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기 고구려 고분벽화 중에는 무덤 내부에 인물이나 풍속도가 아닌 다른 형상이 그려진 벽화가 있다. 이를 ‘순수장식문양 벽화’라 부른다. 연화문, 귀갑문(龜甲紋), 동심원문 등만으로 무덤 벽화를 구성한 것이다. 귀갑총, 산연화총, 산성하 983호묘 등은 무덤 내부가 인물 풍속도 없이 귀갑문, 측면 연화문, ‘왕(王)’ 자(字) 유운문(流雲紋, 구름 모양의 문양) 등의 사방으로 연속된 문양으로 장식됐다.
장천 1호분의 경우 앞방은 생활풍속도, 뒷방은 연화문만으로 장식됐다. 산연화총과 장천 2호분 등은 불교의 상징인 연꽃이 주 문양으로 무덤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어, 연꽃이 만발한 불교적 내세를 무덤 공간에 구현했다.
또 다른 장식 문양인 ‘왕’ 자 유운문은 구불거리는 구름 문양 사이에 ‘왕’ 자가 쓰여 있는 문양으로 옥도리 벽화고분, 미창구 장군묘 등 몇몇 고구려 벽화고분에 보이는 독특한 문양이다. 옥도리 벽화고분은 무덤 주인공 부부의 뒤에 휘장을 두른 장식이 사용됐다. 중국의 한, 위진, 남북조 시대 직물에는 수복장생(壽福長生) 등의 길상 문자를 종종 장식하곤 한다.
무덤 주인공의 배경에 그려진 ‘왕’ 자 문양에 대해서는 길상의 의미보다는, 불교의 전륜성왕의 상징으로 고구려 벽화에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중국 벽화고분 가운데 순수장식 문양만으로 구성한 드문 사례는 위진(魏晉) 시기 신장성 누란 고성의 벽화고분이다. 앞방은 중앙아시아풍의 인물 연회도와 투타도(鬪駝圖, 낙타 두 마리가 싸우는 모양), 가부좌를 튼 불교 신상이 그려져 있다. 앞방 중앙에는 연화문이 장식된 중심 기둥이 서 있고, 후실은 연화문만으로 장식됐다.
신장성 누란과 길림성 집안 지역의 고구려 고분이 어떻게 유사한 주제로 벽화를 구성하게 됐는지는 규명하기 어렵다. 하지만 관을 안치하는 공간을 연화문만으로 장식해 불교적 내세관을 반영한 공간을 형성했음을 알 수 있다.
환문총(環紋塚)은 원래 인물 생활 풍속도와 사신도를 그렸다가 여러 개의 동심원이 겹친 환문으로 무덤 내부를 다시 그렸다. 이러한 환문은 불교적 상징성을 가진 장식 문양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