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항상 배가 고플까
완성 요리를 만들어내는 요리 로봇이 등장했다. 국내에도 요리 로봇을 도입한 식당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서울 강남의 한 레스토랑에서는 요리 로봇이 주문을 받고 음식을 조리한 후 설거지까지 직접 한다. 아직은 조금 낯설지만,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로봇 산업 발전 속도로 볼 때 로봇이 주방을 점령할 날이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요리 로봇은 입력된 매뉴얼에 따라 사람보다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맛도 모양도 완벽한 음식을 만들어낸다. 반면 사람의 손은 완벽하지 않다. 같은 요리라도 조리 시간이 매번 달라지며 어느 날은 간이 조금 짜게 되고, 어느 날은 간이 조금 싱겁게 되기도 한다. 요리 로봇 손이 사람 손의 자리를 완전히 꿰차게 될 날이 올까. 정답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인 ‘먹는 일’에 단순히 효율성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 단 하나의 정답은 아니라는 점이다.
<리틀 포레스트>는 임용고시에 떨어지고 도망치듯 고향에 돌아간 주인공 혜원이 끼니를 직접 만들어 먹으며 마음을 치유하는 내용을 그린 영화다. 혜원은 시골 고향 집에 도착하자마자 ‘배고픔’을 호소하며 텃밭에서 배추를 캐 배춧국을 끓여 먹는다. 여기서 혜원이 느끼는 배고픔은 영화 전체의 중요한 모티프다. 갑자기 왜 고향에 내려왔냐는 친구의 물음에도 혜원은 “배고파서 내려왔다”고 멋쩍게 답한다. 늘 쫓기듯 때웠던 도시에서의 끼니들이 혜원의 배고픔을 해결해주지 못했던 셈이다. 혜원의 오랜 허기는 고향 집에서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고서야 비로소 해소된다.
로봇이 따라 할 수 없는 오차 가득 ‘손맛’
혜원에게 음식을 먹는 행위란 그 맛과 영양소뿐 아니라, 땀 흘려 땅을 일구고, 재배한 재료들을 직접 손질하고 요리하는 과정에 들이는 정성, 즉 ‘손맛’까지 섭취하는 과정이다. 혜원의 허기를 채워준 음식의 손맛은 단순한 영화적 설정이 아니라 분명히 실존하는 맛의 변수다. 로봇과 달리 사람의 손은 조리 중 즉흥적으로 재료량을 조절하기도 하고 레시피에 없는 양념을 추가하기도 하며 요리하는 사람만의 개성이 담긴 맛을 창조해낸다. 손과 뇌의 관계를 알면 손맛의 실체가 좀 더 뚜렷해진다. 뇌와 밀접하게 연결된 손은 뇌의 명령을 이행할 뿐만 아니라 반대로 정신기능에 자극을 준다. 뇌와 손의 쌍방향 소통은 좋은 음식 만들려는 마음을 손을 통해 음식에 전하고, 음식 만드는 손끝의 정성을 다시 마음에 전한다. 결국 즐거운 마음으로 최상의 음식을 차려내는 선순환이 이뤄진다.
로봇이 만드는 요리에서 화두는 ‘무엇(What)을 만드는가’이지만 사람이 손맛으로 만들어내는 요리에서 화두는 ‘누가(Who) 만드는가’다. 음식을 통해 살아갈 힘을 얻길 간절히 바라는 사람의 손에서 나오는 기운만큼은 어떤 로봇으로도 대체하기 어렵지 않을까.
영양도 마음도 채우는 주먹밥 도시락
주먹밥은 장점이 많은 음식이다. 일단 만들기 쉽다. 밥과 재료를 한데 섞어 손으로 뭉치기만 하면 그럴듯한 한 끼가 뚝딱하고 완성된다. 주먹 크기로 옹골지게 뭉쳐놓은 주먹밥은 휴대하기도 편하다. 밥과 반찬들을 나르기 위한 찬합도, 떠먹기 위한 수저도 필요 없다. 주먹밥의 매력은 또 있다. 언제 어디서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번거로운 상차림 없이 손에 들고 한입 베어 물면 그만이다. 이런 주먹밥의 편리성 때문일까. 주먹밥은 오랜 기간 ‘밖에 나가서 먹는 음식’으로 선택받아왔다. 그 시작은 알 수 없지만, 과거시험 보러 길을 나서는 선비부터 장시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던 보부상, 한국전쟁(6·25전쟁) 참전군인과 피난민까지, 주먹밥은 먼길 떠나는 민초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고마운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물론 밥 안에 넣는 내용물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부실했을 것이다. 보리밥과 소금, 끽해야 짠지 정도를 한데 뭉친 비상식량이었을지 모른다. 어쨌든 한낱 밥 덩어리에 시험 합격을 바라는 마음, 무사 귀환을 바라는 마음 등을 담아 꼭꼭 뭉친 이 주먹밥이 바로 오늘날 도시락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1년 열두 달 중 일조량이 가장 많다는 5월이다. 따사로운 햇살이 집안을 기웃대며 우리의 나른한 몸을 바깥으로 이끈다. 봄나들이의 든든한 벗이 될 도시락, 영양도 마음도 든든하게 채워줄 봄나물주먹밥을 지금부터 함께 만들어보자.
준비할 재료는 산나물과 밥, 소금, 깨소금, 참기름이다. 산나물은 세 가지 종류를 골라 각 한 줌 정도씩 준비한다. 여기에서는 미나리, 취나물, 머위를 썼지만, 내 몸에 맞는 재료라면 어떤 나물이라도 좋다. 밭에서 재배한 채소와 달리 산나물은 종류와 관계없이 서로 맛이 부딪히지 않고 잘 조화되어 따로 상성을 따질 필요가 없다.
준비한 나물을 깨끗이 씻어 끓는 물에 삶는다. 세 가지 나물을 다 같이 넣고 삶아도 된다. 삶은 나물은 작은 크기로 송송 썰어둔다. 밥에 참기름과 깨소금 1큰술, 약간의 소금, 송송 썰어둔 나물을 넣고 함께 버무린다.
이제 손맛을 발휘할 차례다. 손으로 조물조물 밥을 뭉쳐 주먹만 한 크기로 주먹밥을 만든다. 밖에 들고 나가지 않고 집에서 먹을 예정이면 한입에 들어가는 작은 크기로 여러 개 만들어도 된다. 밥을 뭉칠 때 매실장아찌, 고추장아찌, 무장아찌 등 집에 있는 장아찌를 속에 넣으면 한층 더 근사한 주먹밥을 만들 수 있다. 장아찌가 오독오독 씹히는 식감을 더할 뿐 아니라 침을 돌게 해서 주먹밥을 먹을 때 목이 막히지 않도록 만든다. 장아찌를 넣을 때는 먼저 물기를 꽉 짠 다음 잘게 다져 넣어야 밥이 질퍽해지지 않는다.
봄나물주먹밥
재료 미나리·취나물·머위 각 한 줌, 밥 1공기, 참기름 1큰술, 깨소금 1큰술, 볶은 소금 약간
1. 세 가지 나물을 동시에 삶은 후 송송 썬다.
2. 밥에 참기름 1큰술, 깨소금 1큰술, 약간의 소금을 넣은 후 1과 함께 버무린다.
3. 주먹만 한 크기로 주먹밥을 만든다.
4. 그릇에 담아낸다.
사진. 김동진
법송 스님
대전 영선사 주지.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이 운영하는 사찰음식 교육관 ‘향적세계’에서 강의를 진행했다. 저서로 『법송 스님의 자연을 담은 밥상』(2015, 서울문화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