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붓다] 명상을 만난 예술이 건네는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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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붓다] 명상을 만난 예술이 건네는 위로
  • 마인드디자인(이현지)
  • 승인 2020.05.3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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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문화공간 피크닉
'명상 Mindfulness' 展

| ‘하기’보다 어려운 ‘안 하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한다. 크고 작은 과업들로 가능한 한 빽빽하게 일과를 채운다. 아침을 먹으며 뉴스를 읽고, 버스로 출근하며 업무 메일을 확인한다. 퇴근 후에는 탐식하듯 영화나 드라마를 몰아본다. 설계된 프로그램대로 작동하는 기계처럼 현대인들은 쉼 없이 몸과 마음을 움직인다.

고전문헌 학자 배철현은 그의 저서 『정적』에서 ‘하기’는 습관적이고 자동적이며, ‘안 하기’는 의도적이고 의식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안 하기’가 ‘하기’보다 힘들다고 덧붙인다. 이 어려운 ‘안 하기’, 즉 무위(無爲)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잠시 멈춰 지금 여기에 존재함으로써 내적 뿌리를 내리는 명상수행이다. 현대인들에게 명상은 자동 작동하는 삶의 쳇바퀴를 멈추고 그렇게 쉬어도 괜찮게 만드는 ‘의식적 안 하기’인 것이다.

 

| 예술로 느껴보는 흥미로운 명상

일상을 잠시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명상이 많이 대중화됐지만, 사람들에게 명상은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분야다. 명상은 개개인 내면 안에서 일어나는 경험이기에 말이나 글로 쉽게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명상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든 명상을 꾸준히 해온 사람이든 명상을 흥미롭게 경험할 수 있는 전시가 있어 다녀왔다. 서울 중구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피크닉에서 열리고 있는 <명상 Mindfulness> 展이다. 

전시로서는 이례적으로 100% 사전 예약제로 운영하는 이 전시는 관람객들이 거리를 두고 작품을 관람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는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규범을 지키는 동시에 명상을 주제로 한 전시에 적합한 방식이다. 사진 촬영 또한 할 수 없으며 스마트폰은 비행기 모드로 설정하도록 안내하는데, 이러한 규칙도 전시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 삶 속으로 죽음을 불러들이다

전시는 네 개의 주제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죽음과 함께하는 삶 Being with Dying’이다. 전시는 이 주제에 대해 “가장 적극적인 삶의 방식은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삶 속에 불러들임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설명한다. 관람객의 일상에 죽음을 환기하는 첫 작품은 차웨이 차이의 ‘바르도(중음)’이다. 바르도는 티베트불교 용어로 사람이 죽은 후 환생하기까지 49일간 머무는 중간 상태를 말한다. 작가는 사망 선고를 받고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기록을 보고 영감을 받아 바르도의 순간을 영상과 사운드로 표현했다.

바르도는 한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넘어간 듯한 느낌을 준다. 작고 어두운 방 안, 흙바닥에 영상이 떠오르고, 영상 가장자리에는 향이 피워져 있다. 죽은 사람이 다음 생으로 잘 넘어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작가의 목소리가 공간을 울린다. 현생은 생각이 만든 허상일 뿐이라며 여기에 집착하지 말고 죽음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죽음이 우리 삶에 녹아있다고 알려주는 이 작품을 마주하면, 삶에 대한 집착으로 꼭 쥐고 있는 두 손이 서서히 풀린다.

『반야심경』과 ‘공(空)’ 개념을 탐구해온 차웨이 차이는 그의 삶과 죽음에 관한 사색을 명상적 예술 작업으로 구현한다. 작가는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 빌뢰르반 현대미술관, 맨체스터 중국 현대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 무심(無心)을 자아내는 수행의 예술

생각을 완전히 버리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반복적인 행위를 하다 보면 어느새 생각들이 흩어져 사라진다.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하는 명상만큼 절이나 바느질, 걷기 등 행위도 좋은 명상법이다. 두 번째 세션 ‘수행 Practice’에는 마음을 비워주는 반복 행위로 작업한 명상적 예술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박서보의 ‘원 오브 제로 1 OF 0’는 작가의 수행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물을 머금은 한지를 연필로 수없이 그어 제작한 이 작품은 작가의 노동과 수행과 명상의 결과물이다. 생각과 자아를 떨쳐낸 몰입의 순간이 작품 안에 스며있다. 연필로 그어대는 행위를 반복하지만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내려놓음의 순간이다. 작품을 설치한 공간 연출 역시 하나의 작품이다. 전시실에 들어섰을 때 마주하는 어두운 공간과 그 너머 더 높이 구축된 새하얀 공간이 숭고한 느낌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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