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척간두에서 사바세계를 바라보다 - 은암 고우隱庵古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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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척간두에서 사바세계를 바라보다 - 은암 고우隱庵古愚
  • 효신 스님
  • 승인 2023.07.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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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스님들의 수행과 사상]
능소能所가 무너진 중도의 자리,
백척간두에서 사바세계를 바라보다
- 은암 고우隱庵古愚
은암 고우(隱庵古愚) 스님

‘중도의 연기’

부처님오신날에도 등을 켜지 않고, 법당에서는 재(齋)와 불공 없이 오직 법문과 참선 수련만 하는 절이 있다. 경북 봉화 문수산에 있는 금봉암이다. 기복보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되새기는 청복(淸福)을 닦자는 고우 스님(隱庵古愚, 1937~2021)의 수행가풍이다. 고우 스님은 소박하고 지성을 갖춘 이 시대의 마지막 선승이었다. 학식이 뛰어나진 않으나 체득한 혜안으로 막힘이 없이 불법의 근본 자리를 현대인들에게 쉽게 설했다. 회통의 원리를 그대로 보여주신 분이다. 

불교가 추구하는 궁극의 인간형은 자유인이다. 달리 말하면,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는 깨달음에 이르러야 한다. 그런데 고우 스님은 “설사 깨닫지 못한다 해도 이치를 아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한다. 그 이치란 ‘존재의 원리’로, 본질을 볼 수 있는 시선이다. 스님은 그것을 ‘중도의 연기’로 칭했다. 

고우 스님의 가르침은 ‘중도, 연기, 정견’ 세 단어로 압축된다. 스님은 “중도(中道)란 불교의 근본 자리다. 정견(正見)은 중도와 거기에서 파생되는 연기를 바로 보는 것으로, 일상에서 시각을 변화시켜 중생의 자리에서 본래 부처임을 보게 한다”고 설했다. 

깨달음은 본질을 보는 것이다. 차별 현상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그것을 아우른 공통된 본질이 있다. 스님은 중도가 바로 존재의 본질이라고 했다. 중도의 자리를 보기 위해서는 연기법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끼(짚으로 꼬아 만든 줄), 짚신(짚으로 삼아 만든 신), 가마니(짚을 돗자리 치듯이 쳐서 만든 것)’를 예시로 든 스님은 “이것들은 그 형태와 쓰임새가 모두 다르나 재료는 짚으로, 그 본질은 하나다. 이를 알아채는 게 바로 불교의 공부이자 견성”이라 했다. 스님은 중도가 곧 연기라 한다. “중생들은 차별 경계에 집착하여 분별하지만, 여래는 양변을 여읜 중도의 자리에서 모든 존재는 서로 의지하여 생겨나는 연기 원리를 설한다. 연기법은 곧 존재의 원리이며, 이 세상은 연기로 존재한다는 것이 불교의 답이다.”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고우 스님의 이러한 견처에 정점을 찍은 계기는 『육조단경』의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는 문구였다(1987년 봉화 각화사 동암에서). 그동안 나름대로의 도리를 깨달았다고 생각했던 스님은, 이 문구에서 의혹이 들어 다시 참구하게 됐다. 

이 도리에 대한 가장 명확한 설명이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에 있었는데, 다른 논서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깊은 혜안이 담겨 있었다. 스님은 “백척간두진일보란 말을 온전히 이해하고 안목이 열렸다고나 할까요. 모든 존재 원리가 이해되었습니다. 이건 화두 타파하고는 다른 건데, 당시에는 ‘회광반조’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고 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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