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를 짓습니다] 유정무정 백년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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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짓습니다] 유정무정 백년해로
  • 윤남진
  • 승인 2022.04.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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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가에서 장인, 장모와 함께 살고 있다. 장인어른의 별호는 한샘, 장모님의 불명은 대원행 보살. 두 분이 만난 사연도 참 공교롭다. 한 분은 섬마을 선생님으로, 한 분은 비구니 주지스님으로 있을 때였다. 한샘은 공부 꽤 하셔서 사범학교를 우수하게 졸업하셨고, 대원행 보살도 출가하여 한창 젊은 시절 한문 경전을 사진 찍듯 통째로 외울 정도로 성취가 있어서 강원에 강사까지 하셨다고 한다. 

한샘은 사범대학 졸업 후 신안군 고아도라는 섬마을의 초등학교 교사로, 대원행 보살은 그 섬마을과 마주 보이는 무안군 운남이란 곳의 사찰 주지 소임을 살고 있었다. 그러다 한샘 퇴근길에 두 분은 목포로 가는 배에서 만나 인연을 맺었다. 한 분은 선생님과요 다른 한 분은 도인과로 그 배경이 서로 다른데도 20대라는 뜨겁던 청춘에 그렇게 만나서 이제 두 분 모두 팔순을 넘기고 함께 늙고 계신다.

 

다르게 또 같은 길로

어느 봄날이었다. 

“주영 아빠!” 

대원행 보살이 세게 치는 목탁울림처럼 한샘을 부른다.

“왜? 이리 와서 얘기하소.” 

선생님 조다.

“이것 좀 도와 돌라니께요” 

“아따, 이리 앞으로 와서 얘기하라닝께!”

대원행 보살이 일갈한다. 

“오매, 말을 귓구녘으로 듣지 눈구녘으로 듣소. 꼭 사람 낯바닥을 봐야 한당가!”

한샘과 대원행 보살은 이렇게 ‘겁나 쬐깐한’ 문제로 자주 다툰다. 자동차로 20분 거리쯤 되는 읍내에 다녀올 때도 그렇다. 선생님 출신인 한샘은 운전자 입장에서 어디 어디를 코스로 잡고 시간이 얼마나 걸리고 하는 걸 미리 상의하자는 주의다. 그러나 도 닦는 출신인 대원행 보살은 이른바 ‘즉설주왈’, 차로 이동 중에 문득 생각나면 돌연 ‘어디로 갑시다, 저기서 서봐요’하고 대뜸 지르는 성격이다. 

통화할 때나 사람을 대할 때도 한샘은 주로 안부와 격려 전화를 자주 하면서 설교 조로 목소리를 높이는 편이라면, 대원행 보살은 곤란에 처한 사람과 인생 상담하듯 조곤조곤하면서 할 말을 다 하는 편이다. 상품판매 홍보 전화가 오면 한샘은 상대가 더 말하기 전에 바로 끊어버리지만, 대원행 보살은 그것을 매정하게 못 끊고 다 들어 주는 편이다. 

그러고 보면 나와 아내도 두 분처럼 성격이 아주 다르다. 나는 어디를 가나 계획된 대로 가고, 도중에 어떤 특별한 곳을 지나거나 새로운 일이 생기더라도 곁눈질하지 않고 애초 계획대로만 가는 성격이지만, 아내는 그런 특별하고 새로운 일은 꼭 보고 지나가자는 주의다. 아내는 읍내 가는 길에 저수지 물안개 피는 것을 보거나 뒷산에 오를 때 여기저기 제멋대로 피어있는 꽃을 보면 ‘어머나!’ 하는 감탄사와 더불어 휴대폰 카메라를 바로바로 들이대는 성격이다. 물론 나는 묵묵하게 지나칠 뿐이다. 아내는 채집 본능이 있어서 한 접시도 되지 않을 나물 몇 포기를 기어코 뜯지만 나는 그걸 누구 코에 붙이느냐고 핀잔을 하는 성격이다. 한샘이 읍내에 장을 보고 돌아와 차를 세운다. 뒷문을 열고 대원행 보살에게 손을 내민다. “내 손을 잡고 내리소.” 무릎이 불편한 대원행 보살을 위한 극진한 서비스다. 그러면서 짐을 받으러 나온 내게 한소리 하신다. “보살이랑 같이 못댕기겠당께! 갑자기 여기 가라 저기 가라 하니 어디 쓰것는가?” 툴툴대시는 것이다. 대원행 보살도 한소리 받으시려다가 침을 삼키시고 한샘 손에 이끌려 방으로 걸어간다. 

