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본 것을 그리는 것입니다” - 윌리엄 터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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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본 것을 그리는 것입니다” - 윌리엄 터너
  • 보일 스님
  • 승인 2024.05.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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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에서 찾은 사성제 이야기
윌리엄 터너의 <자화상>(1798~1799), 영국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 소장

화가는 눈에 들어온 세상을 그리는 것일까, 아니면 마음에서 떠올린 세상을 그리는 것일까. 다시 말해 사람이 세상을 본다는 것은 입력일까, 출력일까. 사람들은 보통 사물을 볼 때, 대상 사물이 우리의 인식 작용과는 무관하게 존재하고 눈을 통해 들어 온 시각 정보를 그 실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교의 유식(唯識) 전통에서는 이와는 반대로 보이는 것은 실재가 아니고, 인간의 ‘식(識)’의 작용일 뿐이라고 본다. 여기서 ‘식’은 우리 마음속의 인식 작용인 ‘심식(心識)’을 말한다. 즉 인식 대상은 마음의 작용에 의해 투사된 것이라고 본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가 본다는 것은 일종의 마음 출력 작용인 셈이다. 즉 주관적 마음 상태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 밖 세상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마음속의 인식 작용과 마음 밖의 대상 사물이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자각을 일깨운다. 사물을 묘사한 예술 작품 또한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주관적으로 달리 해석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수 없이 재해석되는 과정에서 새로움이 끊임없이 발견된다. 여기서 우리가 바라보는 대상 사물의 색채는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보는 자의 시선과 관계성 속에서 색채 현상이 나타난다. 결국 마음을 벗어나 물질이든 정신이든 색채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대방광불화엄경』 「야마천궁게찬품(夜摩天宮偈讚品)」에는 이런 게송이 나온다. “마음은 화가와 같아서 모든 세간을 그려 내나니. 오온이 마음 따라 생기어서 무슨 법이나 못 짓는 것 없도다(무비 역, 心如工畵師 能畵諸世間 五蘊悉從生 無法而不造).” 그림은 물에 비친 영상처럼 세상의 사물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대상 사물이 만나서 빚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물이나 풍광을 과학적 사실에 근접한 모습 그대로 재현하기에 몰두했던 이전 전통을 거부하고, 대상 사물과 보는 눈 사이의 연기(緣起)적 관계 속에서 색채를 포착하고 표현한 예술가들, 그 중심에 윌리엄 터너가 있다.   

 

“영국 문학에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있다면 
영국 풍경화에는 윌리엄 터너가 있다”

- 영국 내셔널 갤러리 기획전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는 영국 근대 미술의 아버지이자 국민 작가로서 현재까지도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로 추앙받는다. 

윌리엄 터너는 1775년 런던 템스강의 코벤트가든에서 태어난다. 이발사인 아버지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다. 부유한 가정 형편은 아니었지만, 유년 시절부터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고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 아버지는 아들을 자랑스러워했으며 이발소에 터너의 그림을 자랑스럽게 걸어두고 판매를 할 정도였다. 터너는 런던 교외에 사는 삼촌 집에 머물게 되면서 매혹적인 자연의 풍광에 주목하게 됐고, 이때 습작한 수많은 풍경스케치가 훗날 풍경화 하면 터너를 떠올리게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 워낙 재능이 출중했기 때문에 14살 때 이미 당시 최고 권위인 왕립미술원에 입학해서 27살 때 정회원으로 선출되기까지 그야말로 일찍부터 그 천재성을 인정받는다. 터너는 정회원이 되면서 동시에 왕립미술원에 원근법 교수로 부임한다. 

