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으로 가는 배 반야용선] 극락으로 이끄는 배, 반야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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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으로 가는 배 반야용선] 극락으로 이끄는 배, 반야용선
  • 구미래
  • 승인 2023.11.23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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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般若의 용선龍船
제천 신륵사 극락전 외벽에 그려진 반야용선. 배는 용의 몸통이 되고, 용의 다리는 거친 파도를 저어 앞으로 나가고 있다. 서방정토의 교주 아미타부처님이 앉아 있고, 인로왕보살,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이 노를 젓고 있다. 

정토를 향한 배

우리가 쓰는 관용어 가운데 “배 들어오면”이란 말이 있다. 현실은 팍팍하지만, 바라는 것을 가득 실은 배만 들어오면 모든 것이 잘되리라는 우스갯소리이다. 이는 배가 지닌 상징성 가운데 만선(滿船)의 풍요로움을 취한 셈이다. 

동서고금 막론하고 배는 미지의 이상세계를 향한 상징성을 지녔다. 망망대해 수평선 너머로 떠나는 배의 이미지가, 인간이 꿈꾸는 피안의 세계로 데려다 줄 이동 수단으로 여겨진 것이다. 무덤 속에 배를 그리거나 새긴 것 또한 죽은 자의 영혼을 실어 사후세계로 무사히 데려가기를 바라는 옛사람들의 주술적 염원이었다.

마을에서는 배가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의 행주형(行舟形) 지세를 최고의 입지로 꼽는다. 만선의 배가 드나드니 흥성한 부촌이요, 홍수에도 ‘구원의 배’가 되어 마을을 안전하게 지켜준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주형 마을에는 어김없이 홍수 설화가 전승된다. 그런데 풍요와 구원을 보장받으려면 배가 순항할 수 있도록 돛대를 잘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 이에 솟대를 세워 돛대로 삼고 꼭대기에 오리를 앉혔다. 오리는 물갈퀴와 다리와 날개가 있으니 물·땅·하늘의 삼계(三界)에 자유자재하다고 본 것이다.

사찰의 법당 또한 거대한 ‘반야의 용선’이다. 불교에서는 피안의 정토에 도달하기 위한 길을 망망대해에 비유하면서, 그곳으로 인도하는 구원의 배를 반야용선(般若龍船)이라 설정한다. 극락정토는 반야의 지혜에 의지해 건널 수 있으며, 불법의 수호자이자 물을 상징하는 용이 배가 되어 험난한 파도를 헤쳐 나아간다고 여겼다. 사바세계가 ‘괴로움의 바다(苦海)’라면,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충만한 법당은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는 배에 해당한다. 부처님의 말씀을 새기며 살아간다면 누구든 피안에 도달할 수 있으니, 서방정토는 사후만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실현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법당 앞면의 기둥머리에 조각한 커다란 용두(龍頭)는 불법을 수호하는 것이자, 법당이 반야용선임을 나타낸다. 민속적으로 표현하자면 법당은 용두를 뱃머리 삼아 항해하는 행주형의 공간인 셈이다. 구례 천은사에는 법당 뒤쪽에도 용미(龍尾)를 조각해 이러한 의미를 더욱 실감 나게 표현했다. 외벽에 반야용선을 그리는 것도, 법당 전체가 서방정토를 향하는 반야용선임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지혜의 배, 반야용선

반야용선을 그린 불화로 고려 말에 그려진 <미륵하생경변상도〉가 있다. 초기에 그려진 반야용선 모습인데, 이승에서 몸을 벗고 극락으로 가는 왕생자(往生者)만 승선한 모습이다. 이후에는 왕생자뿐 아니라 이들을 극락으로 이끄는 아미타불도 반야용선에 등장한다. 이어서 관음보살·지장보살이 함께하는 아미타삼존, 정토의 인도자 인로왕보살이 자리하게 된다. 따라서 반야용선은 인로왕보살이 선두에서 이끌고 지장보살이 선미(船尾)를 지키는 가운데, 아미타삼존이 중생과 함께하며 거센 파도를 헤쳐 가는 모습으로 즐겨 표현된다. 

제천 신륵사 극락전 외벽에 나타난 반야용선도는 여러모로 인상적이다. 서방정토를 향해 나아가는 역동적인 여정과 함께, 극적 요소들이 화면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용은 네 발을 드러낸 채 거센 파도를 헤치며 험한 바닷길을 내달리는 모습이 강조됐다. 배 앞의 인로왕보살이 가운데 관음보살과 선미의 지장보살과 함께 열심히 노를 젓는 실천적 행보를 보여주는데, 다른 그림에서 이분들은 보통 합장을 하고 있다. 

그림의 백미는 용선과 연결된 작은 나룻배다. 불보살이 있는 용선은 이미 가득 찼기에, 타지 못한 이들을 빽빽이 태운 작은 배를 별도로 그렸고, 밧줄로 이어 파도를 헤치며 나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중생을 남김없이 구하려는 긴박함을 표현했다. 정토를 향한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 느끼게 해주는 장면이다. 

또 하나의 반전은 반야용선에 탄 이들을 대부분 스님으로 그렸다는 점이다. 이는 반야용선이 단순히 구원의 배가 아닌, 지혜의 배임을 강조한다. 반야용선을 탄 대중이 가는 곳은 깨달음의 세계이기에, 수행 없이 극락왕생만 바라는 이에게 일침을 가하는 그림으로 새겨야 할 듯하다. 

기독교에도 ‘노아의 방주(方舟)’라는 구원의 배가 있다. 타락한 이들을 심판하고자 하나님이 대홍수를 내려 모든 생물이 전멸했지만, 선하고 정의로운 노아의 가족과 동물만이 방주에 타서 구원받은 것이다. 이처럼 구원의 배는 오직 선한 이들만이 탈 수 있다. 따라서 그림 앞에 선 이들은 대중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끌어 주는 종교적 장치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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