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삼재 그리고 부적] 약사여래와 12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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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삼재 그리고 부적] 약사여래와 12신장
  • 유근자
  • 승인 2023.01.26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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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경전에 등장한 12가지 동물

무덤과 탑을 수호하는 12동물

십이간지(十二干支)는 고대로부터 시간과 방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오늘날과 같은 십이지와 동물상이 결합한 시기는 후한 초기 사상가인 왕충(王充, 27~?)이 저술한 『논형(論衡)』에서부터다. 그러나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 왕충이 『논형』을 저술하기 이전부터 십이지상은 중국 사회에 수용되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후한 때부터 십이지상이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완전히 정착됐고, 수와 당을 거치면서 전성기를 맞이했다. 십이지상이 당을 통해 신라에 전해진 때는 7세기 말 8세기 초로 추정된다. 동물과 결합한 십이지상은 중국에서 주로 묘지석 또는 무덤 내부에 벽화로 표현되거나 부장품으로 매납(埋納, 시신을 매장할 때 물건을 함께 묻음)됐다(도판 1). 

도판 1. 중국 당나라 때 무덤 속에서 발견된 십이지상, 중국 섬서성박물관 소장. 사진 유근자

우리나라에 전해진 십이지상은 왕릉과 불탑을 수호하는 데 사용됐다. 왕릉 내부에 죽은 자와 함께 매납하거나 무덤 둘레에 배치했고(도판 2), 불탑에는 탑신을 받치는 기단의 가장 아래쪽에 표현됐다(도판 3). 왕릉과 불탑에 수용된 십이지상은 초기에는 머리는 동물 형상을 하고, 신체는 사람으로 표현한 수수인신(獸首人身)의 형태를 취했다. 우리나라 불탑에 표현된 십이지상은 중국 당나라 때 무덤에서 출토된 십이지상처럼 머리는 동물상을, 몸은 평복을 입은 사람으로 표현됐다. 

무덤에 매납된 십이지상과 달리 불탑에 표현된 십이지상은 낮은 기단 때문에 평복 차림으로 두 손은 합장한 채 앉아 있다. 한 면에 3구씩 표현된 십이지상은 중앙에 배치된 상은 향우측을, 나머지 두 상은 향좌측을 바라봐 태양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탑돌이 하는 예배자의 발길을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배치됐다. 예천 개심사지 오층석탑 아래 기단에 표현된 십이지상은 - 바로 위 기단에 배치된 칼로 무장한 팔부중과 달리 평복 차림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 불탑의 사리를 수호하는 호법신 기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도판 3)

중국 문화의 영향으로 무덤을 수호하던 십이지상이 통일신라에 전해져 불탑 하단에 배치된 이후 고려시대까지 계승됐다. 그렇다면 불교와 십이지상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도판 2. 경주 원성왕릉에 표현된 십이지상, 8세기 말~9세기 초. 사진 유동영
도판 3. 예천 개심사지 오층석탑(보물) 남측면 하층 기단에 표현된 십이지상, 고려(1010), 출처 문화재청

 

불교 경전에 등장하는 십이지상

불교 경전에 방위와 관련해 십이지 동물상이 등장하는 것은 414~426년에 북량의 담무참(曇無讖, 385~433) 스님이 번역한 『대방등대집경』 「제10 허공목분(虛空目分)」에서다. 「허공목분」은 제22권과 제23권으로 구성됐는데, 십이지상과 관련된 내용은 제23권에 등장한다. 즉 축생을 조복하기 위해 부처님은 열두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세계의 보살들은 하늘의 형상으로 중생을 조복하기도 하고, 용·아수라·사람·동물의 형상을 하고 염부제에 다니면서 여러 중생을 교화한다. 하늘과 사람의 형상으로 중생을 항복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축생의 모습으로 중생을 조복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염부제의 바깥 남방 유리산은 옛날 보살이 머물던 곳으로 굴속에는 독사가, 무사굴에는 말이, 선주굴에는 양이 머물면서 성문의 자비행을 닦고 있었다. 서방 파리산 상색굴에는 원숭이가, 서원굴에는 닭이, 법상굴에는 개가 수행하고 있었다. 북방 보리월 금강굴에는 돼지가, 향공덕굴에는 쥐가, 고공덕굴에는 소가 수행 중이었다. 동방 공덕상 금산의 명성굴에는 사자가, 정도굴에는 토끼가, 희락굴에는 용이 수행하고 있었다. 

