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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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식
  • 관리자
  • 승인 2007.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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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묻는 이에게

세상구경을 한 지 이제 막 한 달을 지난 나정이가 부처님을 친견하러 왔다. 자신이 여자아 이임을 알리기 위해서 머리에는 이쁜 리본을 두르고 왔다. 진작에 오고 싶었지만 그동안 우 유가 맞지 않아서 심하게 앓느라고 이제사 왔다고 한다.

나정이가 서운사 부처님을 친견하러온 것은 이번이 세 번째 이다. 처음 두 번은 엄마 뱃속 에서였고, 오늘은 정식으로 자신의 모습으로 왔다. 나정이는 올 때마다 엄마, 아빠와 함께 왔다. 엄마 뱃속에서 사 오개월쯤 된 나정이가 처음 왔을 때에는 너무 어려서 나는 알아보 지 못했다. 다만 사회적으로 성공한 너무나 자신있어 보이는 아빠, 그러기에 부처님의 어느 가르침도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는, 결코 빈 공간을 찾을 수 없었던 스스로 가득한 아버지 와 상대적으로 무척 겸손했던 엄마를 기억한다.

특히 사십이 넘어서 첫 아이를 가진 나정이 엄마는 단 한 번의 만남으로도 마음에 남을 정 도로 걱정스러웠다. 그리고 다시 몇 달이 지나서 부처님 오신 날에 엄마 뱃속에서 거의 9개 월이 된 나정이가 다시 왔을 때 나는 어딘가 모르게 깊은 연민심이 일어났던 그의 엄마를 기억한다.

그래서 나정이 엄마가 애기부처님께 목욕물을 부어드리던 순간에는 특별한 마음으로 부처님 의 가피를 빌었다. 그리고는 바빴던 절 일고 한국을 다녀오는 일로 까마득히 나정이를 잊어 버렸다.

오늘 한 달이 갓 지난 나정이가 다시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난번의 아빠와는 확실히 다 른 아빠와 엄마를 모시고 왔다. 만남의 시작에서부터 마지막까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 어서 자신을 대학의 교수직까지 이끌었던 지식의 머리만 있었을 뿐 가슴이 닫혀져 만남이 만남이 아니었던 지난 번의 아빠와는 달랐다.

행여나 잘못될까 조심스럽게 나정이를 받아드는데 "나정이는 좋겠다. 스님이 안아줘서 복을 받을 거다."는 그의 모습은 조금도 가식이 없어보였다. 문구 하나, 단어 하나에 매여 따지고 따지던 지난번의 교수님은 어디로 가셨는지. 대답을 듣고자 하는 순수한 궁금증에서 묻는 질문이 아니라 아예 논리성이 떨어진다고 단정하고, 아니면 적어도 가르치는 자의 상대적 무지를 무의식적으로 전제하고 출발하던 그의 머리는어디로 가셨는지. 한 때는 교회의 장로 님 경력까지 있노라던 그가 오늘은 부처님께 저을 하는 모습도, 공양을 하는 모습도 모든 것이 달라보였다. 그는 더 이상 말로 하는 불교공부에는 관심이 없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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