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의 자화상, 달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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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의 자화상, 달항아리
  • 마인드디자인(김해다)
  • 승인 2020.06.30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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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309호 백자 달항아리 | 리움미술관 소장17세기 후반~18세기 전반 | 높이 44cm | 문화재청 자료 사진.
국보 제309호 백자 달항아리 | 리움미술관 소장17세기 후반~18세기 전반 | 높이 44cm | 문화재청 자료 사진.

 

“아무런 장식 없이 오로지 흰색으로 구워낸 담백함과 어리숭하게만 생긴 둥근 맛”. 

미술사학자 최순우는 달항아리를 이렇게 표현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대 디자인에도 사용될 만큼 한국 전통의 가치를 대표하는 상징이 된 달항아리. 17~18세기 조선에서 제작된 달을 닮은 백자는 미술가들에게도 한없이 영감을 주어 왔고 또 주고 있는 기물이기도 하다. 김환기, 최영욱, 주세균 세 명의 미술가들 손끝에서 환생한 달항아리들을 통해 한국 전통의 면면을 살펴보자.

 

| 김환기의 달항아리:

고요하고 다사로운 한국 클래식

달항아리 그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김환기 화백.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서구 모더니즘 열풍이 한창 불던 시기 일본에서 그림을 수학했던 그는 달항아리를 비롯한 조선 시대의 모티프들을 자신의 반추상작품에 도입하여 ‘한국적 모더니즘 회화’를 창시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던 인물이다. 직접 달항아리를 수집하고 늘 들여다보며 예찬하는 등 그의 달항아리 사랑은 남달랐다.

“나는 아직 우리 항아리의 결점을 보지 못했다. 둥글다 해서 다 같지가 않다. 모두가 흰 빛깔이다. 그 흰 빛깔이 모두가 다르다. 단순한 원형이, 단순한 순백이, 그렇게 복잡하고, 그렇게 미묘하고, 그렇게 불가사의한 미를 발산할 수가 없다. 고요하기만 한 우리 항아리엔 움직임이 있고 속력이 있다. 싸늘한 사기지만 그 살결에는 다사로운 온도가 있다. 실로 조형미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그가 처음부터 달항아리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사물의 본질을 화폭에 담고픈 욕망으로 기하학 추상을 실험해왔던 그는 1937년 귀국 직후 본격적으로 우리 전통 미술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조선 공예품을 수집하고 분석하는 일에 열중했던 일본의 근대 공예운동가 야나기 무네요시의 영향으로 촉발된 조선백자에 대한 관심이 지식인들을 사로잡고 있을 당시였다. 1930년대 중반 이후 김 화백을 비롯한 상당수의 화가가 조선백자를 그림의 소재로 삼기 시작했고, 해방 이후 민족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조선백자는 한국의 전통적 가치를 지니는 “클래식”으로 승격돼 오늘에 이르렀다.

이후, 국제적 미술계에 진출하고자 프랑스에서 머물며 작업하는 동안 김 화백의 달항아리 애착은 더욱 커졌다. 그에게 달항아리는 점차 ‘한국성’을 작품에 심기 위한 단골 소재가 됐다. 훗날 파리 시절을 회상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예술이란 강렬한 민족의 노래인 것 같다. 나는 우리나라를 떠나봄으로써 더 많은 우리나라를 알았고, 그것을 표현했으며, 또 생각했다.”

 

| 최영욱의 달항아리: 

수더분하면서도 당찬 내 나라 내 뿌리

여러 겹 흰색을 겹쳐 칠한 캔버스에 살짝 도드라지게 달항아리 형태를 만든 다음, 달항아리 표면에 난 미세한 균열을 세밀한 실선으로 표현해 내는 최영욱 작가. 최 작가는 그의 달항아리 그림들을 ‘카르마’라는 제목으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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