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등無等等, 광주 무등산] 무등의 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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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등無等等, 광주 무등산] 무등의 물·길
  • 유동영
  • 승인 2024.01.25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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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계곡을 따라 길을 만들고 사람은 물은 따라 길을 만든다. 물길과 산행 길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게 이 때문이다. 무등산의 많은 물은 광주 시민을 위한 네 개의 상수원을 만들었고, 일부는 광주호에 들른 뒤 담양의 가마골 물과 만나 극락강에 닿았다. 극락강은 청둥오리·가마우지·왜가리와 같은 새들에게 풍요와 안정을 선물하고, 사람들에게는 철도와 같은 새로운 길을 안내하기도 한다. 극락강역을 지나는 광주선의 시작점이자 종점인 광주역 너머에 한때 수많은 사람의 발길이 교차했던 서방시장이 있다. 

 

밤새 내리던 비가 그친 무등산에 새벽안개가 자욱했다. 동이 틀 즈음 상고대가 드러났고, 인왕봉 아래에서 제법 큰 배낭을 멘 한 남자를 만났다. 인기척이 없던 짙은 안개 속에서 마주친 만남이어서인지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7개월 된 아이를 가진 37세의 가장은 땀 좀 흘리고 싶어서 증심사에서 새벽 4시에 출발했단다. 그가 큰 배낭에서 컵라면을 꺼내 먹은 뒤 시간이 꽤 흘러 9시가 다 돼서야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길이 좀 보이나요?”라며 그에게 툭 하고 던졌다. 그는 씨익 웃으며 “열심히 걸어야죠” 답하고 길을 나섰다.  

 

무등산 서석대 위의 바위

 

극락교 아래 극락강

 

극락교 북쪽에 또 하나의 다리가 있는데, 순천과 송정을 잇는 경전선 철교다. 순천에서 06시 07분에 출발한 기차는 08시 25분경 극락강 철교를 지나 27분경 종점인 송정역에 도착한다. 순천을 출발해 광주에서 서는 선로를 두고 경전선이라 부르는 이유는, 삼랑진역에서 광주 송정역을 잇는 선로가 경상도의 ‘경’, 전라도의 ‘전’을 조합해 지은 이름이기 때문이다. 겨울 산 위에서 보는 일출이 버거우면 해에 밀려 달리는 것 같은 철교 일출을 극락강 아래서 보는 것도 좋다. 

 

1922년 극락강과 가까운 곳에 세워진 역에 극락강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역에는 역장 1명, 부역장 3명, 로컬 직원 4명 등 모두 8명 4개 조의 역무원이 하루 2교대로 일한다. 로컬이라 불리는 역무원은 구로에 있는 철도교통관제센터와 통신을 주고받으며 철도의 원활한 흐름을 관리한다. 밤 근무자들은 일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교대로 3시간의 휴식 시간을 가진다. 기차는 총 34회 극락강역을 통과한다. 

 

2023년 12월 18일, 노후화와 경제성 때문에 운행을 멈춘 셔틀 열차. 운행 시에는 하루 이용 승객이 70~80명 정도였으나, 현재는 약 30~40명의 승객이 극락강역을 이용한다. 하루 중 이용 승객이 가장 많은 시간은 오전 06시 53분 목포행 열차다. 목포로 출근하는 승객이 이용하며,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은 이용객 수가 평소의 두 배에 이른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승객이 안전하게 기차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밤새 쉴 새 없이 고생하는 역무원의 노고 덕분이다.

 

하루 이용객이 겨우 50여 명에 지나지 않는 작은 역이지만, 역의 존재감은 수백 명이 이용하는 큰 역 못지않다. 불교 색이 드러나는 지명이 더러 있으나 극락강만큼 호기심을 당기는 이름은 없다. 이승에는 없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별스러운 이름을 가진 역답게 자그마한 역 안에는 이용객들의 관심을 끄는 여러 장치로 가득하다. 역의 유래는 물론 역의 초창기·풍경 사진이 벽을 채우고 있고, 역무원 제복을 두어 방문객이 입어볼 수 있도록 했다.  

 

서방시장은 한때 양동시장·대인시장과 더불어 광주의 3대 시장으로 불릴 만큼 많은 사람이 오갔던 곳이었다. 근처에는 광주역·전남대학교 등이 있고 담양과 곡성으로 나가는 동광주의 길목이기도 하다. 서방시장 좌판의 물건이 사라지고 사람이 끊긴 데는 1993년 광주상고가 이전하고, 풍향동 일대가 아파트 건축을 위한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면서부터다. 한때 쌀과 잡곡 상점을 중심으로 한 가게가 100여 개나 됐던 서방시장은 이제 10여 개만 남아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남은 10여 개 가게도 물건을 팔아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40년 이상 한 자리를 지키며 장사를 해왔던 사람들이 차마 일을 놓을 수 없어 문만 열어 둔 정도다. 사람 손이 닿지 않아 곳곳이 부서지며 폐가로 변하고 있는 시장의 풍경은 90년대에 멈춰 있다. 다행인 것은 남아서 가게를 지키는 주인들의 인심 또한 예전 모습 그대로란 것이다. 손님 한 명도 없는 날이라도, 가게를 치우고 정리하며 올지 모르는 손님을 생각하며 넉넉한 웃음을 띤다.

 

 만춘상회 이삼순님(83세)      

목요일 오후, 쌀과 잡곡 등을 파는 만춘상회에는 한 명의 손님도 들지 않았다. 60년대 서방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던 그는 정부의 노점상 단속을 피해 함께 노점을 했던 일행들과 말바우시장에 자리를 잡았다. 다시 서방시장으로 돌아온 것은 시어머니가 하던 가게를 이어받기 위해서였지만, 지금은 말바우시장이 오히려 큰 시장이 됐다. 쌀과 팥 등에 올려져 있는 됫박의 손때에서 그가 걸어온 장사꾼의 길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명의 손님도 없던 그날도 그는 팔 거리를 구하기 위해 불편한 몸으로 버스를 타고 화순장을 들렀다. 이제는 화순만 해도 농사짓는 사람이 줄어서 물건을 구하기가 어렵다. 그는 그것을 알면서도 다음에 또 간다.

 

풍향건강원 한영희님(72세)      

그는 21세에 첫 아이를 낳은 뒤 23세부터 지금까지 서방시장의 한 자리에서만 장사하고 있다. 광주역에서 일했던 7세 연상의 남편이 어느 날 사표를 내고 시작한 장사는 연탄집게·화덕·빗자루 등을 파는 일이었다. 연탄불을 피우는 장사이다 보니 건강원 일로 이어지는 게 자연스러웠다. 어렵고 힘들다는 생각도 없이 일을 했다. 덕분에 자식 넷 중 셋을 이 가게에서 낳았고 모두 이 시장 안에서 키웠다. 2평도 되지 않는 것 같은 방에서 여섯 가족이 함께 잠을 잤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한때 80kg이었던 그의 몸은 자궁암·췌장암과 싸우며 반으로 줄었다. 찬바람 속에도 풍향건강원 문은 변함없이 열려 있고, 그는 여섯 식구가 누웠던 그 자리에 앉아 누구든 웃으며 반긴다. 

 

글・사진. 유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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