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 원당願堂에 나투신 백의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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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 원당願堂에 나투신 백의관음
  • 송화섭
  • 승인 2021.09.30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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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길 관장하며 민중 보살피는
변산반도 백의관음보살
죽막동 수성당. 개양할머니를 성인으로 모신 사당이다.

서해의 해문, 변산반도

조선 후기 격포리에 수군이 주둔하는 격포진이 있었고, 위도 진리에는 위도진이 있었다. 격포와 위도의 수군 배치는 격포와 위도 사이가 해상교통의 요충지임을 말해준다. 『조선왕조실록』은 변산반도와 위도 사이를 서해의 해문(海門)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격포리 죽막동에는 해변굴과 수성당이 있다. 죽막동은 ‘울창한 대나무숲 마을’이란 뜻의 지명으로, 죽막동 끝머리 돌출지형에 해변굴이 그 옆에 수성당이 조성됐다. 해변굴은 개양할머니 처소인 관음굴이고, 수성당은 개양할머니 사당이다. 수성당 터에서는 백제 시대 5세기 중반에서 6세기 중반 해양제사유물이 다량 출토됐다. 죽막동 해양제사유적은 국내 최고의 해양제사터로 평가받고 있다. 죽막동 제사유적은 격포가 기항지이자 출항지였음을 알려준다.

『대동지지』에는 위도에서 배를 띄우면 1주일 만에 중국 항주만으로 건너간다고 기술돼 있다. 위도 치도리는 범선(帆船, 돛단배)들이 접안하기 좋은 포구이며, 대리는 범선들이 출항하기 좋은 포구다. 접안지가 무역선이나 어선들이 기항해 배를 대는 항구라면, 출항지는 범선들이 바람을 기다렸다가 계절풍을 이용해 출항하기 좋은 곳이다. 위도에서는 대리 전막 마을의 석금이 출항지다. 이러한 사실을 말하듯 치도리 원당에는 임경업 장군을 당신(堂神)으로 모시고 있으며, 대리 원당에는 원당부인령대신을 당신으로 모시고 있다. 이 원당부인령대신이 여신(女神)으로서 ‘원당마누라’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원당마누라의 도상이 백의관음보살상으로 그려져 있다.

 

개양할머니와 원당마누라

죽막동 제사유적의 출토 유물은 대체로 5세기 중엽에서 6세기 중엽의 제사용 토기가 주류를 차지한다. 이 시기는 백제의 동성왕·무령왕대로, 백제가 공주로 천도한 이후 중국 남조와 외교 관계가 활발히 전개되는 시점이었다. 발정(發正) 스님의 『관세음응험기』는 백제와 중국 남조의 해상교류를 보여준다. 534년 중국 양나라로 유학을 떠난 발정은 30년 뒤 귀국하면서 월주(越州) 바닷가의 관음도실(觀音堵室)에 들러 참배했고, 관세음 응험을 겪는다. 발정의 『관세음응험기』에는 구도자에게 밥을 제공하는 할머니가 등장한다. 이 할머니가 죽막동 수성당 개양할머니의 원형일 수 있다. 발정의 귀국 시점과 죽막동에서 출토된 해양제사유물의 연대가 6세기 중엽으로 일치하기 때문이다. 즉, 개양할머니는 6세기 중엽 백제 시대에 중국 월주에서 건너온 해신할머니일 수 있다. 월주의 관음도실을 오늘날 중국 주산군도 보타낙가산(普陀洛迦山)으로 추정해 본다면, 백제 시대에 중국 보타낙가산의 관음신앙이 변산반도에 들어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발정의 『관세음응험기』에서 해신할머니는 관세음보살의 화신(化身)으로 등장한다.

죽막동 주민들은 개양할머니가 하얀 옷[白衣]을 입고 앉아있고, 키가 우뚝하며, 8명의 딸을 거느리고 있다고 증언한다. 개양할머니는 해신할머니이자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다. 죽막동과 바다 건너 이웃하는 위도 대리 원당의 주신은 원당마누라로, 부인(婦人) 영신이다. 그런데 실제 원당마누라 당신도는 백의관음보살상으로 그려졌다. 얼굴에 콧수염과 턱수염이 있으며 남성상의 곡선미를 보여준다. 관세음보살의 여성화는 중국 당대 이후 이뤄졌다. 원당의 관세음보살상은 백의대사(白衣大士)로서 백제 시대 관세음보살상의 전통을 이어온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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