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래가 된 별님, 북두칠성] 불화로 살펴본 칠성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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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가 된 별님, 북두칠성] 불화로 살펴본 칠성신앙
  • 정진희
  • 승인 2022.07.26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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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성에서 불교의 신앙으로
그림 1. <해인사 길상암 치성광여래회도>, 1874, 견본채색, 해인사 길상암 소장

깊은 밤 북쪽 하늘에 국자 모양의 7개 별을 일러 북두칠성이라 한다. 우리는 북두칠성의 기운을 받아 태어나고, 칠성판(七星板, 시신 밑에 까는 북두칠성 모양으로 구멍이 뚫린 나무판) 위에서 생을 마감했으며, 할머니나 어머니들은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 놓고 칠성님께 간절히 소원을 빌었다. 인간의 길흉화복과 생명줄까지 모두 칠성님이 주관한다고 믿었기에 절집에서는 일곱 별을 그려 칠성각에 모셨다. 

불화의 명칭은 화면에 그려진 중심이 되는 존격에 따라 정해진다. 따라서 북극성을 인격화한 치성광여래를 본존으로 모신 칠성도의 학술 명칭은 ‘치성광여래도(熾盛光如來圖)’라고 해야 옳다. 하지만 우리가 기도하고 그 기도에 응하는 대상은 북두칠성이기에 이 불화는 ‘칠성도(七星圖)’라고 불려왔다. 

흔히 절집 칠성신앙이 도교의 영향을 받아 생겨났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도불 신앙이 혼습된 조선 후기 이후의 사정이다. 신앙의 변화에 따라 그림의 구성요소가 더해지고 빠지는 특징을 보이는 칠성도를 통해 세월에 따라 변화한 사찰의 칠성신앙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치성광여래, 구요신앙과 북극성 신앙의 결합

현존하는 칠성도의 제작 시기는 대부분 19세기 중후반 이후로 편중돼 있다. 극히 짧은 기간이지만 현존하는 불화의 총 수량에 있어서는 수위를 차지할 정도로 많아 칠성신앙에 관한 대중적 호응을 실감할 수 있다. 수룡당 기전(繡龍堂 琪銓)이 그린 <해인사 길상암 치성광여래회도>(그림 1)는 우리가 알고 있는 칠성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림의 중앙 수미단 위 연화대좌에 결가부좌로 앉아 있는 치성광여래는 ‘금륜불정치성광여래’라는 이름에 걸맞게 금륜(金輪)을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이다. 단상의 좌우로는 일월(日月) 표식이 관에 그려진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있고, 여래와 보살 좌우로는 화면 위에서부터 칠성여래와 수성노인을 비롯해 동서남북 각각 일곱 별자리를 나타내는 28수가 있다. 그 아래의 삼태성, 자미대제, 칠원성군 등 그림에 그려진 모든 이들은 별을 인격화해 나타낸 형상들이다. 칠성도에 이렇게 많은 성신이 등장하는 까닭은 길고 긴 세월 동안 변화한 절집의 성수(星宿)신앙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칠성 불화의 뿌리는 그림에서 가장 높은 존격으로 자리한 치성광여래라는 부처에서 찾을 수 있다. 치성광여래는 북극성을 나타내는 부처로 서양의 점성신앙과 중국의 북극성 신앙이 만나 생겨난 부처님이다. 밤하늘의 별을 보고 인간사의 길흉을 점치는 점성술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탄생해 그리스에서 다시 인도로 전파되면서 아홉 개의 별로 인간사를 풀이하는 구요(九曜)신앙으로 발전한다. ‘구요(九曜)’는 일·월·화·수·목·금·토성과 더불어 눈에는 보이지 않는 별인 ‘나후(羅睺)’와 ‘계도(計都)’를 합친 아홉 행성을 말한다.

우리에게 구요는 생소한 별이지만 고려의 왕건은 아홉 별을 모신 전각인 구요당(九曜堂)을 924년 창건해 독립적인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을 만큼 당시 사람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별들이었다. 흔히 우리가 쓰는 ‘직성이 풀린다’라는 말은 황도12궁 별자리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본명(本命, 타고난 명)을 주재하는 이 아홉 별[九曜]에 기도를 올려 악운을 길운으로 풀어냈던 직성(直星) 신앙에서 유래한다. 북두칠성이 12간지(干支)에 따라 인간의 운명을 다스린다는 북두본명(北斗本命) 신앙도 구요의 영향을 받아 생겨났다.

구요는 밀교의 전래와 함께 중국으로 들어온다. 이때 지역적인 특성을 반영해 북극성과 결합한 치성광여래 신앙으로 변모한다. 밤하늘의 황제 북극성을 의미하는 치성광여래를 모시고 진행되는 밀교 의례였던 ‘치성광법식’은 원래는 중국 황제의 본명소재(本命消災, 재앙을 없애고 복덕을 성취함)를 위한 의례였지만 점차 대중에게도 전파돼 다가올 악운을 길운으로 바꿀 수 있는 예방의식으로 자리 잡아 갔다. 

돈황에서 발견된 897년 그려진 <치성광여래와 오성도>(그림 2)는 치성광여래와 별을 주제로 그린 불화로 인도에서 전래된 구요와 북극성 신앙이 혼합하는 과정을 잘 나타낸다. 그림 속 치성광여래가 구요(아홉 별)가 아닌 금·목·수·화·토성을 나타내는 다섯 인물과 함께 있는 까닭은 중국인들에게 오행(五行)을 의미하는 다섯 별이 낯선 구요보다 더 친숙하기 때문이다. 그림에서 치성광여래가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있는 모습은 국자처럼 생긴 북두칠성을 북극성이 마차처럼 타고 천공을 순회하는 것으로 여겼던 전통사상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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