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말을 걸다] 조재훈 ‘장곡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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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말을 걸다] 조재훈 ‘장곡사 가는 길’
  • 동명 스님
  • 승인 2022.03.15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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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출가수행자인 동명 스님의 ‘시가 말을 걸다’를 매주 화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원문은 다음카페 ‘생활불교전법회’, 네이버 밴드 ‘생활불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첩첩산중의 청양 칠갑산 장곡사
첩첩산중의 청양 칠갑산 장곡사

長谷寺 가는 길

산 너머 또 산 첩첩
손톱 뽑혀 발톱 뽑혀
찾아가는 길이다.

버릴 것 다 버리고
털릴 것 몽땅 털리고
빈손 빈주먹으로
찾아가는 길이다.

가야 만나는 건
바람이지만
구름 아래 떠도는
슬픔이지만
맨발로 허위허위
찾아가는 길이다.

법이 따라오지 않는 곳
피의 사슬이 쫓아오다 마는 곳
목마르면 한모금의 옹달샘이 있는 곳

눈멀어 귀먹어
말을 만나면 말을 죽이고
칼을 만나면 칼을 죽이고
찾아, 찾아가는 길이다.

(조재훈 시집, ‘겨울의 꿈’, 창작과비평사 1984)

울창한 숲에 안긴 청양 장곡사
울창한 숲에 안긴 청양 장곡사
누각 지나 객을 맞이하는 장곡사
누각 지나 객을 맞이하는 장곡사

[감상]
절에 오는 사연, 여러 가지겠지요. 어떤 사람은 절망 속에서 희망에 대한 기대도 없이 오고, 어떤 사람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아오고, 어떤 사람은 특별히 절망적이진 않지만 어떤 기대 속에서 오고, 어떤 사람은 그냥 구경 삼아 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조재훈의 시 <장곡사 가는 길>에서와 같은 마음으로 절에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얼마나 절절합니까? 칠갑산 장곡사를 가보진 않았는데, 아마도 첩첩산중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이 시를 창작할 때만 해도 대중교통으로 가기는 곤혹스러웠나 봅니다.

“산 너머 또 산 첩첩
손톱 뽑혀 발톱 뽑혀
찾아가는 길이다.”

첫 연을 읽으면서 벌써 안타까운 마음이 밀려옵니다. 얼마나 힘들면 손톱 뽑혀 발톱 뽑혀 찾아가는 길일까요?

“버릴 것 다 버리고
털릴 것 몽땅 털리고
빈손 빈주먹으로
찾아가는 길이다.”

왜 화자는 버릴 것 다 버리고, 털릴 것 몽땅 털리고, 빈손 빈주먹으로 장곡사를 찾아가고 있을까요? 출가하러 가는 길일까요? 그곳에 가면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가는 길일까요? 잘 모르겠지만, 허탈한 마음으로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인 듯합니다.

그렇게 비장한 각오로 간들 만나는 것은 바람일 뿐입니다. 구름 아래 떠도는 것은 슬픔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화자는 맨발로 허위허위 찾아가는 길입니다.

화자가 기대하기에 장곡사는 ‘법이 따라오지 않는 곳’입니다. 아마도 ‘법’이 구제해줄 것이라 믿고 억울한 사정을 호소했지만, 그 ‘법’에 혹독하게 당한 것 같습니다. 아니면 ‘국가보안법’ 같은 철퇴가 화자를 끊임없이 추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피의 사슬이 쫓아오다 마는 곳’에서 ‘피의 사슬’은 ‘수배’를 말하는 것은 아닐지요? 너무도 첩첩산중이어서 수배의 사슬도 쫓아오다 마는 곳이리라는 화자의 기대가 담긴 부분입니다. 목마르면 한모금의 옹달샘이 있는 곳이니까요.

아 그렇게, “눈멀어/ 귀먹어” 찾아오는 사람들을 절집의 스님들을 어떻게 맞이했을까요? 목숨 걸고 찾아온 사람들을 진정 따뜻하게 맞이해야 한다는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눈멀어 귀먹어
말을 만나면 말을 죽이고
칼을 만나면 칼을 죽이고
찾아, 찾아가는 길이다”

이런 마음으로 절에 오시는 분을 외면한 적은 없었는지…. 생각해봅니다. 부디 이런 마음으로 절집을 찾는 모든 생명체가 부디 평온하기를, 안락하기를, 행복하기를…

동명 스님
중앙승가대 비구수행관 관장. 1989년 계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 1994년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으로 20여 년 활동하다가 지난 2010년 출가했다. 저서로는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제1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벼랑 위의 사랑』과 산문 『인도신화기행』, 『나는 인도에서 붓다를 만났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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