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천 없는 음식 취향
“평양냉면은 이렇게 먹는 거야.”
소위 ‘평냉부심(평양냉면에 대해 해박하다는 자부심)’을 부리는 냉면 마니아들의 말이다. 심심한 평양냉면 육수에 양념장이나 겨자, 식초를 더하려고 하면 이들은 냉면 본연의 맛을 즐길 줄 모른다고 지적하며 냉면 먹는 법을 가르친다. 냉면에 양념을 넣었다는 이유로 졸지에 ‘맛알못(맛을 알지 못하는 사람)’ 취급을 받은 사람들은 냉면 마니아의 훈계하는 듯한 태도를 ‘면스플레인(냉면에 대해 가르치려 하는 태도나 말)’이라 부르며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평양냉면을 좋아해야만 미식가냐는 반론에도 꿈쩍 않던 냉면 마니아들은 예상치 못한 일을 계기로 체면을 구겼다. 바로 북한 옥류관에서 ‘원조 평양냉면’을 먹는 대한민국 예술단 모습이 방송을 탄 일이다. 그간 평양냉면 마니아들이 두었던 훈수(?)와 달리 옥류관의 식탁에는 양념장과 식초, 겨자가 냉면과 함께 제공됐고, 옥류관 직원이 직접 ‘평양냉면에는 양념장과 겨자를 듬뿍 넣어 먹으면 더 맛있다’고 안내했다는 사실도 전해졌다.
음식 취향은 다양하며, 여기에는 옳고 그름도 위계도 없다. 특정 음식을 싫어한다고 해도 이는 개인의 취향일 뿐 음식의 잘못도 그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의 잘못도 아니다. 문제는 취향의 다름을 불편하게 여기는 이의 마음이다. 억지로 자신의 음식 취향을 강요하는 오지랖은 사절이다. 그저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며 식탁 앞에 앉으면 된다.
모두가 식탁 앞에 공존하는 법
분명히 해둘 점이 있다. 취향을 존중한다는 말은 ‘소통한다’는 뜻이지, 타인의 취향을 불가침의 영역으로 보고 부정적 언급이나 비판을 무조건 ‘피한다’는 뜻이 아니다. 취향 존중을 명분으로 음식에 대한 논의마저 차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음식 취향은 고정불변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취향을 타인과 공유하고 논쟁하는 과정에서 맛에 관한 생각이 확장되거나 180도 바뀌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도 있다. 꼭 취향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경험이 아니더라도, 서로 다른 이들이 각자의 개성을 표현하며 다양한 음식 취향을 공유하는 일 자체가 이미 즐거운 일이다. 미각의 경험이 다른 이들끼리도 공통으로 맛있다고 느끼는 음식이 있다는 사실, 분명 나는 속절없이 끌리는 맛을 어떤 이는 몸서리치도록 싫어한다는 사실, 모두가 단 한 가지의 맛을 지향하지 않는다는 사실, 나와 같은 취향이든 비슷한 취향이든 정반대 취향이든 모두가 공존한다는 사실을 대화를 통해 확인하는 과정부터가 우리에게 재미를 준다.
실제로 ‘탕수육 부먹 vs 찍먹(탕수육에 소스를 부어서 먹느냐, 찍어서 먹느냐)’, ‘민트초코 호 vs 불호’, ‘시리얼 눅눅하게 vs 바삭하게’, ‘떡볶이 쌀떡 vs 밀떡’ 등으로 대표되는 음식 취향 논쟁은 이미 논쟁을 넘어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이자 하나의 놀이문화가 됐다. 이제 사람들은 개인의 음식 취향을 합리적인 근거를 들어 표현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찍먹은 시험 볼 때도 다 찍는다며?’, ‘부먹은 로션 바를 때도 부어 바른다며?’라는 식으로 취향이 다른 상대를 가볍게 놀리는(?) 등 음식 논쟁을 개그 소재로 활용한다. 언뜻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끼리 뭉쳐 다른 취향을 깎아내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놀이일 뿐, 진지하게 맛 취향이 다른 이를 조롱하거나 배척하는 이는 드물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에 대한 비평을 나에 대한 비평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마음을 열면 누구나 이 놀이를 즐기며 식탁 앞에서 공존할 수 있다.
