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래가 된 별님, 북두칠성] 칠석과 우리 별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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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가 된 별님, 북두칠성] 칠석과 우리 별자리
  • 안상현
  • 승인 2022.07.26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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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로 들어온 별자리 신앙
북한 대동군 덕화리1호분 북쪽 천장에 그려진 북두칠성, 사진 국립문화재연구원

해마다 음력 칠월 칠일을 칠석이라고 한다. 칠석에는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전설이 있다. 전설은 이렇다. 옥황상제의 딸인 직녀와 하늘의 목동이었던 견우가 결혼하고 신혼 재미에 취해 각자 맡은 임무를 게을리하자 옥황상제가 벌을 내렸다. 둘은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떨어져 있다가 해마다 칠월 칠석 단 하루만 만날 수 있게 됐다. 

칠석에는 칠성신에게 장수와 복을 비는 세시풍속이 있다. 그 집안의 안주인이 장독대에 정화수 한 그릇을 떠 놓고 촛불을 밝힌 다음 동서남북을 향해 네 번 또는 일곱 번씩 절을 한다. 그 뒤 하늘의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축원하고 식구 수대로 소지(燒紙, 종교적·신앙적 목적으로 종이를 태우는 행위)한다. 이렇게 하면 한 해 동안 식구들이 무탈하다고 믿는다.

한국사 최초의 별자리는?

기원전 6세기 중국 춘추시대에 공자가 민요를 수집해 『시경』을 지었는데 거기에 견우별과 직녀별이 언급된다. 우리는 어떨까? 고구려의 도읍이었던 평양 인근 덕흥리에는 서기 408년에 만들어진 고구려 고분이 있다. 그 안에 다채로운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특히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서 있는 견우와 직녀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견우는 소를 끌고 있고, 직녀의 발치에는 검둥개가 따르고 있다. 서기 408년 고구려 사람들도 견우와 직녀 이야기를 알고 있던 것이다. 

그 외에도 고구려 사람들이 압록강과 대동강 유역에 남긴 왕과 귀족의 무덤은 돌방무덤 형태로 그 안에 화려한 벽화가 많이 남아 있다. 별자리는 그 벽화의 주요 소재 중 하나다. 흔히 동그라미를 흩어 놓은 도상을 놓고 무조건 별자리라고 단정하기 쉬운데, 그러한 도상은 하늘의 별을 그렸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별자리를 그렸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특정한 모양을 한 별들을 다른 별보다 크기를 강조해 그렸다거나 점으로 표현한 별들을 선으로 이어놓아야만 별자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고구려 사람들은 적어도 4세기 무렵에는 별자리 개념을 갖고 있었다고 확신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이른바 ‘고인돌 별자리’는 여러 가지 불확실한 면이 있다. 고인돌이나 너럭바위에 새겨져 있는 홈을 통상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기 위한 성혈(性穴)이라고 해석해오다가 1980년대 북한 학자 리준걸이 고인돌 위에 파놓은 홈 일부가 별자리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일부 특정 별만 강조해서 새기거나 선으로 이어서 별자리를 표현한 예는 드물다. 그러므로 일부는 별을 나타냈다고 할 수는 있어도 별자리까지 표현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더군다나 고인돌 위에 홈이 새겨져 있다면 그것은 고인돌을 만든 이후에 새긴 것은 분명하나 고인돌을 만든 사람들이 새겼는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오히려 전라북도 익산 미륵사지 강당 터 중심 주춧돌 위 윷판바위 그림이나 1972년 서울의 지하철 1호선 공사 때 옛 종루 자리에서 발굴된 주춧돌 위에 새겨진 직경 40cm에 이르는 윷판은 모두 주춧돌을 만들고 나서 윷판을 새겼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보면 한국사 최초 별자리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졌다고 볼 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별자리 중에서 가장 일반적인 것은 북두칠성과 남두육성이다. 이 두 별자리는 일반적으로 서로 짝을 이루어 나타나는데, 무덤방 북쪽에는 북두칠성을 그리고 남쪽에는 남두육성을 그렸다. 이와 관련해 서기 4세기 중국 동진(東晉)의 간보(干寶)가 편찬한 『수신기(搜神記)』 권1에 관로(管路)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 어떤 사람이 외아들을 뒀는데, 하루는 지나가던 스님이 그 아이의 상을 보고는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 부모가 살릴 방법을 간절히 묻자, 그 스님은 산 위에서 바둑을 두는 두 노인을 찾아가 부탁해 보라고 방도를 일러줬다. 소년이 두 노인을 찾아가 술과 안주를 대접하자, 붉은 옷을 입은 노인이 살려주자고 하고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은 안 된다고 옥신각신하더니, 마침내 두 노인이 화해해서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이 생명부를 꺼내 ‘十九’에 한 획을 추가해 ‘九九’로 고쳐서 소년의 수명을 늘려줬다.

이런 이야기의 연원은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도교에서 남두육성은 수명의 연장을 맡고 북두칠성은 사후의 평안을 맡는다고 믿었다. 여러 고구려 고분에 남두육성과 북두칠성을 함께 그린 것으로 보아, 고구려 사람들도 이러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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