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고(史庫), 역사를 보관하다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왕조실록』이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됐다. 실록으로 대표되는 왕조의 통치 기록, 고려·조선시대의 역사 기록, 국가적으로 중요한 서적과 문서는 이를 보관하던 창고인 사고(史庫, 사각史閣, 실록고實錄庫, 지고地庫)에 보관돼 엄격하게 관리됐다. 사고에는 『조선왕조실록』과 『선원록』과 같은 조선 왕실의 계보, 중요한 역사서, 경학서 등이 함께 보관됐다. 이처럼 사고는 서적보관소로서 의미가 깊은 곳이었다.
조선은 “역사는 천하의 시비를 공정하게 하여 만세의 권계(勸戒, 훈계)를 남기는 것”이라는 목적으로 초기부터 실록을 편찬했다. 이를 효율적으로 보존하기 위해서 한 곳에만 보관하지 않고 나누어 관리하는 사적분장지책(史籍分贓之策), 즉 사마천이 이야기한 “(정본은) 명산에 간직하고 부본(副本)은 서울에 둔다”라는 형식으로 관리했다. 결과적으로 전란의 참변에서 실록을 지켜낼 수 있었다.
고려 전기에는 실록을 편찬해 개경의 사관(史館), 즉 춘추관에만 사고를 설치했다. 하지만 고려 현종 때 거란의 2차 침입으로 모두 소실됐다. 이후 태조~목종까지의 7대 실록을 다시 편찬했고, 이마저 1126년(인종 4) 이자겸의 난으로 궁궐이 불탈 때 위험에 처해졌으나 숙직 중이던 김수자(金守雌)의 노력으로 보존됐다. 1227년(고종 14) 처음으로 해인사에 외사고(外史庫, 서울 밖의 사고)를 설치했다. 고려 공양왕 대에는 외사고가 충주 개천사(開天寺)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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