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의 동물, 신앙의 대상
용은 우리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있는 상상의 동물이다. 동아시아에서 널리 사용하고 있는 열두 띠 가운데 유일하게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동물이지만, 사찰을 비롯한 여러 건축물부터 의복, 심지어는 웹툰과 판타지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 그 얼굴을 디밀고 있다. 약간의 관심만 있다면 여기저기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친숙한 존재다.
한편으로 용은 오해를 많이 받는 존재다. 그 오해의 상당 부분은 그 생김새와 이름에서 기인한 듯하다. 흔히 용이라 하면 생김새에서 악어나 뱀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서양의 ‘dragon(드래곤)’에서 유래한 것으로 동양의 용은 열 가지 동물을 합쳐 놓은 상상의 동물이기에 서양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사람으로 치면 이름만 같은 동명이인과 같아서 생김새도 다르고 맡아서 하는 일도 다르다.
우리의 용이 원래 구름을 모이게 하고 비를 내리게 하는 힘을 가진 존재임을 고려하면, 용은 바다를 포함한 물을 지배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래서 ‘용호상박(龍虎相搏)’과 같은 사자성어에서 보듯, 산(땅)의 주인인 호랑이와 더불어 신성한 동물로 묘사됐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고구려의 고분벽화에서 볼 수 있는 사신도다. 사신도에서 용은 동방을 담당하고 동쪽의 색깔인 푸른색을 배당받아 청룡으로 표현되는데, 음양오행에서는 중앙이 포함되고 황룡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신도를 비롯한 여러 문화 관점에서 보듯 우리가 포함된 동아시아 사람에게 용은 각별한 존재였다. 그것은 우리의 생활과 생존에 용이 깊이 관여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용이 절대권력을 지녔거나 하늘과 땅을 뒤엎을 만한 강한 힘을 지닌 존재는 아니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바다의 지배자인 포세이돈은 하늘의 신 제우스에 필적하는 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으나 동양에서 바다를 지배하는 용은 그렇지 않다.
용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동양 판타지 문학의 최고봉으로 인정을 받는 『서유기』에 나오는 경하 용왕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서유기』 초반에 서쪽으로 경전을 가지러 떠나는 발단이 되는 경하(涇河)라는 강을 다스리는 용왕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용왕은 점쟁이와의 내기에서 이기려고 하늘에서 정해준 강우량을 살짝 조작했다가 위징이라는 당 태종의 신하에게 목이 잘리고 만다(여기서 목이 잘렸다는 것은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목이 잘렸다).
그러니까 용왕은 물을 지배하는 존재지만 제한적인 힘을 가졌다. 그래서 용이 의인화된 존재인 용왕은 한 지역의 물을 다스리는, 알기 쉽게 말하면 일종의 관료와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 바다와 같은 넓은 지역을 다스리는 용왕도 있고 강이나 하천, 심지어 작은 우물을 담당한 용왕도 있었다. 그러나 그 지역의 크기와 상관없이 그들이 거주하는 곳은 용이 사는 궁전, 즉 용궁이었고 이들 모두 신앙의 대상이었다.
용왕굿·용신제·우물고사
용 또는 용왕과 관련된 신앙의 형태는 용신제나 용왕굿, 우물고사, 정제(井祭) 등 다양하다. 또 기우제를 지낼 때도 그 대상은 물을 다스리는 용왕이었다. 용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제물을 바친 것은 요즘 연예인처럼 멋있기 때문도 아니고, 죽은 뒤에 천국이나 낙원에 가기 위함도 아니었다. 용왕에 대한 신앙의 목적은 생활에 필요한 맑은 물과 농사에 필수적인 물의 안정적인 공급과 바다 위에서 풍랑이나 폭풍을 만나지 않고 풍어를 이룰 수 있게 해달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바람이었다. 그러니까 감성적인 숭배나 먼 미래의 희망이 아니라 당장 그해의 풍년과 풍어라는 현실적인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그리고 용을 신앙하는 의례를 지낼 때 용왕굿이나 용신제에서 보듯 호칭을 격상해서 부른 것은 상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였다. 과거 질병의 원인을 귀신의 소행에서 찾고 천연두와 같은 끔찍한 질병을 피하려고 천연두를 마마신이라는 극존칭으로 불렀던 것처럼 말이다(마마는 왕이나 왕비를 부를 때 쓰는 말이었다. 여기에 신을 붙인 말이 마마신이다).
용왕 또는 용신과 관련한 민간신앙에서 흥미로운 것 가운데 용알뜨기라는 게 있다. 용알뜨기는 용이 정월대보름 새벽에 우물이나 샘에 내려와 알을 낳는다는 속설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용알뜨기는 정월대보름(또는 첫 용의 날)에 여성들이 그날 새벽에 우물이나 샘에서 용알을 떠오는 여성 의례다. 가장 먼저 용알을 뜨면 그해에 운이 좋아지고 그 물로 밥을 하면 무병장수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먼저 용알을 뜨기 위해 우물이나 샘 옆에서 밤을 새우거나 우물의 두레박을 붙잡고 있기도 했다. 용알뜨기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알 수 없으나 정월대보름에 전국적으로 행해진 여성 의례로 지역에 따라 용알줍기, 새알뜨기, 복물뜨기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용왕을 향한 신앙을 드러내는 가장 대표적인 것은 용왕굿이다. 용왕굿은 용왕을 불러서 모시고 놀며 바다의 안전과 풍어를 빌고 바다에서 죽은 자를 천도하거나 명복을 비는 굿으로 주로 바닷가에서 행해진다. 용왕을 위한 굿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사방이 바다로 에워싸인 섬인 제주도의 용왕굿으로 제주도에서는 요왕맞이라고 부른다. 요왕맞이에서 흥미로운 것은 용왕을 위한 제사상을 차릴 때 바닷고기를 올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용왕에게 바닷고기가 별미가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한다.
