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발발과 전투에 참여한 스님들

주로 조명연합군과 왜군의 전투 장면이 묘사돼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나라 위해 봉기한 의승군
지금으로부터 430년 전인 1592년 4월 14일, 조선에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쳤다.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 15만여 명의 기습공격으로 시작된 임진왜란은 조선 역사의 분수령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영향을 남긴 대사건이다. 7년여에 걸쳐 지속된 전란은 조선왕조의 정치체제와 사회경제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고, 동북아시아 삼국이 모두 전쟁에 휘말림으로써 동북아시아 차원의 국제전으로 비화했다.
전쟁 초기 조선군은 맥없이 무너졌고, 일본군은 부산에 상륙한 지 채 20일이 안 돼 조선의 수도인 한성을 무혈점령했다. 이후 평안·함경도까지도 유린당하는 등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이후 전열을 가다듬은 조선의 관군과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과 승군의 활약, 수군의 연승, 명의 지원에 따른 반격 작전으로 전세를 역전해 극복할 수 있었다. 특히 의병과 의승군은 유례 없는 전란을 극복하는 데 관군 못지않게 활약한 군사집단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의병들은 장수가 대부분 전직 관료 내지는 명망 있는 유생들이었기 때문에 관군과 대등한 입장에서 근왕(勤王, 임금에 충성을 다함)을 내세우고, 각지에서 제한 없이 독자적인 활동을 했다.
하지만 의승군은 의병과는 성격이 사뭇 달랐다. 불교가 이미 정치와 무관했던 시기, 승려 신분이었던 의승군은 양민 이하로 취급돼 사회적으로 냉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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