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주로 피신한 선조는 묘향산에 거주하던 서산대사에게 의승군의 궐기를 당부했다. 팔도 각지에서 의승군이 일어나 후방 지원업무, 산성 축조 등의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지만, 관군이 일본군에게 패전을 거듭한 개전 초기에는 직접 전투에 참여해 중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의승군이 직접 참여한 전투와 의미를 살펴본다.
청주성 탈환 - 1592년 여름
큰 적이 청주에 들어와 군사를 나누어 약탈과 살육을 함부로 하자, 승명이 영규라는 자가 있어 그 무리를 많이 모아서, 모두 낫을 가지게 하였고, 호령이 매우 엄하여 적을 보고 피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드디어 청주의 적을 공격하니, 연일 서로 버티어 크게 이긴 일도 없으나, 또한 물러서지도 않았습니다. 적이 마침내 성을 버리고 가니 모두가 영규의 공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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