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불교] “사탑심다(寺塔甚多) 백제, 한국불교 뿌리이자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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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불교] “사탑심다(寺塔甚多) 백제, 한국불교 뿌리이자 세계유산”
  • 송희원
  • 승인 2021.06.2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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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드높고 은미한 이름 백제 불교 | 나의 백제 불교 연대기 | 백제세계유산센터 이동주 센터장
공산성, 이동주 백제세계유산센터 센터장.

2015년 7월 독일에서 열린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전 인류가 함께 보호하고 후세대에 물려줘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세계유산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충남 공주·부여, 전북 익산 지역에 걸쳐있는 고고학 유적들로 구성된 연속유산이다. 백제 웅진도읍기(공주) 유적인 공산성, 송산리고분군부터 사비도읍기(부여) 유적인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정림사지, 능산리고분군, 나성 그리고 사비도읍기 후기(익산)인 무왕과 관련된 왕궁리유적, 미륵사지까지 총 8곳의 백제 왕도 관련 유적지로 이뤄졌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왕성·사찰·능묘는 모두 중국에서 백제로 불교가 전래된 이후인 후기 백제시대(475~660년)를 대표하는 유적들이다. 이는 백제인들이 중국에서 전래된 불교와 관련된 다양한 문화를 어떻게 자신들만의 탁월한 문화로 승화했는지를 증명한다. 

사비도성 한가운데 대규모로 건립한 정림사는 물론이거니와 왕성을 축조하는 기술 역시 중국에서 들여온 사찰과 목탑의 건축 기술이 녹아들어 있다. 또 백제에서 불교는 정치·사상과 밀접하게 결합했다. 능산리고분군과 연접해 조성했던 능산리 절터처럼 죽은 왕의 명복을 빌기 위한 능사(陵寺)를 왕릉 가까이 건립했으며, 무왕 재위 기간에는 백성들의 민심을 하나로 모으는 정신적인 사상으로 미륵하생신앙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미륵사를 창건했다. 백제인들에게 왕은 곧 부처이자, 미륵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백제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언급한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등재 결정문에서도 잘 나타난다. “신청유산은 고대 중국, 한국, 일본 사이에서 발달한 활발한 교류에 대한 생생한 증거이자 그곳의 불탑과 사찰은 불교의 특징, 진화, 전파를 잘 말해준다.” 

 

사진. 유동영

 

백제의 숨결, 세계에 닿기까지

백제세계유산센터는 약 135만m2의 백제역사유적지구를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홍보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기구다. 공무원과 민간 전문가로 조직된 이 재단의 수장이자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킨 숨은 주역이 바로 이동주 센터장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충남 공주·부여, 전북 익산의 유적지가 백제세계유산센터로 통합돼 관리되기까지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광역과 기초지자체가 다른 세 지역은 충남 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와 익산역사유적지구 추진위원회를 각각 조직해 백제 유적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잠정목록 등재 신청서를 준비했다. 당시 이동주 센터장은 충남 공주·부여 연구팀에 속해 있었다. 2010년 1월 공주·부여와 익산의 백제 유산이 각각 별도로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이후, 2011년 2월 국내의 잠정목록을 대상으로 우선 등재 추진대상을 선정하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 회의가 열렸다. 이날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회의에서 남한산성과 백제유산이 우선 추진대상 유산으로 선정됐다. 

“충남 지역 백제 유산을 우선 등재 추진대상에 올리기 위한 프레젠테이션을 그때 제가 맡아서 했어요.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된 이후 본격적으로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가장 첫 번째 관문이 우선 등재 추진대상으로 선정되는 거죠.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회의에서 전국의 잠정목록 후보들을 경쟁시켜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우선순위 대상을 정하는 거예요. 당시 제게 백제의 세계유산 등재는 오랜 꿈이기도 했어요. 엄청난 중압감으로 인해 긴장을 풀려고 생전 처음으로 남몰래 청심환을 먹고 발표에 들어갔어요. 발표가 끝난 후 문화재위원회 회의에서 제안한 게 공주·부여·익산을 하나로 묶어서 가는 것이었죠.”

