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받아 불법을 배웠다면, 은혜를 갚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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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받아 불법을 배웠다면, 은혜를 갚아야 합니다”
  • 김남수
  • 승인 2024.01.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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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등無等等, 광주 무등산] 백천사지 석탑 보존하는 연화사 명신 스님

광주천을 끼고 광주를 지켜주는 두 개의 오층석탑이 있다. 광주 사람들은 ‘동·서 오층석탑’이라 하는데, 동쪽 탑이 지산동 오층석탑이다. 주변은 법원과 관공서가 들어섰는데, 석탑 바로 옆에 연화사가 있다. 연화사는 이 오층석탑을 보존하기 위해 1979년에 세워진 사찰이다. 현재도 석탑을 보전하고 관리하는 연화사 명신 스님을 만났다. 

“광주 관음사 상인 스님이 1979년 석탑을 보전하기 위해 ‘보존위원회’를 구성하면서, 민가를 한 채 구입해 유치원을 먼저 세웠어요. 저도 따라 들어왔죠. 그런데 스님께서 1년 후 병환으로 입적하신 거예요. 그때부터 모든 것을 떠맡아 지금까지 왔죠.”

 

오층석탑

1970년대 광주 불교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이 관음사 상인 스님이다. 불교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신 분인데, 관음사에서는 일찍부터 보문유치원을 운영하기도 했다. 상인 스님은 석탑을 보존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다. 석탑 바로 옆 부지를 매입해 첫 발자국을 내디뎠다. 시작이 절이 아닌 유치원이었다. 현재의 연화유치원이다. 

“제가 관음사 시절부터 부모 없는 아이들 10명 정도를 키우고 있었어요. 스님이 애를 키운다고 하니 갓 돌 지난 애들, 세 살 먹은 아이들을 절에 데려다주곤 했죠. 여기로 와서 유치원을 개원하면서는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 학교를 보내고는, 차량을 운전해 유치원 원아들을 등하교시켰습니다.”

스님이 유치원을 운영한다고 하니 아이들이 많이 왔다. 그렇게 유치원도 커졌고 절도 커졌다. 차츰차츰 부지를 매입해 2005년 전면 개축해서. 1층은 유치원으로 사용하고 2층에는 법당을 올렸다. 현재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옛날에는 이곳이 딸기밭이었어요. 법원 자리는 형무소가 있었죠. 탑만 덩그러니 있었습니다. 저 옆에 성당이 있는데, 그리로 개울이 흘렀죠. 아마 이 일대가 다 절터였을 거예요.”

스님은 석탑을 관리하는 것은 물론 일대를 복원하고 싶었지만, 석탑이 있는 곳이 국유지이기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바로 옆에 절을 세우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때만 하더라도 관공서에서 관리를 제대로 했겠어요? 시간이 흘러 관심 주는가 싶더라고요. 그런데 일이 그렇게 쉽게 돼요? 
내가 누구한테 간섭받는 거 싫어해요. ‘당신들은 하지 않아도 우리는 부처님 일이니깐 우리가 알아서 잘하겠다’며 아웅다웅했죠. 그래도 요즈음은 제 말을 담아두긴 하더라고요.”

 

일연 스님

그렇게 40년 넘게 탑을 지켜왔다. 광주에서는 이 일대를 백천사(栢川寺)가 있던 절터로 유력하게 보고 있다. 탑은 일찍부터 보물로 지정됐다. 통일신라시대에 탑이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니, 절터의 역사로 따지면 1,000년이 훌쩍 넘는다. 일제 강점기 광주 도심이 변화하면서 도심의 문화유적 대부분이 사라졌는데, 탑은 용케 살아남았다. 

연화사에서 진행하고 있는 일 중 하나가 ‘일연 스님 추모 사업’이다. 매년 삼월 삼짇날 ‘일연 대선사 추모 다례재’를 진행하는데, 2023년까지 열다섯 해를 지냈다.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 스님이 광주 무량사(無量寺)에서 공부하셨다고 하잖아요? 광주에서는 이곳이 무량사라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해마다 다례재를 진행하죠.”

일연 스님 다례재는 연화사를 포함한 불교계뿐 아니라 유교를 비롯한 광주문화 관련 단체들이 함께한다. 

“무량사는 아미타부처님이 계신 곳입니다. 이곳이 광주 동구인데, 서쪽에는 성거사지 오층석탑이 있어요. 그곳은 남구 관할이죠. 내가 동구청에 ‘남구 성거사지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데, 우리는 왜 못 하냐?’고 이야기해요. ‘돈 달라는 것 아니다’라면서. 내년에는 몸이라도 왔으면 해요(웃음).” 

 

오층석탑 바로 옆에 연화사가 있다. 

봉사활동

연화사는 오층석탑 보존 활동도 하지만, 광주에서 봉사활동으로 더 알려졌다. 법회가 끝나면 무조건 봉사활동이다. 예전에 중증 장애를 지닌 아이들이 있는 곳에 가서, 아이들 밥을 먹이기도 하는 등 꾸준히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나주에 있는 장애인 복지회 활동도 했다. 
지금도 꾸준히 자비신행회, 광주전남불교환경연대, 맑고 향기롭게, 외국인 단체 등 7곳을 후원하고 있다. 정월 기도와 부처님오신날에는 꽤 큰 규모의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신도분들이 스님의 뜻을 따라오세요?”

“지금은 다들 나이가 들어, 몸으로 하는 것은 줄었죠. 저는 그래요. ‘기도도 중요하지만, 봉사가 기도의 시작이다’, 그리고 ‘이 몸을 받아 부처님 법을 배웠으면,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연화사에는 명신 스님을 제외하고 일곱 분의 스님이 더 계신다. 유치원 원장과 어린이집 원장 모두 그 스님들이 맡고 있다. 다른 스님들 역시 ‘차’와 ‘명상’ 등으로 대중들을 만난다. 그것 때문인지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원아 모집에 걱정이 없다.

“스님들이 여기에 오면 다 박사학위를 따요. 여기 오면 공부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나 봐요. 제가 시킨 거는 아니에요(웃음).”

연화사는 부처님오신날 연등을 법당 천당에 걸지 않는다. 또 하나, 법당에는 에어컨이 없고 난방시설도 없다. 처음부터 스님의 머릿속에는 아예 생각이 없었다. 

“법당은 추워야 기도가 됩니다. 추우면 옷 하나 더 껴입고, 한 번 더 절하면 돼요. 제가 40년 넘게 연화사에 있으면서 신도들에게 ‘뭐 뭐 행사하고 기도 있으니 오세요’라는 안내장 한 장 보내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내내 스님의 꼿꼿한 성품이 드러난다. 그 성품이 40년간 연화사를 일구었고, 1,000년 역사의 탑을 지켜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사진. 유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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