열두 동물은 밤낮으로 항상 염부제의 안을 다니면서 하늘·사람을 공경하고 공덕을 성취하고 나서는 부처님 계신 곳에서 서원을 세웠다. 하루 낮과 밤 동안에 한 동물은 다니면서 중생을 교화했고, 나머지 열한 동물은 머물면서 자비행을 닦았다. 그러자 7월 초하룻날 쥐가 처음 다니면서 성문승으로 온갖 쥐 몸의 중생을 교화시켜 나쁜 업을 없애고 착한 일 닦기를 권했다. 이같이 차례에 따라 13일을 마치고 쥐는 다시 열두 달, 열두 해 동안 다니면서 중생을 항복시켰다.

『대방등대집경』에는 인간이 사는 세계를 동남서북으로 나누고 각 방위의 굴에는 3종류의 동물들이 수행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남방에는 독사·말·양을, 서방에는 원숭이·닭·개를, 북방에는 돼지·쥐·소를, 동방에는 사자·토끼·용을 배치했다. 이 가운데 동방굴의 사자만 호랑이로 바뀌었을 뿐 나머지는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십이지상과 같다. 『대방등대집경』의 십이지상에 관한 내용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열두 동물을 방위신으로 수용한 경전적 근거다. 통일신라와 고려의 불탑 기단에 표현된 십이지상은 바로 『대방등대집경』의 내용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방등대집경』 외에도 십이지상과 관련된 불교 경전으로는 시호(施護)가 986년에 번역한 『십이연생상서경』이 있다. 이 경전은 12연생(緣生)과 12간지를 결합해 길상(吉祥)과 서응(瑞應, 임금의 선정으로 나타난 상서로운 징조)을 설명하고 있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세히 12연생을 관찰하여 선(善)·악(惡)·득(得)·실(失)·우(憂)·희(喜)를 깨닫고 윤회하는 그림을 분명하게 그리면, 무명으로부터 노·사에 이르며, 월·일의 분위(分位)를 차례로 나열하고, 쥐[鼠]·소[牛]·범[虎]·토끼[兔]·용[龍]·뱀[蛇]·말[馬]·양[羊]·원숭이[猴]·닭[雞]·개[犬]·돼지[豕] 열두 가지의 모양을 그리고, 본래의 형상과 윤회해 움직이는 차례를 사람들을 위해 해설해야 한다.”

『십이연생상서경』에는 십이간지에 해당하는 동물상이 십이지상과 완전히 일치한다. 

 

약사신앙과 약사12신장

『대방등대집경』과 『십이연생상서경』의 십이지상과 달리 중생의 병고를 치유하는 약사신앙은 일찍부터 십이지상과 관련해 주목받았다. 약사여래는 성불하기 이전에 열두 가지의 큰 원을 세웠고, 『약사여래본원공덕경』을 비롯한 약사경전에서는 12야차대장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당나라 현장 스님이 번역한 『약사여래본원공덕경』에는 십이신장(十二神將)에 관한 내용이 언급됐는데,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때 대중 가운데 12명의 야차대장들이 모두 모임에 와서 앉아 있었다. 이른바 궁비라 대장·발절라 대장·미거라 대장·안날라 대장·안달라 대장·마열라 대장·인다라 대장·바이라 대장·마호라 대장·진달라 대장·초도라 대장·비갈라 대장이다. 이들 12야차대장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들은 지금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약사유리광여래의 이름을 듣고 악도의 공포가 사라졌습니다. 이제부터는 목숨이 다하도록 부처님과 법과 승가에 귀의하겠습니다. 또한 일체 중생에게 이익을 주고 안락하게 하겠습니다. 이 경전을 유포하고 약사유리광여래를 공양하는 사람은 모든 고난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고, 구하는 것은 모두 만족하게 하겠습니다.”

