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578년 일본에 파견된 백제 장인 곤고 시게미츠(金剛重光)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사찰건축 전문회사 곤고구미(金剛組)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에도 살아 있는 백제 장인 정신을 살펴보자.
사찰건축 전문기업, 곤고구미
사찰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일본 기업인 곤고구미(金剛組)는 서기 578년에 설립된 세계 최장수 기업이다. 곤고구미의 창립은 일본의 쇼토쿠 태자(聖徳太子, 6세기 말~622)와 관련된다. 쇼토쿠 태자는 시텐노지(四天王寺)의 창건을 위해 장인들을 보내줄 것을 백제에 요청했고, 이에 백제 위덕왕은 금강(金剛)・조수(早水, 또는 速水)・영로(永路)라는 세 명의 장인을 보내준다. 이 가운데 금강, 즉 곤고 시게미츠(金剛重光)는 시텐노지가 완성된 이후에도 일본에 남았고, 그의 후손들은 대대손손 시텐노지의 유지와 증축을 담당하게 된다.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곤고(金剛) 가문을 중심으로 하여 그 명맥이 이어진 사찰건축 장인 집단이 오늘날의 곤고구미로 발전한다. 곤고구미는 오늘날에도 그 이름을 가지고 본연의 일을 계속하고 있다.
쇼토쿠 태자의 시텐노지 창건
일본의 긴 내전에서 승리한 쇼토쿠 태자는 적군에게 포위됐을 당시 자신을 구해주면 큰 절을 지어 부처님 은혜를 갚겠다고 한 맹세를 지키기 위해 대사찰 건설에 착수하게 된다. 왕실 주도로 관사(官寺)를 창건해 불교를 정착시키고 이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시 일본에는 사찰을 세울 장인이 없었고, 결국 쇼토쿠 태자는 백제에 기술자 파견을 요청한다. 서기 577년은 백제에서 왕실이 주체가 되어 왕흥사(王興寺)를 창건한 해로, 위덕왕은 일본 왕실도 사찰 창건을 통해 흥성하기를 바라며 장인들을 파견한다.
이렇게 백제에서 파견된 장인 중 유중광(柳重光)은 쇼토쿠 태자로부터 ‘곤고(金剛)’라는 성을 하사받아 곤고 시게미츠(金剛重光)로 이름을 바꾸고, 오층탑과 함께 당시 일본 최대의 사찰이자 최초의 관사를 짓는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절이 바로 일본 오사카에 있는 시텐노지다. 고대국가 일본에 백제인이 세운 이 사찰은 지금까지도 일본이 자랑하는 문화유산이다.
시텐노지에 살아 숨 쉬는 백제의 혼
백제 장인에 의해 건립된 시텐노지는 곳곳에서 백제 건축의 영향을 알 수 있다. 시텐노지 경내 본당 옆에 자리한 오층탑을 두고 한국 학계는 백제의 세 번째 왕도였던 부여 땅 군수리 절터와 건축양식이 똑같다고 보고 있다. 남대문-중문-오층탑-금당-강당이 남북으로 일직 선상에 늘어서 있는 가람 배치도 시텐노지 건립 전 창건된 부여 능산리 절터나 군수리 절터, 정림사터에 적용된 가람 배치와 같다.
게다가 시텐노지는 군수리 절터 탑과 금당 간의 거리 등 백제 건물 비례와도 일치한다. 전각들도 한옥을 닮았다. 일본은 건축물을 지을 때 일반적으로 각이 진 서까래를 사용하는데 시텐노지의 서까래는 한옥처럼 둥글다. 못을 쓰지 않고 나뭇결을 짜서 맞춘 방식도 한옥과 비슷하다. 일본이 ‘스승의 나라’로 여길 만큼 수많은 문물과 문화를 전파한 백제. 그중에서도 일본 최초 관사 시텐노지 창건을 위한 백제 장인의 파견과 사찰건축 기술의 전파는 한류의 시초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