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의 변형과 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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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의 변형과 고행
  • 이상헌
  • 승인 2021.09.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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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휴머니즘과 불국정토

세계의 주요 종교 가운데 불교보다 과학기술에 친화적인 종교는 없을 것이다. 기술의 발전은 전통적인 세계관과 가치관에 변화를 요구하는 경우가 흔하고 종교는 이를 위협으로 받아들여 보수적으로 대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불교만큼은 여타의 종교들과 다른 태도를 보인다. 자비를 핵심 가치로 내세우고 깨달음을 통한 개인 삶의 고양, 궁극적으로 연기의 사슬을 끊고 인생의 고뇌로부터 완전한 해방을 성취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만일 자비 실천에 도움이 되고, 고된 삶의 굴레에서 중생을 구제하고, 제법의 진상 터득에 기여한다면 과학기술이라고 해서 배척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런 과학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활용해야 한다는 게 불교적 태도이다. 

달라이 라마는 불교계에서도 대표적인 과학기술의 지지자이다. 특히 그는 마음의 이해를 위해 현대의 발전된 과학기술이 유용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그는 바렐라 등과 함께 마음과생명연구소(Mind & Life Institute) 창립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이 연구소는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이해와 명상 수행의 유익함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설립된 비영리재단이다. 전 세계의 명상 수행 전통에서 얻은 지식을 현대 과학의 방법과 탐구 결과를 결합하여 인간 내면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도달하는 것을 추구한다. 인간에 대한 더 나은 이해는 궁극적으로 인간이 직면한 고통을 완화하고 행복(well-being)을 증진하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고통으로부터 중생을 구제하고 행복과 즐거움이 가득한 삶의 증진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불교와 트랜스휴머니즘은 같아 보인다. 불교는 우리의 삶이 기본적으로 고(苦)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때때로 행복하고 즐겁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의 삶은 온갖 고통에서 분리되지 않는다. 질병이나 노쇠로부터 오는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통, 다시 말해 불안, 번민, 불만족, 불쾌, 분노 등으로 인한 괴로움이 늘 우리 곁에 있다. 우리의 자연적 본성으로 말미암아 이런 고통은 불가피해 보인다. 트랜스휴머니즘은 진보된 과학과 기술을 통해 인간의 타고난 결함과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우리의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완화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극복해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행복을 물질적인 것과 연관 짓는데 익숙한 오늘날 이런 주장은 그럴듯해 보인다. 

 

신체의 변형

인간의 타고난 본성에서 유래하는 고통을 완화하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과학기술의 활용에 매우 대담하고 적극적이다. 인간의 끊임없는 진보에 대한 믿음과 과학기술이 진보의 핵심 수단이라는 생각, 그리고 인간 본성이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과학기술을 인간 자신에게 적용하여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형태의 인간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오늘날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지능, 대부분 질병으로부터 해방, 노화를 극복하고 젊음과 활력을 유지하는 불사, 자신의 감정에 대한 거의 완벽한 통제력,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신체 능력 등 트랜스휴머니스트 닉 보스트롬이 묘사한 포스트휴먼은 그의 말대로 현재의 우리로서는 완전히 이해하기 힘든 존재이다. 

이런 존재는 형태상으로도 우리와 매우 다를지 모른다. 단순히 인간의 유전자를 편집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생물종의 유전자를 빌릴 수도 있다. 이른바 혼종의 등장이다. 인간의 몸과 기계가 결합한 존재의 상상은 통상적이다. 사이보그 등장이다. 나노기술과 합성생물학을 이용해 현재의 우리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재설계될 수도 있다.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꿈꾸는 포스트휴먼에서 오늘날 우리와는 다른 모습으로 신체가 변형되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인간을 고통으로부터 구제하고 더 나은 삶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면 신체의 변형도 수용해야 할까?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상상하는 신체 변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서양적 사고의 주류적 전통은 정신과 몸의 이원론, 그리고 몸을 정신과 비교해 열등한 것으로 가정하고, 심지어 정신이 진리를 파악하는 데 있어 걸림돌로 상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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