『약사여래본원공덕경』에서 보다시피 『약사경』에는 열두 명의 신장상에 관한 구체적인 명칭이 나열됐다. 이들은 약사여래의 이름을 듣고 공포를 없앴기 때문에 약사경전을 유포하거나 약사여래를 공양하는 사람에게는 고난을 없애주고 원하는 바를 얻게 해주겠다는 서원을 한다. 고려 때인 1346년에 제작된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국보) 조성발원문에도 “부처님의 무한한 자비가 시방세계에 가득하니 8대 보살이 좌우에서 모시고, 12신왕이 하늘과 땅에서 수호한다”는 내용이 있다. 고려시대 약사불화에 12신장이 표현된 것은 이러한 배경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약사경』에 등장하는 12신장은 갑옷과 투구를 쓰고, 무기를 들었으며, 분노의 형상을 해 호법신으로 표현됐다. 호법신으로서의 약사12신장은 불화에서는 약사여래의 주위에 그려지거나(도판 4), 일본 나라에 있는 신약사사(新藥師寺) 불전에서처럼 약사여래를 호위하는 독립된 조각으로 배치됐다(도판 5). 

도판 4. 약사삼존과 12신장상, 조선시대(16세기), 비단에 채색, 123×127.5cm, 
미국 보스턴박물관 소장
도판 5. 약사여래를 둘러싼 약사12신장상, 헤이안시대(8세기), 일본 나라 신약사사 소장

『약사경』에 언급된 약사12신장은 돈황 막고굴에 그려진 약사경 변상도를 통해 찾아볼 수 있다. 돈황 막고굴 약사경 변상도 속의 약사12신장은 갑옷을 입고 무장을 한 호법 신장상인데, 무장한 모습은 사천의 대족(大足) 북산석굴(北山石窟) 약사12신장상에도 계승됐다. 

북산 대족석굴 제281호굴에는 954년에 조성된 약사삼존상과 약사12신장상이 부조로 표현돼 있다(도판 6).

약사12신장은 약사삼존상 아래에 일렬로 서 있는데, 약사12신장상은 분노의 형상을 하고, 투구 또는 보관을 쓰고 갑옷을 입었으며, 두 손은 가슴 앞에 모아 명령을 수행하는 장군상의 모습처럼 표현됐다(도판 7). 

약사12신장이 무장한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됐다면, 통일신라의 부도와 불탑에 표현된 십이지상은 동물 머리에 인간 몸을 하고 평복을 입고 있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울산 태화사지 십이지상 사리탑은 9세기경에 제작됐는데, 십이지상은 동물 머리에 평복을 입고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있다(도판 8). 통일신라 원성왕(재위 785~798)의 능에 표현된 십이지상은 김유신 묘의 십이지상과 달리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수호신의 모습으로 변화했다. 왕릉의 십이지상이 무장형을 한 것은 약사12신장의 영향이지만, 사리탑과 불탑에 표현된 십이지상은 능묘를 수호하는 십이지상의 영향으로 약사12신장과는 관련이 없다.  

도판 6. 중국 북산 대족석굴 제281호굴 약사삼존상과 약사12신장. 사진 유근자
도판 7. 중국 북산 대족석굴 제281호굴 약사12신장상. 사진 유근자
도판 8. 울산 태화사지 십이지상 사리탑, 9세기경, 울산박물관 소장. 출처 문화재청
경주 김유신 묘의 십이지상, 통일신라(674). 사진 유동영

 

유근자
동국대 예술대학 미술학부 불교미술 전공 강의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강원도·경기도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선시대 불상의 복장 기록과 부처님의 생애를 표현한 간다라 불전미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조선시대 왕실발원 불상의 연구』, 『조선시대 불상의 복장기록 연구』가 있고, 공동 저서로 『간다라에서 만난 부처』와 『치유하는 붓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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