021.09.30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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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암자 순례를 하기로 했다.

3개 도에 걸쳐있는 지리산은 그 너른 산세만큼 수많은 사찰과 암자들이 골골에 들어앉아 있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지리산에 숨어든 빨치산과 토벌대의 전투로 산속의 암자들은 남김없이 파괴되었다.

피아골 연곡사 큰 절도 탔다.

빨치산의 아지트가 된다 하여 토벌대가 태워버린 것이다.

화엄사나 연곡사 등이 살아남은 것은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의 공로다. 그의 기념비가 화엄사에 있다.

지리산 줄기인 삼정산(1261m) 능선 자락에 있는 7암자는 15km에 이르는 긴 코스여서 일행이 전부 완주할 수 있을까 염려가 되었다.

칠선계곡 입구 금계마을에 사는 지리산 아우의 집에서 편히 잔 뒤 아우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첫 번째 목적지 도솔암으로 향했다.

그러나 차가 당도한 곳은 두 번째 목적지였다.

도솔암 남쪽 입구에 내려야 하는데 북쪽 입구로 데리고 온 것이다.

아우가 내 마음을 알고 있었나?

도솔암은 다음 인연을 기다리기로 하고 가볍게 길을 나섰다.

여기서부터 6암자는 약 10km, 여유로운 마음으로 순례할 수 있었다.

7암자 중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은 단연 상무주암이다.

고려시대 보조국사(1158~1210)가 창건하고 2년간 수행하며 크게 깨달은 곳이고 근래에도 조계종 종정을 지내고 열반하신 혜암 스님이 정진하신 수행처다.

지금은 30여 년간 홀로 밭을 일구며 정진하시는 현기 스님이 머물고 계신다.

 

두 번째 암자인 영원사다. 통일신라시대 영원대사 창건이라 한다. 너와를 얹은 선방이 9채, 100칸이 넘는 방이 있었다고 한다. 두류선림이란 당호가 있다.

 

지리산은 조선시대까지 두류산(頭流山)이라 불렀다. 백두의 정기가 흘러내린 산이란 뜻이다. 영원사 산신각의 자연산 돌계단이 옛 절 입구를 생각나게 한다.

 

영원사에서 오르막길을 올라와 빗기재에 서니 이제는 편한 능선길이다. 고려의 보조국사가 2년간 머물며 크게 깨달았다는 상무주암이다. 출입금지다.

 

통도사의 고승 경봉 스님의 상무주(上無住) 현판. 부처님도 발을 붙이지 못하는 경계가 ‘上’이며 머무름이 없는 자리가 ‘無住’다. 나는 어디에 있나?

 

상무주암에서 홀로 비탈밭을 일구며 수행하고 계신 현기 노스님을 언뜻 뵌 것만으로도 발길이 가볍다. 문수암을 향해 돌담장을 낀 오솔길로 들어선다.

 

상무주암 좌선대에서 지리산 능선을 망연히 바라본다. 천왕봉부터 형제봉, 벽소령, 토끼봉, 반야봉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최고의 명당자리다. 떠나기 어렵다.

 

문수암이다. 해발 1100m로 널찍하게 파여있는 천인굴 앞에 지은 작은 암자다. 1965년 혜암 스님이 복원했다. 앞쪽으로 덕유산, 가야산도 조망된다.

 

문수암 현판도 경봉 스님(1892~1982) 글씨다. 불교계에서는 누구나 인정하는 큰스승이었다. 임종게가 “야반삼경에 대문 빗장을 만져 보거라”였다.

 

암자 뒤편 천인굴은 절벽 아래 넓게 파인 석굴형태다. 임진왜란때는 마을 사람들이 이 석굴로 피신했었다고 한다. 천장 바위가 불에 그을려 새카맣다.

 

축대 끝에 겨우 서 있는 듯한 문수암의 해우소다. 살아 있으면 먹어야 하고 먹으면 누어야 한다. 남녀노소, 빈부귀천도 상관없다. 인생 별거 아니네!

 

문수암 축대 아래 작은 텃밭에는 방울토마토가 저절로 익어 즐비하게 떨어졌다. 햇빛 듬뿍 받은 토마토, 그 맛이 기가 막히다. 그래, 바로 이맛이야.

 

삼불사는 조선시대에 창건한 사찰이지만 산속 마을 고향 집 같은 느낌이다. 큰 개울가 아랫마을이 아득히 내려다보인다. 이제부터는 계속 하산길이다.

 

약수암은 한국전쟁 때 지리산에서 타지 않은 귀중한 암자다. 연륜이 묻어나는 보광전이 넉넉한 터에 듬직하게 서 있다. 1724년 천은 스님이 창건했다.

 

보광전 안에 모셔진 목각 아미타여래설법상은 보물 제421호다. 이러한 목각 후불탱은 6점이 남아 있는데 모두 보물로 지정됐다. 1782년 조성이다.

 

스님이 기거하는 요사채 편액은 제주도의 대표적 서예가 소암 현중화(1907~1997)의 작품이다. 그는 취중에 쓴 글씨가 명작이라고도 알려졌다.

 

약수암의 해우소는 대숲을 배경으로 앉아 있다. 바람이 지나가면 대숲이 일렁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계절마다 다른 소리, 누가 듣는가?

 

9산선문의 하나인 실상사를 창건한 홍척국사의 제자 편운화상의 승탑이다. 910년에 건립되었다. 후백제 견훤의 연호인 정개(正開) 10년이 쓰여 있다.

 

9산선문의 하나인 실상사도 정유재란으로 모두 소진되고 석물만 남았다. 200여 년 뒤 침허대사가 300명 스님들과 함께 상소를 올려 중창하였다.

 

실상사에는 삼성각이 없고 보광전 옆에 칠성각이 있다. 1932년에 지은 건물이다. 조선후기에 사찰에 들어온 칠성신앙이 이때까지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쌍탑 뒤 중앙에 있는 석등은 신라말기의 양식을 잘 보여준다. 화창이 8개, 기둥돌이 장구 모양, 지붕끝과 좌대 귀꽃이 잘 말해 준다. 디딤돌이 이채롭다.

 

사진. 노승대

 

(필자의 카카오스토리에도 실린 글입니다.)

 

노승대
‘우리 문화’에 대한 열정으로 조자용 에밀레박물관장에게 사사하며, 18년간 공부했다. 인사동 문화학교장(2000~2007)을 지냈고, 졸업생 모임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인사모)’, 문화답사모임 ‘바라밀 문화기행(1993년 설립)’과 전국 문화답사를 다닌다. 『바위로 배우는 우리 문화』,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2020년 올해의 불서 대상)를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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