백제역사유적지구라는 명칭으로 공주와 부여, 익산 지역의 백제 왕도 유적을 함께 세계유산에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유산이 소재하고 있는 광역·기초자치단체 간 업무협약이 체결됐고, 2012년 백제세계유산센터의 전신인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등재추진단’이 출범했다. 추진단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후인 2016년 1월에 ‘백제세계유산센터’로 명칭이 변경됐다. 등재 이후 한동안 공석이던 센터장을 이사회 의결로 민간에서 선출했고, 1기 수장이 이동주 센터장이다. 세계유산 등재 준비에서부터 등재 이후까지 전 과정을 그가 깊이 관여했는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원래 건축을 전공해서 건축사 사무소에서 현상설계 관련 일을 했어요. 주로 관공서, 종교시설, 대학교 캠퍼스처럼 규모가 큰 현대 건축물을 주로 설계했죠. 그 일을 10년 정도 하다 보니 문득 저만의 건축적 어휘가 빈약하단 걸 깨달았죠. 그때 관심을 둔 게 한국 전통건축의 의장 요소, 즉 형상·모양·색채 같은 디자인이었어요.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향토문화유산 답사를 많이 다녔는데 그때 주로 방문한 곳이 보원사지, 안국사지, 서산마애삼존불 같은 사찰 유적지와 인근 사찰의 전통건축물 답사가 대부분이었던 터라 더욱 관심이 갔죠.” 

한국전통건축을 공부하기 위해 한국 건축역사 연구실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았다. 대학원 시절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한 지역재생 사업인 ‘아름마을가꾸기’ 사업에 참여했다. 전국 오지의 22개 마을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조사와 면담을 통해 이를 기록화하고, 마을과 지역 재생 사업에 역사·문화적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주제로 논문을 썼다. 박사학위를 받은 뒤 문화재 분야 학술연구를 위해 충남 부여군 문화재보존센터 문화유산부장으로 재직하면서 본격적으로 문화재 연구에 발을 들여놓았다. 문화재 관련 학술연구, 기록화 조사 사업, 문화재 정비계획수립 등 약 12년 동안 진행했던 프로젝트만 해도 150여 건이 넘는다.

 “삼사십대를 온전히 문화재 관련 사업에 바친 셈이죠. 이러한 경험들로 백제 세계유산 등재 연구팀에 합류할 수 있게 됐죠. 그동안의 연구 경험과 귀중한 자료, 지역주민과 함께했던 다양한 경험들이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를 작성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공주·부여·익산의 ‘백제 DNA’

“여기는 백제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곳입니다. 공주에서는 많은 분이 익히 알고 있는 공주 알밤보다 더 유명한 게 백제에요. 공주, 부여, 익산 주민들의 DNA에는 백제가 새겨져 있어요. 아마 백제가 들어간 상호도 전국에서 가장 많을걸요? 백제는 곧 이분들의 정체성이자 자부심이죠.”

백제세계유산센터장의 역할이 여기에 있다. 주민들의 DNA에 아로새겨진 백제 유산의 가치를 보존하고 한 지역과 국가를 넘어 전 세계로 그 가치를 전파하고 확산하는 것. 하지만 여기에는 해결해야 할 큰 난제가 있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매장 문화재 위주다. 따라서 백제의 옛 자취를 찾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땅속 유산을 눈앞에 꺼내 보여줘야 한다. 

“부여에 가면 정림사지 석탑 이외에는 지상에서는 아무것도 안 보여요. 송산리고분군이나 능산리고분군처럼 그냥 풀밭이에요. 8개의 유산도 공주와 부여, 익산 등 세 지역에 뿔뿔이 흩어져있잖아요. 그래서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를 계속해서 개발해야 해요. 첨단 ICT(정보통신기술) 기술을 활용해서 3차원으로 보여준다든가 QR코드로 유적 정보를 제공하는 등의 전략적 사업들을 펼쳐야 하죠.”

백제세계유산센터가 전개하는 사업은 크게 ‘보존관리사업’과 ‘활용사업’, 투트랙(two track)으로 진행된다.

