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관세음보살은 일반 대중들이 가장 친숙하게 부르는 명호이다. 우리가 사는 사바세계는 중생들의 욕망 때문에 정보(正報, 과거의 업에 따라 얻은 몸)가 이루어지고, 중생들이 살아가면서 국토세간을 건립해 의보(依報, 살아가고 있는 환경)가 이루어지므로, 세간은 한순간도 사건·사고가 없는 날이 없다. 중생들이 짓는 행위로 인해 행복과 불행이 동전의 양면처럼 번갈아 일어나서 절절한 기구와 탄식이 그치지 않는다.
이런 사바세계에서 가장 많이 부르는 명호가 아마도 “관세음보살”일 것이다. 불교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동안 가장 친근하게 다가온 것이 관음보살이고, 그래서인지 가장 많은 신행체험으로 남아있는 것 또한 관음 영험이다. 백제 발정 스님이 월주(越州) 지역의 관음도실(觀音堵室)을 찾아가 관음을 친견했다는 일화부터 고대소설 『심청전』의 모델로 알려진 관음사 연기설화까지, 많은 신행체험에서 관세음보살은 수행자의 득도를 도와주는 조력자이자 중생의 원과 고통을 풀어주는 사도(使徒)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경전 속 다양한 관음신앙
불교의 사대보살로 추앙되는 관세음보살은 대중들이 친숙하게 읽는 경전 대부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관음보살을 다루는 경론으로는 법화계열과 반야계, 밀교계, 유가계, 삼매계, 행법계 등 80여 경론이 있다. 경론마다 다양하게 설해지는 모습을 통해 관음의 폭넓은 신행을 알 수 있다. 관음보살이 등장하는 대표적인 경전들을 살펴보자. 법화계열 경전 중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일명 『법화경』)은 관음사상의 원전이라 할 만큼 관음의 체계적인 구제행을 보여주고 있으며 「관세음보살보문품」(일명 「보문품」)을 별전해서 『관음경』으로도 신행됐다. 우리나라 불자들이 가장 많이 독송하는 경전인 『마하반야바라밀대명주경(摩訶般若波羅蜜大明呪經)』(일명 『반야심경』)을 포함한 반야계 경전에서 관음은 공(空)을 체득해 반야바라밀을 실천함으로써 부처님을 도와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로 나온다. 『대품반야경』 등에서는 삼매를 얻어 무량중생을 구제하는 보살로 설해진다.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밀교계 경전에서는 경전의 관음칭명 뿐만 아니라, 다라니의 송지(誦持)에 의한 관음의 구제를 설하기도 한다. 『관음경』과 함께 널리 수행되었던 『청관세음보살소복독해다라니주경(請觀世音菩薩消伏毒害陀羅尼呪經)』(일명 『청관음경』) 등에서는 일심칭명(一心稱名)과 진언[呪]의 송지에 의해 불법을 망실하지 않고 지녀서, 재난을 물리치고 복을 얻으며 속히 해탈하는 관음보살의 구제신앙을 설한다. 삼매경전류에서는 관음의 자재한 구제력의 원천인 삼매의 수행과 실천을 밝힌다. 『수능엄경』에서는 관음이 이근원통(耳根圓通,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는 수행법)을 이루어 중생의 소원에 응(應, 관음이 응화함)할 수 있음을 밝히고 32응신(應身)으로 중생을 구제함을 설한다.
우리나라 의례에 빠지지 않고 독송되는 『천수천안관자재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대다라니경(千手千眼觀世音菩薩廣大圓滿無礙大悲心大陀羅尼經)』(일명 『천수경』)에서는 관음의 십대원(十大願)을 비롯해 신통자재한 인연을 설하여 중생의 병고와 액난을 제하고 불법으로 인도하는 경으로 널리 독송됐다. 이들 경전에서는 다양한 형상을 하고 갖가지 물건을 지닌 관음이 등장해서 백의관음(白衣觀音), 마두관음(馬頭觀音), 불공견색관음(不空羂索觀音), 여의륜관음(如意輪觀音), 청경관음(靑頸觀音) 등과 8관자재, 25관음, 40수관음을 설하며 폭넓은 관음의 구제 권능을 보여준다. 중국 관음 신행에 깊은 영향을 끼친 『관세음삼매경(觀世音三昧經)』에서는 관음이 선세에 성불하여 정법명여래(正法明如來)가 되었다고 하고, 『관음수기경(觀音授記經)』에서는 아미타불에 이어 보광공덕산왕여래(普光功德山王如來)로 성불한다고 설한다. 관음이 일불승도에 있는 보살로서 자재한 응화로 중생을 구제하고 장차 부처의 깨달음을 이룰 것임을 보여준다.
