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걸, 불교에 빠지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정사情死, '사의 찬미' 윤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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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걸, 불교에 빠지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정사情死, '사의 찬미' 윤심덕
  • 송희원
  • 승인 2022.02.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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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 사랑과 죽음

1926년 8월 4일 새벽 4시경, 부산과 일본의 시모노세키(下關)를 연결하던 관부연락선이 대마도 앞바다를 항해하던 중 남녀 한 쌍이 바닷속으로 몸을 던졌다. 보고를 받은 선장은 즉시 운행을 중단하고 객실과 바다를 수색했으나, 실종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승객명부를 조사해보니, 남자는 ‘조선 목포부 북교동 김수산(金水山·30)’, 여자는 ‘경성 서대문정 일정목 73번지 윤수선(尹水仙·31)’이었다. 남녀가 탔던 일등석에는 여자의 지갑 안 현금 140원과 장신구, 남자의 것으로 보이는 현금 20원과 금시계가 남아 있었다. 

승객명부에 적힌 ‘김수산’과 ‘윤수선’은 극작가이자 연극이론가인 김우진, 최초 여성 성악가이자 연극배우인 윤심덕이었다. 수산은 김우진의 호였고, 수선은 김우진이 지어준 윤심덕의 호로 수산의 곁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윤심덕이 일본 오사카에서 <사의 찬미>를 녹음한 뒤 귀국하던 길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유부남이었던 김우진과 조선 최고의 소프라노이자 대중가수였던 윤심덕의 투신자살은 ‘불륜’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당시 신문들은 <미성(美聲)의 주인 윤심덕 양 청년문사와 투신 정사>(「조선일보」 1926년 8월 5일자), <현해탄격낭중(玄海灘激浪中)에 청년 남녀의 정사(情死)>(「동아일보」 1926년 8월 5일자)라며 연일 대서특필했다. 

윤심덕(尹心悳, 1897~1926)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성악가이자, 최초의 여성 관비 유학생, 최초의 대중가수였다. 특히 자살 직전 녹음한 <사의 찬미>는 최다 레코드 판매를 기록하며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평양에서 4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난 윤심덕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서양음악을 일찍 접하며 노래에 재능을 보였다. 이후 조선총독부 관비 유학생으로 선발된 윤심덕은 1915년 일본 도쿄음악학교 사범학과에 재학했다. 김우진과는 1921년 유학생으로 이뤄진 동우회 연극단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한국 남자 유학생에는 홍난파, 채동선 등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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