보존관리 사업으로는 8개의 유산구역에 대한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지역마다 2명의 요원이 유산구역을 순찰하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관리하는 ‘상시모니터링 활동’과 관광객들의 안전한 관람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24시간 무인감시체계 ‘통합 방범시스템’ 운영이 대표적이다. 또 현재 모든 유적에 대한 3차원 기록화 사업이 완료됐고, 세계유산 가치 강화 및 확장을 위한 학술연구사업과 국제학술심포지엄 등도 지속해서 실시하고 있다. 

활용사업으로는 ‘국내외 전시회’ 개최와 TV, SNS, 유튜브를 활용한 홍보 활동이나 ‘관광기반 강화를 위한 콘텐츠 개발’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8월 13일부터 29일까지 개최하는 ‘세계유산 축전’도 활용사업의 일환이다. 

이동주 센터장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특히 미래세대를 위한 계층별 교육에 힘을 쏟는다고 강조한다. 미취학 아동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레고블록으로 정림사지 탑이나 공산성 성곽을 만든다든지, 초등학생을 위해서 랜선 역사 탐방이나 역사 OX 퀴즈 및 사생대회를 개최한다. 중·고등학생 대상 프로그램으로는 현장에서 즐기는 역사 체험활동 등이 있다. 

“미래세대를 위해 계층별 맞춤 교육 프로그램을 매년 진행하고 있어요. 백제 세계유산 가치를 대중에게 홍보하는 것만큼이나, 그 유산이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후대에 물려주는 게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여러 개의 손가락, 하나의 손 

이동주 센터장은 백제세계유산센터와 백제역사유적지구 8개의 유산을 손과 손가락으로 비유한다. 센터장 입장에서 유산 중 어느 것 하나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모두 귀중하다는 것. 손가락 하나의 힘은 약하지만, 이 다섯 개의 손가락이 모인 손은 완전한 것처럼 백제역사유적지구도 8개가 모두 모여야지만 비로소 그 가치를 발한다는 뜻이다. 센터장으로서 유산 중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대하지 않고, 모든 지역에 최대한 손해를 끼치지 않도록 중재하려고 노력한다. 

아무리 똑같이 소중하다손 치더라도 좀 더 애정이 가는 손가락이 있지 않을까? 에둘러서 8개 유적지 중에서 제일 많이 방문한 곳을 묻자, ‘정림사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동안 수백 번 넘게 정림사지를 다녔지만, 처음에는 다른 석탑에서 느끼는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한 20번 넘게 방문한 후에야 비로소 석탑에 깃든 백제의 기술과 백제인들의 감성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불교 신자도 다른 종교의 신자도 아니”라는 그가 백제 불교를 기획해준 월간 「불광」에 고맙다며 특별히 독자들에게 당부를 전했다.

“백제문화유산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 불교 문화에요. 오죽하면 고대 중국 역사서에서 백제 수도는 ‘사탑심다(寺塔甚多)’, 즉 사찰과 탑이 매우 많다고 기록했겠어요? 여러분들이 주로 방문하는 사찰은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만들어진 곳이 대부분이지만, 우리나라에 불교가 통일신라 때부터 있었던 게 아니잖아요? 한국불교의 뿌리는 그 전인 백제를 포함하는 삼국시대 때부터 시작됐고, 이후 오랜 시간에 거쳐서 현재까지 이어져 왔어요. ‘나는 어디에서부터 왔는가’, ‘불교는 어디에서부터 왔는가’를 아는 게 중요해요. 독자분들을 포함해서 좀 더 많은 분이 불국토를 이루고자 했던 백제인들이 남겨준 문화유산과 한국불교의 역사에 좀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아마 그 어떤 누구보다도 백제인의 DNA가 깊이 새겨져 있을 이동주 센터장에게 마지막으로 그의 인생에서 백제는 무어냐고 물었다. “가족 빼고 모든 거죠.” 잠시 후 “일을 하다 보면 가족보다 우선일 때가 더 많아요”라고 덧붙이며 멋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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