『대방광불화엄경』에서는 관음의 주처(住處)로 보타낙가산(寶陀洛伽山)을 설해서 관음주처신앙이 유행하게 됐고, 선재동자가 법을 묻는 53선지식들 중 28번째의 하나로 관세음보살이 보살대비속질행해탈문(菩薩大悲速疾行解脫門, 40권본)을 설한다. 특히 관음은 대비법문광명행(大悲法門光明行, 크나큰 자비 광명의 묘법)을 닦아 색신을 나투고, 음성과 위의 신통변화을 통해 널리 중생을 구제하고 성숙시켜, 관음을 칭명하고 친견하는 자는 일체의 포외(두렵고 무서움)를 여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퇴전치 않게 한다고 설한다.
한편 관음의 다양한 교화행으로 중국에서 많은 의경(疑經)이 찬술됐다. 『관세음삼매경(觀世音三昧經)』, 『고왕관세음경(高王觀世音經)』, 『관세음십대원경(觀世音十大願經)』, 『관세음영탁생경(觀世音詠託生經)』, 『관세음보살왕생정토본연경(觀世音菩薩往生淨土本緣經)』, 『관세음참회제죄주경(觀世音懺悔除罪呪經)』, 『관세음소설행법경(觀世音所說行法經)』, 『관세음보살구고경(觀世音菩薩救苦經)』 등이 민간에 전래해 널리 유행했다.
이들 관음경전류의 관음행은 첫째, 중생이 고난 속에서 일심(一心)으로 칭명하거나 진언을 부르면 어디든 나투어 위난에서 벗어나게 하고 소원을 이루게 한다. 대표적인 예가 『법화경』 「보문품」의 일심칭명하여 해탈을 이룬다는 교설이다. 둘째, 관음의 구제는 본연(本緣)과 본원(本願)에 의한 것으로, 이근원통을 이루어 어디든 응화하여 중생의 근기에 따라 교화한다. 이러한 권능을 수행하기 위해 관음은 다양한 위의와 형상을 갖추고 있다. 셋째, 관음은 보타낙가산을 주처로 하는 관음정토가 있고, 아미타불의 좌협시보살을 수행하면서도 사방세계의 중생을 제도하며 보살도를 이루어, 미래세에는 장차 정각을 이룬다는 내용이다. 넷째, 관음은 본서에 따라 보살도를 수행하고 이로써 중생에게 법을 설하여 중생이 불퇴전에 오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게 한다는 사상 등이다.
일심으로 부르는 관세음보살
『법화경』 「보문품」 중심이었던 관음신행은 수많은 경전이 전역되고 관음의 전생과 인행(因行, 외부 요인에 흔들리지 않고 오롯이 수행정진하는 것), 서원, 삼매 및 권능이 알려지면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가장 널리 수용된 형태는 ‘일심칭명’에 의한 관음신앙일 것이다.
『법화경』에서는 “중생들이 생사고해 속에서 관세음보살이 있음을 듣고 일심으로 명호를 부른다면 보살이 곧 그 음성을 관(觀)하고 모두 해탈을 얻게 한다”며 일심칭명을 설하고 있다. 이러한 일심칭명은 매우 간단한 신행으로, 초기 관음신앙을 유행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심칭명에 의한 관음의 대비 구제행이 이루어지는 것은 『능엄경』, 『화엄경』 등 관음과 관계된 경전 대부분에 나온다. 이를 체계적으로 잘 설하고 있는 것이 『법화경』 「보문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일심칭명으로 관음의 구제가 이루어질까.
천태 대사는 관음의 일심칭명에 의해 중생과 관음 사이에 감응도교(感應道交)가 이루어지므로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관음의소』에서 중생의 구제를 삼업감응(三業感應)의 관계로 설명한다. 『법화경』 「보문품」에서는 우리가 관세음보살을 찾게 되는 세 가지 경우를 든다. 이에 따르면 일곱 가지 고난, 즉 칠난(七難)에 처했을 때 일심으로 관음을 부르며, 탐·진·치 삼독의 번뇌로 괴로움에 처했을 때 관음을 염(念)하고, 자식을 갖고자 소원하는 이구양원(二求兩願)으로 관음을 예배하고 예경하게 된다. 이것들이야말로 인간이 살면서 가장 밀접하게 겪는 고난과 바람이며, 이런 고난과 바람에 빠진 우리를 관음이 구제해 준다고 한다.
칠난이란 ①큰불이 났을 때, ②큰물에 빠졌을 때, ③태풍과 같은 바람의 고난, ④무기로 위해를 가해올 때, ⑤야차와 나찰의 악귀의 난, ⑥갖가지 사건으로 구속되는 고난, ⑦원수와 도적의 난이다. 경에서는 칠난에 처해 일심으로 관음을 부르면 “설사 불에 들어간다 해도 불이 능히 태우지 못하고, 만약 물에 빠진다 해도 곧 얕은 데에 도달하고, …”라며 관음이 고난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중생들이 고난을 겪어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구업(口業)의 근기를 이루어 관음의 응함이 있다는 사실이다[口機應].