어떤 독립된 한 사람과 그와 성격이 전혀 다른 독립된 사람이 만나 서로 관계를 이루며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정말로 대견스러운 일인 듯싶다. 신영복 선생은 어디에선가 관계 짓는 것을 붓글씨 쓰는 것에 비유한 적이 있다. 나도 붓글씨를 쓰다 보면 느끼는데 앞의 글자가 머리 쪽이 너무 넓게 써져서 보기 싫으면 다음 글자의 머리를 좀 작게 그 대신 아래를 좀 넓게 써서 모양을 맞추면 앞글자의 허물이 가려진다. 도배할 때도 그렇다. 전문 도배장이가 아닌 이상 초보가 천장 도배를 하다 보면 첫줄 도배 종이에 비뚤어지지 않게 맞추어 도배하기란 여간 힘들지 않다. 그래서 여러 번 때였다 붙였다 반복해도 안 되는 경우, 많이 티가 나지 않게 그다음 줄부터 조금씩 비뚤어진 도배지를 바로잡아 가면 그리 밉지 않게 무늬가 맞아 돌아가게 된다.

 

묵묵 툴툴 철썩, 관계의 흐름

사람과 사람이 서로 관계 맺고 살아간다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한다. 서로의 다른 성격들을 맞추고 상대방의 허물을 묵묵 툴툴 보완해 주고, 내 성격이나 모습도 조금씩 관계에 맞추어 변해가는 것. 처음에는 여울물처럼 시끄럽게 재잘대는 소리를 내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강물처럼 유장하게 흐르다가 바다에 닿아, 늘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라는 듯 철썩철썩 하염없이 바라보는 파도로 명멸하는 것이 관계의 흐름이자 역사인 듯싶다.        

그 흐름 속에 고요만 있을 수 없다. 여울물이던 시절에는 개울 바닥의 자갈돌들을 만나 서로 부딪치듯 자주 사소한 일들로 양은냄비 두드리듯 입씨름을 하기도 하고, 강물이던 시절에는 겉은 고요하지만 깊은 곳에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이는 듯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침잠하기도 하고, 바다에 이르러서는 절벽을 만나면 처절하게 부서지기도 하지만 대개는 해안 모래톱에 부드럽게 스며드는 잔잔한 파동으로 남기도 하는 것이다.

대원행 보살이 작은 공기에 절반 정도 되는 밥을 다 자시고 일어서려 한다. 한샘이 한마디 한다.

“좀 있다가 일어나소.”

“아니 왜 다 먹은 사람을 잡고 그랴요.”

“그래도 좀 있다 다들 먹걸랑 일어나소.”

“할 일이 있어서 그랴. 아니, 내가 반찬이요? 앉아 있으라게.”

아내가 거든다.

“네, 엄마가 반찬이래요.”

“아따, 그럼 앉았어야 쓰것네.”

이렇게 한 가족이란 관계도 서로 오랫동안 맞추면서 쌓아가는 역사다. 한샘 팔순 잔치 때, 서예가인 제자가 ‘유정무정 백년해로(有情無情 百年偕老)’라는 글귀를 쓴 액자를 선물했다. 정이 있든 정이 없든 백 년을 함께 늙으시라는 뜻인가? 아닐 것이다. 유정도 정이고 무정도 또한 정이리라. 하물며 티격태격 ‘다투며 든 정’이야 또 말해 무엇하겠는가!  

 

윤남진
동국대를 나와 1994년 종단개혁 바로 전 불교사회단체로 사회 첫발을 디뎠다. 개혁종단 순항 시기 조계종 종무원으로 일했고, 불교시민사회단체 창립 멤버로 10년간 몸담았다. 이후 산골로 내려와 조용히 소요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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