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에서 차차차茶茶茶] 선방 茶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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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서 차차차茶茶茶] 선방 茶 수행
  • 혜민 스님
  • 승인 2023.04.26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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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방에서 차를 끓이다

스님들이 모여 치열하게 참선 수행하는 선방의 하루는 철저한 적막과 침묵 속에서 흘러간다. 고요함 속에는 도시의 소음 속에서 느낄 수 없는 어떤 것들이 분명히 있다. 그 고요함 속에 처하기 전에는 무엇으로도 그 고요함이 주는 어떠한 상태를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 고요함을 벗어나 있는 지금의 나 또한 그것을 잊고 사는지도 모른다.

처음 이 글을 쓰면서 도대체 선방에서의 일과에 대해 무엇을 적을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일상이 되어버린 어떤 것들은 이미 어떤 것이 아니게 되는 것 같다.

도반 중에 차에 관하여 해박한 스님이 있었다. 그 도반은 출가 전에도 전통찻집을 운영하며 차에 관해 공부도 하고 직접 차를 만들기도 했던 차 전문가였다. 차에 대해서 문외한이었던 나에게 그 도반이 들려주는 차 이야기는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한 신세계였다. 

그 도반은 차를 마신다는 것은 차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고 했다. 어떤 마음으로 차를 마시느냐에 따라 차가 사람에게 다른 맛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차를 우려내는 물에 따라서도 그 맛이 천차만별이며 산물로 내려 마실 때 가장 그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다고도 했다. 그래서인지 과연 도심에서 먹는 차는 산중에서 산물로 내려 먹는 차에 비할 바가 아니다.

출가하고 한참 어른 스님들을 찾아다니며 공부를 묻던 때 평소 뵙고 싶었던 어느 노스님을 찾아뵈었던 적이 있었다. 

노스님께서 “무슨 일로 왔느냐” 물으셔서 “여쭐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말씀드리니 들어오라 하셨다. 노스님은 조용히 좌정하시듯 앉으셔서 말없이 차를 내리셨다. 어색한 마음에 무언가 여쭈었던 것 같은데 노스님께서는 아무런 응대도 하지 않으시고 그저 묵묵히 차를 내리셨다. 그렇게 차가 우러나기를 한참을 바라보고 계셨다. 

어색한 시간이 흐른 뒤, 차를 따르시며 권하셨다. 차를 따랐으니 이제 뭐라고 한마디 말씀하시려나 기다렸지만 여전히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내가 또 무엇인가를 여쭈었던 것 같은데 노스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찻잔을 바라보셨다. “차 맛이 어떤가?” 하신 것 같은데 그 당시로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이것이 출가하고 처음으로 차 맛을 보게 된 일이었고 이때의 차의 맛은 ‘어색함’과 ‘침묵’이었다. 

그러나 선방에서 안거를 나게 되면서 이러한 어색함과 침묵이 대중선방에서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대중선방에서는 공양 후나 운력 후, 휴식시간에 모여서 차담 시간을 갖곤 한다. 선방에서의 차담 시간도 처음의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차를 마시면서 대부분은 조용히 차를 마신다. 차담 도중 몇 마디 대화가 오고 가지만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는 못한다. 대화의 주제도 사람이나 세속에 잡다한 일이 아니다. 누군가 의미 없이 한마디 내뱉어도 그것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애끓는 말이나 재치 있는 화려한 문장은 환영받지 못한다. 선방 스님들은 사실 차에 그렇게 관심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여느 선방에 구비되어 있는 상비약처럼, 정진 중에 졸음을 쫓으려고 차와 커피를 마시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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