삼독(三毒)이란 우리가 생로병사의 고해에 윤회하게 하는 근본 번뇌들이다. 삼독 중 음욕(淫慾)은 인간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갖가지 탐욕이고, 진에(瞋恚)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일어나는 화내는 마음이며, 우치(愚癡)는 세상에 대해 지혜롭게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다. 삼독의 번뇌들이 치성할 때 의업(意業)을 통해 일념(一念)으로 관음을 생각하면 관음이 이러한 번뇌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는 중생들이 인생의 고뇌에서 의업의 근기를 이루어 관음의 응함이 있다는 말이다[意機應].
이구양원이란 딸과 아들 낳기를 바라는 두 가지 소원이다. 가정은 인간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단위이고 그 구성은 자식을 얻는 것에서 시작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천민부터 황제에 이르기까지 제 자식을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런데 이런 중생들의 소망을 관음이 들어준다. 중생들이 자식에 대한 원을 세우고 관음을 예배하고 공경하여 수행하면 숙세에 선덕을 쌓은 자식을 얻는다. 이는 중생들이 신업(身業)으로 예배하고 공경하는 수행을 통해 근기를 이루어 관음의 가피를 얻는다는 뜻이다[身機應].
관음이 가피를 내리는 과정
그럼 이러한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은 어디에서 생기며, 가피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일심칭명에 의한 중생의 감(感, 관음을 알아감)에 관음이 응하는 일은 관세음보살의 본서(本誓, 부처가 되기 전 보살로서 수행할 때 세운 서원)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갖가지 악업을 지은 과보(果報)로 불과 물 등 고난에 처해 있는 중생의 모습을 본 관세음보살은 보리심을 일으켜, 중생들이 부르면 언제든지 듣고 나투어 고난을 벗어나게 하겠다고 서원했다(『관음의소』). 이 서원을 따라 인행을 닦아 관음은 관음보살이 됐다. 이제 관음은 부처가 될 후보인 보처보살(補處菩薩)로서 중생이 감함에 따라, 언제 어디서나 응하게 된다.
관음보살이 본래 서원에 따라 중생이 일심으로 부르는 소리를 듣고 그에 응할 수 있는 이유는 관음의 이근원통 수행에서 찾을 수 있다. 『수능엄경』은 관세음보살이 과거 인행 시 부처님으로부터 문(聞)·사(思)·수(修) 삼매를 가르침 받고, 듣는 근기와 듣는 성품을 이루고, 듣는 것을 통달해 이근(耳根, 소리, 청각)이 원만히 통했다고 설한다. 그래서 중생들이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면 이를 듣고 자재로이 몸을 나투어 중생을 해탈케 한다고 한다.
천태의 『법화문구』도 중생들이 관음을 일심으로 부르고 염하며 서원을 세워 닦으면 관세음보살이 일시에 원만하게 응할 수 있다면서, 관음의 위신력은 관음보살이 보현삼매(普現三昧)에 들었기에 가능하다고 설한다. 관음은 이미 묘각(모든 번뇌를 끊고 지혜를 원만히 갖춘 부처의 경지)을 증득했지만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보살의 지위에 계신 분으로, 부처에 들어가는 단계에 이미 이르렀기 때문에 법계에 몸을 나투심이 자재하다고 한다. 관음이 든 삼매는 현일체색신삼매(現一切色身三昧)로, 제도하는 대상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몸으로 나투어 중생에 응하게 된다는 뜻이다.
정리하면, 중생들에게는 늘 칠난과 삼독의 번뇌와 양원의 바람이 찾아온다. 하지만 일심으로 관음을 부름으로써 구업을 청정히 하여 고난에서 벗어나고, 일념으로 관음을 염함으로써 의업을 청정히 하여 마음의 해탈을 얻으며, 몸으로 관음께 예배하고 공경함으로써 신업을 청정히 하여 소원이 이루어진다. 이는 삼업을 청정히 하는 자력 수행을 통해 관음의 응함을 만나는 실천법문으로, 육근을 청정히 하여 불도에 들어가는 『법화경』의 ‘육근청정(六根淸淨)’ 법문과 다름없다. 즉 일심칭명으로 삼업을 청정히 함으로써 중생의 육근에서 천인의 육근, 성문 연각의 육근, 보살의 육근, 끝내는 부처의 육근을 이룰 때 관음보살이 우리에게 응하는 가피를 입게 된다.
이기운
동국대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 조교수로 역임 중이다. 주요논문으로는 「새로 발견된 妙法蓮華經三昧懺法을 통해 본 고려후기 법화신행」, 「천태의 관음(觀音)염불수행 감응체계와 지관화」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법화삼매의 전승과 수행』, 『한국불교와 법화사상』,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명상100문 100답』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