한편 용왕굿이 끝나고 굿에 참여하지 못한 바다를 떠도는 여러 잡신에게 뿌리는 헌식(獻食)을 용왕밥이라고 부른다. 용왕밥은 용왕을 위한 제사상에 올렸던 제물을 쓰거나 별도로 만든 제물로 쓴다.
용왕밥은 용왕굿을 하는 지역마다 달라서 음식을 한지에 싸기도 하고 김에 싸거나 짚으로 싸기도 한다. 용왕밥은 굿의 주체인 용왕 외에 잡귀·잡신에게도 널리 밥을 먹인다는, 그래서 모두가 함께한다는 의례 본래의 의미가 담긴 상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용왕굿을 할 때 용왕을 나타내는 상징은 용왕기다. 용왕기는 백지나 천을 댓가지로 묶어 용왕의 신체를 나타내는 깃발로 그 생김새는 지역마다 다르지만, 용왕이 용왕굿을 하는 그곳에 현신했다는 의미로 활용된다. 달리 요왕기라고도 부른다.
일반적으로 용에게 풍년과 풍어를 기원하는 것을 용신제라 부른다. 과거 용신을 신앙하는 용신제는 산의 신을 신앙하는 산신제와 짝을 이뤄 행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물은 산에서 흘러나와 강으로 흘러들고 그 물이 다시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순환구조를 지니고 있어서 그 물이 지나는 공간인 산과 강은 낮과 밤이 함께할 때 하루가 되는 것처럼 하나의 원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랜 전통을 지닌 곳에서는 산신제와 용신제를 함께 거행했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서면서 농경을 주로 하는 육지에서는 산신제(당제와 같은 마을 의례를 포함해서)를 지내고, 어업을 하는 바다에서는 주로 용신제 또는 용왕제만 지내는 형태로 분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용신제를 함께 거행하지 않고 산신제나 당제와 같은 마을 의례를 지내는 곳에서는 우물고사(정제)의 형태로 용신제를 대신했다. 그리고 용신제의 형태가 우물로 한정되고 보다 현실적인 면이 강조되면서 우물고사를 지내는 시기도 조정됐다. 즉 우물고사는 농경에 필요한 물보다는 평소에 사용하는 맑은 물과 연관이 있기에 그렇다.
흔히 산신제나 당제와 같은 의례는 농사가 끝난 뒤인 음력 9월 그믐 즈음해서 지낸다. 그것은 산신제나 당제가 한 해의 수확을 신들에게 감사해하고 그 기쁨을 주민들과 함께 나누기 위한 행사이기 때문에 농사가 마무리된 후에 진행된다. 그러나 최근의 우물고사는 대체로 정월대보름이나 칠월칠석 즈음해 행해진다. 우물 용왕에게 고사를 지내면서 맑은 물을 얻기 위해 우물과 그 주변을 청소하는 일도 함께하는데, 즉 지나온 시간을 정리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때와 한여름에 자칫 더러워질 수 있는 우물의 위생을 점검하고 청결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신앙의 대상에서 문화적 상징으로
오늘날 용 또는 용왕(또는 용신)은 물의 지배권을 잃고 위계에서 뒷전으로 밀려난 슬픈 존재가 되고 말았다. 과거 왕이나 신에 비견되던 화려한 영광은 낡았고 군데군데 얼룩이 져서 오래되고 사람들이 떠난 텅 빈 옛집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그 옛집에는 오래된 우물이 있으나 용이 거주할 수 없는 말라버린 바닥이 드러난 황량한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제 물은 용이 아니라 국가에서, 정확하게 말하면 수자원공사에서 관리한다. 맑은 물을 원한다면 용에게 아뢰고 고사를 지낼 것이 아니라 수자원공사에 민원하면 된다. 이 때문에 한때 전국 곳곳에서 행해지던 용신제나 우물고사 등 용과 관련된 의례는 이제 형식만 남았다. 누구 하나 용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진심과 정성을 다해 농사의 풍요와 우리의 삶을 살찌울 수 있는 맑은 물을 달라고 기원하지 않는다. 또 만선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풍어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하지 않는다. 지금도 행해지는 용신제나 용왕굿은 대체로 현실적인 요청이 아닌 예부터 전해진 무형문화유산의 하나로 전승되고 진행된다.
그렇다면 신앙의 대상에서 밀려난 용은 오늘날 어디로 가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제 용은 신앙의 대상에서 벗어나, 그러니까 용신이나 용왕의 자리에서 내려와 한층 풍요로워지고 있는 이야기의 세계로 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를 위해서는 문화적 상징으로서의 자리를 차지하고 흥미로운 이야기의 세계에서 누군가를 등에 태우고 하늘을 날며 구름을 모아 비를 뿌리고 바닷속을 자유롭게 여행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리고 용왕의 거처인 용궁은 예부터 세상의 귀한 물건과 이야기가 쌓여 있는 보물창고이기도 하다. 손오공이 마음대로 크기를 줄이고 늘릴 수 있는 여의봉(如意棒)을 얻는 곳도 용궁이고, 우리에게 낯선 얼굴을 가진 처용의 고향도 용궁이며, 바다에 빠진 심청을 살려내 새롭게 이야기를 풀어낸 곳도 용궁이다. 따라서 용궁에 대한 재발견도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이경덕
대학에서 철학,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에서 아시아문화의 이해, 의례축제신화, 경제인류학 등을 강의한다. 저서로는 『새롭게 만나는 한국 신화』, 『신화, 우리 시대의 거울』, 『어느 외계인의 인류학 보고서』, 『처음 만나는 북유럽 신화』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그리스인 이야기』(전 3권), 『주술의 사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