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말을 걸다] 이도윤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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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말을 걸다] 이도윤 ‘탑’
  • 동명
  • 승인 2021.10.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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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출가수행자인 동명 스님의 ‘시가 말을 걸다’를 매주 화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원문은 다음카페 ‘생활불교전법회’, 네이버 밴드 ‘생활불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오대산 월정사 선재길, 가에 있는 나무 위에 쌓은 돌탑.
오대산 월정사 선재길, 가에 있는 나무 위에 쌓은 돌탑.

산사에 오르는 길
돌은 바람을 어루만져 흘려보낸다
오가는 이 빌면서 얹어놓은 어린 돌탑
점점 작아진 소원 하나씩
서로의 마음을 떠받치며
위태롭게 쌓여있다
신기한 일이다
염주 같은 애기 돌탑을
바람은 숨죽여 살며시 피해간다

(이도윤 시집 ‘너는 꽃이다’, 창비 1993)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길의 돌탑.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길의 돌탑.
오대산 월정사 선재길 계곡에 쌓은 돌탑.
오대산 월정사 선재길 계곡에 쌓은 돌탑.

[감상]
산사에 오르는 길입니다. 우리나라 산길에는 유난히 바위가 많지요. 계곡에는 바람도 많고요. 바람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어디론가 흘러갑니다. 흘러가지 않는다면 바람이 있는지조차 모르겠지요. 바윗길 사이로 바람이 부는 것을 시인은 “돌은 바람을 어루만져 흘려보낸다”라고 표현합니다. 그 표현 속에서 감각으로 전해져오는 모든 풍경을 하나하나 느껴가는 시인의 마음을 읽습니다.

계곡길, 혹은 바윗길에 돌탑이 위태롭게 쌓여있습니다. 어떤 때는 저 돌탑이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게 신기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시인은 기가 막히게 표현합니다.

“염주 같은 애기 돌탑을
바람은 숨죽여 살며시 피해간다”

이 두 행만으로 이 시는 장시보다도 큰 힘을 발휘합니다. 시인이 풍경 하나하나를 애정을 담아 느끼고 가듯이 바람도 아름다운 소망이 담긴 돌탑을 피해간다고 생각하는 시인의 마음, 그런 마음을 누군가 지니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는 희망이 넘칩니다.

오늘도 아기 돌탑을 쌓는 마음으로 수행의 돌탑에 돌 하나 조심스레 올립니다.

동명 스님
중앙승가대 비구수행관 관장. 1989년 계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 1994년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으로 20여 년 활동하다가 지난 2010년 출가했다. 저서로는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제1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벼랑 위의 사랑』과 산문 『인도신화기행』, 『나는 인도에서 붓다를 만났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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