어떤 채소라도 OK, ‘만능 덮밥 레시피’
이번 요리의 주재료는 물컹한 식감 탓에 호불호 갈리는 음식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가지’다. 보통 찌거나 삶아 먹기 때문에 특유의 식감이 더 두드러지는데, 다양한 요리법을 알면 자꾸 손이 가게 되는 매력적인 채소다. 어떻게 하면 물컹거리는 식감을 줄이고 가지를 즐길 수 있을까. 가지를 썰어 소금에 절여두었다가 물기를 짜면 된다. 이렇게 소금에 절인 가지를 요리에 활용할 때는 양념에서 간장을 생략해야 간이 맞다. 그래도 가지가 영 싫다면 가지를 다른 채소로 대체해도 좋다. 가지뿐만 아니라 호박이나 오이 등 어떤 채소로도 만들 수 있는 ‘만능 덮밥 레시피’를 소개한다.
여름은 채소가 넉넉히 자라는 계절이다. 여름철 밭에서 나는 채소는 모두 맛이 좋지만, 그중에서도 수확한 지 오래되지 않은 싱싱한 채소를 고르는 팁이 있다. 채소의 꼭지를 살피는 것이다. 싱싱한 채소는 꼭지가 쭈글쭈글하지 않고 윤기가 흐른다. 채소뿐 아니라 수박, 참외 등 밭에서 나는 과일 역시 꼭지를 보면 싱싱한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재료 중 조금 낯설 수 있는 재료는 말린 생강이다. 생강은 가지와 만나면 감칠맛을 내면서 가지의 찬 성질까지 중화할 수 있는, 가지와 궁합이 아주 좋은 재료다. 하지만 생강 특유의 향을 좋아하지 않거나 말린 생강이 집에 없으면 생강을 뺀 나머지 재료로만 양념을 만들어도 무관하다. 생강 향에 거부감이 없고 요리를 자주 해 먹는다면 제철인 가을에 생강을 말려두는 것을 추천한다. 생강을 깨끗이 씻어 편으로 썰고 바짝 말려서 냉동실에 보관하면 1년 내내 먹을 수 있다. 한번 만들어두면 다양한 요리에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재료다.
먼저 느타리버섯과 풋고추, 가지를 먹기 좋게 썬다. 팬에 느타리버섯과 풋고추부터 넣고 약한 불에 볶다가 가지를 넣어 마저 볶는다. 팬에 굳이 기름을 두르지 않고 볶아도 채소에서 나온 수분 덕에 타지 않는다.
채소가 어느 정도 익으면 간장과 조청, 말린 생강을 넣고 채소와 함께 버무린다. 불을 끈 뒤 참기름, 깨소금, 후추를 넣으면 가지볶음 완성이다. 가지볶음은 반찬으로 먹어도 좋지만, 밥 위에 올려 덮밥으로 만들면 그릇을 늘어놓고 음식을 하나하나 집어 먹는 번잡함 없이 더욱 간편하게 즐길 수 있다.
가지덮밥
재료: 밥 1공기, 중간크기 가지 1개, 풋고추 2개, 느타리버섯 1줌, 참기름 2큰술, 깨소금 1큰술, 후추 약간
양념: 간장 2큰술, 말린 생강 1큰술, 조청 1큰술
1. 가지, 고추, 느타리버섯을 먹기 좋게 썬다.
2. 팬에 느타리버섯, 풋고추, 가지를 넣고 볶는다.
3. 양념을 두르고 볶다가 참기름, 깨소금, 후추를 넣어 마무리한다.
4. 그릇에 밥을 담고 밥 위에 가지볶음을 올린다.
사진. 유동영
법송 스님
대전 영선사 주지. 세계 3대 요리학교 ‘르 꼬르동 블루’ 런던캠퍼스 정규 교육과정 최초로 사찰음식 강의를 진행했다. 저서로 『법송 스님의 자연을 담은 밥상』(2015, 서울문화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