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살기 위해 먹어라
‘음식은 외아들 고기처럼 먹어라.’
음식을 아들의 살점 먹듯 먹으라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발언의 출처는 다름 아닌 부처님. 『쌍윳따니까야』 「아들의 살」 경에 나오는 이야기다.
한 부부가 외아들과 사막을 건너고 있었다. 그런데 도중에 식량이 떨어졌다. 부부는 고심 끝에 아들을 죽여 그 살을 먹으면서 남은 사막을 건넜다.
이 대목에서 부처님은 묻는다. 이들 부부가 즐기려고 음식을 먹거나, 푸짐하게 음식을 먹거나, 진수성찬으로 음식을 먹었겠느냐고. 오직 사막을 건널 목적으로만 아들 살점을 먹지 않았겠느냐고. 수행자라면 무릇 외아들 고기 먹듯, 오로지 살기 위해 먹어야 한다고.
이런 신념(?)을 지닌 부처님이 보면 목덜미 잡고 쓰러질 현대의 식문화가 있다. 수년째 유행하고 있는 ‘먹방(‘먹는 방송’을 줄인 말로, 출연자가 음식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송)’이다. 다양한 먹방이 있지만, 기본적인 내용 구성은 대동소이하다. 먼저 각양각색의 음식들이 푸짐하게 차려진 테이블을 화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출연자가 인사를 한다. 그리고는 먹기 시작한다. 음식 씹는 소리, 음료 삼키는 소리, 맛에 감탄하는 소리를 여과 없이 들려주고, 그릇 하나하나 비우는 모습을 도장 깨듯 보여준다. 외아들의 고기라면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이왕 때워야 하는 끼니인데, 맛에 취해 먹고 배 터지도록 먹는 일이 뭐가 나쁜 걸까. 우리는 분명 살기 위해 먹지만, 먹기 위해 살기도 한다. 경제가 발전하고 생활 수준이 향상되면서 인간의 목표는 단순히 생존을 넘어 ‘즐거움’을 추구하는 삶으로 확장됐고, 미식(美食)은 풍요로운 삶을 구성하는 한 축이 됐다. 불교는 결국 행복을 추구하는 가르침인데 부처님은 왜 먹는 즐거움을 경계하고 음식을 외아들 고기에 비유했을까.
맛보다 윤리, 쾌락보다 도리
외아들의 고기 이야기로 돌아가자. 사막을 건너던 부부가 사랑하는 외아들을 죽이고 그 고기를 취한 행위는 오직 살기 위해 내린 선택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내가 살아가기 위해 누군가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인생의 역설이다. 인간은 이 거대한 명제 앞에서 한없이 무력한 존재다. 하지만 무력한 상황에서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 희생양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희생양을 존중하며, 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어낸 삶의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다. 아들 고기를 먹게 된 부부는 가슴을 치고 울부짖으며 죽은 아들을 기렸고, 결국 남은 사막을 무사히 건넘으로써 아들의 희생이 무의미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먹방에서 우려스러운 점은 쾌락에 치우친 식사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해 가로막히는 음식에 대한 인식과 존중이다. 우리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우리도 모르게 대가를 치른다. 밀집된 공간에서 대량으로 사육되며 잔인하게 도축되는 동물들, 육류 생산 과정에서 소비되는 많은 양의 물, 파괴되는 숲, 훼손되는 토양, 오염되는 공기, 뜨거워지는 지구, 쌓여가는 쓰레기…. 이 모두가 먹는 대가로 치르는 ‘외아들’이다.
왜 육식을 줄여야 하는지, 지역 농산물을 소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개당 200원이 채 안 되는 싼 가격의 달걀은 어떤 환경에서 생산되는지, 먹기 좋게 깐 칵테일 새우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우리가 필요 이상의 음식을 먹어 치우는 동안 지구 반대편에 굶어 죽는 사람은 없는지, 먹는 매 순간 숙고하고 자비심으로 음식을 대하는 일. 바로 수많은 ‘외아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채소 감자탕으로 건강한 여름맞이
예상했겠지만, 오늘 소개할 감자탕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돼지 등뼈’를 넣은 감자탕이 아닌 ‘채소’ 감자를 넣어 끓인 찌개 요리다. 감자는 6월 하지 무렵 수확한 ‘하지 감자’가 가장 맛있다. 특별한 조리 없이 쪄먹기만 해도 단맛이 난다. 딱 지금이 1년 중 가장 맛있고 몸에도 좋은 하지 감자를 먹어둘 기회다. 큰 감자보다는 알이 작은 감자가 더 맛나니, 알이 작은 감자는 쪄서 먹고 큰 감자는 반찬으로 조리해서 먹으면 좋다.
감자, 풋고추, 고춧가루, 고추장, 된장, 간장을 준비한다. 이 재료 조합을 잘 기억해두자. 감자 대신 다른 채소를 넣어 무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조합이다. 무 철에는 무를, 호박 철에는 호박을, 가지 철에는 가지를 감자 대신 넣고, 풋고추, 양념장과 함께 자작하게 끓이면 밥 한 그릇 뚝딱할 수 있는 맛있는 찌개가 완성된다.
조리가 정말 간단하다. 먼저 고춧가루, 고추장, 된장 각 1큰술을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감자는 먹기 좋게 썰어 양념장에 무친다. 냄비에 물 3컵을 넣고 양념에 무쳐둔 감자를 넣어 끓인다. 이때 맹물 대신 물에 무를 넣고 끓여낸 채수를 활용하면 더 깊은 맛을 낼 수 있다. 감자 익는 시간은 불 세기에 따라 감자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 감자가 익었는지 도무지 감이 안 오는 사람들을 위한 젓가락 전법이 있다. 젓가락으로 찔러봐서 젓가락이 푹 들어갈 정도로 감자가 익으면 풋고추를 썰어 넣고 마지막으로 한소끔 더 끓인다.
밥과 함께 먹는 대신 감자탕에 밀가루 반죽을 떠 넣어 수제비를 끓여 먹는 방법도 있다. 보통 수제비를 쌀쌀한 계절에 어울리는 음식으로 생각하지만, 밀가루는 찬 성질이 있어서 몸 안의 열을 밖으로 내보내야 하는 여름에 먹는 편이 더 좋다. 예로부터 백중(음력 7월 15일)이 지나면 밀가루 특유의 냄새가 진해진다고 해서 밀가루 음식을 꺼리기도 했다.
하지 감자가 들어간 감자탕에 몸속 열을 떨어뜨리는 수제비 사리 추가. 얼큰한 감자탕 수제비 한 그릇으로 맞이하는 이번 여름은 어떤 모습일까.
감자탕
재료 감자 2개, 풋고추 3개, 채수 3컵(물로 대체 가능), 간장 약간
● 양념: 고춧가루 1큰술, 고추장 1큰술, 된장 1큰술
1. 양념 재료를 모두 섞어 양념장을 만들고 감자를 무친다.
2. 냄비에 채수 3컵을 붓고 양념에 무친 감자를 넣어 20분 정도 끓인다.
3. 감자가 익으면 풋고추를 썰어 넣고 한소끔 더 끓인다.
4. 간장으로 간을 한 후 밥과 함께 낸다.
사진. 김동진
법송 스님
대전 영선사 주지. 세계 3대 요리학교 ‘르 꼬르동 블루’ 런던캠퍼스 정규 교육과정 최초로 사찰음식 강의를 진행했다. 저서로 『법송 스님의 자연을 담은 밥상』(2015, 서울문화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