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삼재 그리고 부적] 입춘과 부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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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삼재 그리고 부적] 입춘과 부적 이야기
  • 유현주
  • 승인 2023.01.26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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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 악귀를 쫓고 재앙을 물리치다
처용관복(處容冠服), 『악학궤범(樂學軌範)』, 국립중앙도서관본

동양의 부적과 한국의 처용 부적

입춘의 세시풍속을 살펴보면 새봄을 맞이하는 설렘으로 가득하다. 조정에서는 문무백관이 모여 입춘하례(立春賀禮, 입춘절 축하 의례)를 하고 임금으로부터 춘번자(春幡子)라고 하는 머리 장식을 하사받았다. 집마다 햇나물로 입춘채(立春菜)를 만들어 이웃과 나누고 집 안을 단장한 후 복을 기원하는 글귀를 붙였다. 입춘이 한 해의 첫 절기이니만큼 무사히 일 년을 지내고 복을 구하는 풍속이 성행했다. 그 방식은 다양해서 굿을 하거나 부적을 붙이는 등 집마다 나름의 의례 전통이 있었다. 입춘이 절기로서의 성격을 거의 잃어버린 지금도 이러한 기복 행위는 현재진행 중이다. 재앙을 쫓고 복을 구한다는 양화구복(禳禍求福) 행위의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부적(符籍)을 들 수 있다. 부적은 귀신을 물리치고 재액을 예방하는 그림이나 글씨를 말하는데 넓게 본다면 종이에 쓴 글씨·그림 이외에도 신통력이 있다고 여겨지는 주술적인 물건[呪物]을 포함하기도 한다. 이러한 개념은 인류 사회 전반에 걸쳐서 나타나는 인간 보편의 문화 요소다. 그중에서도 한·중·일을 중심으로 하는 동양 전통에서는 종이를 이용한 방식이 널리 쓰였다(‘부적符籍’이라는 명칭 자체가 문서를 뜻하며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주부呪符, 부주符呪, 혹은 부록符籙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동양의 부적은 특히 도교의 종교 전통과 관련이 깊다. 누구나 한 번쯤은 도교 도사들이 부적을 날려 귀신을 퇴치하는 이야기를 접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도교의 교파 가운데에는 부적과 주문으로 귀신을 쫓고 병을 치료하는 것을 위주로 하는 부록파(符籙派)가 있었다. 동한 시기의 태평도와 오두미도, 후대의 영보파, 상청파, 정일도 등이 이에 속한다. 중국 위진남북조 시기 도교의 특징 가운데 한 가지가 도사들이 주문·부적 사용에 열중했다는 점이다. 이는 불교를 의식한 포교 정책의 일환이기도 했다. 불교와의 종교·문화적 습합이 이뤄진 후대에는 불교와 도교 양측 모두 부적 사용이 일반화됐고 이러한 종교 문화는 한국과 일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렇지만 부적 전통 전체가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것은 아니며, 불교·도교의 전래 이전에도 한국에는 고유한 부적 문화가 존재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를 처용 설화에서 찾을 수 있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처용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처용은 동해 용왕의 아들이었는데 신라 왕의 조정에서 정사를 도왔다. 어느 날 역신(疫神)이 아내와 동침하는 것을 알게 됐는데, 그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물러 나왔다. 처용의 의연하고 여유로운 모습에 오히려 겁을 먹게 된 역신은 용서를 구하며 앞으로 처용의 형상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 이후로 온 나라 사람들은 처용 그림을 문에 붙여 사귀(邪鬼)를 물리쳤다고 한다. 전염병 귀신을 물리치는 부적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처용의 생김새와 의복, 처용의 노래와 춤은 신라는 물론이고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국가 의례 전통에 포함돼 전승됐다. 민간에서도 탈춤과 부적으로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처용은 지금의 달마대사 부적만큼이나 인기 있는 부적이었던 셈이다. 

 

화재부(火災符)와 질병부(疾病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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