작품 <자화상>(1798)은 터너의 나이 23세에 그려진 것으로, 당시의 터너가 얼마나 자신만만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특히 그의 반짝이는 눈동자에서 천재의 총기와 반항적인 면모를 읽을 수 있다. 1802년 터너가 프랑스로 건너가 작품 활동을 시작했을 초기만 하더라도 고전적 색채의 풍경화로 주목받았지만, 자연주의를 넘어서서 점차 낭만주의로 경도된다. 1819년 터너는 이탈리아 여행 과정에서도 작업을 이어갔는데, 그 그림들 속에서 구도는 이전보다 더욱 단순해지면서도 빛이 만들어내는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사물의 색채 표현에 깊이를 더해 가면서 대가로서 면모를 드러낸다. 

1851년 터너는 런던의 한 여인숙에서 눈을 감기까지 수많은 작품을 남긴다. 대표작으로는 터너 자신도 최고작으로 인정한 <해체를 위해 마지막 정박지로 예인되는 전함 테메레르>(1838)를 들 수 있고 그 외에도 <창백한 말 위의 죽음>(1829), <수장(水葬)(Peace:Burial at Sea)>(1843), <노예선>(1840), <비, 증기, 그리고 속도-대 서부 철도>(1844), 등등 수많은 작품을 남긴다. 

 

“그러므로 빛은 색입니다” 

- 윌리엄 터너

 

터너, <눈보라: 항구를 떠나가는 증기선>(1842),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 소장

<눈보라: 항구를 떠나가는 증기선>(1842)은 처음 보는 사람이더라도 누구나 거센 폭풍이나 눈보라를 표현한 그림이라는 것쯤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림 한 장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이토록 강하고 거대할 줄이야. 감탄을 자아내기도 전에 급박한 긴장감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구체적인 윤곽을 그려내는 선이나 형상도 알아보기 어렵다. 다만 거센 소용돌이 속에서 하늘과 바다의 경계는 이미 사라졌고 곳곳에 긁힌 듯 이어진 하얀 점들이 눈보라가 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나마 그림 중앙에 어렴풋이 보이는 깃발 형상을 통해 격랑이 이는 바다에 조그만 배가 위태롭게 휘청거리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정상적인 항해를 장담할 수 없는 긴박한 상황이다. 증기선이 뱉어낸 연기마저 하늘에서 요동치면서 바닷물 표면에 비친 모습이 얼음장처럼 차갑고 시리다. 거센 폭풍과 파도 그리고 눈보라는 모든 사물을 집어삼키고 지워버리고 있다. 

이 그림은 터너가 선원들에게 자신을 돛대에 묶어 달라고 부탁하고, 네 시간 동안이나 직접 눈보라를 마주하면서 자신의 눈에 비친 이 순간의 광경을 표현한 것이다. 눈보라와 파도가 얼굴을 때리고 눈동자로 파고들면서 눈을 바로 뜰 수 없을 정도로 휘몰아치는 그때, 터너가 바라본 세상이다. 대상을 얼마나 정확히 정교하게 묘사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순간 터너의 내면에서 느끼고 바라본 그대로의 모습에서 장엄과 경이를 느끼게 한다. 터너 말년인 77세에 그린 이 작품은, 젊은 시절 이후 점점 변화해온 화풍이 결국 어디까지 이르렀는지를 잘 보여준다. 세부적인 묘사가 과감히 생략된 자리에 빛이 색채가 되어 춤을 추듯 살아 움직인다. 

 

“터너가 있기 전까지는 런던에 안개는 없었다” 

- 오스카 와일드

 

터너, <비, 증기, 그리고 속도-대 서부 철도>(1844), 영국 내셔널 갤러리 소장

터너의 이러한 면모는 <비, 증기, 그리고 속도-대서부 철도>(1844)에서도 잘 드러난다. 어린 시절을 보낸 템스강 강가를 가로지르던 증기기관차에 탔던 경험을 그대로 살린 그림이다. 일상적으로 런던의 대기를 채웠던 수분을 가득 품은 안개는 비와 증기, 증기기관차 사이의 공백을 채우고 있다. 안개는 비록 이 작품의 제목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사실상 주인공이다. 하늘색과 구름을 나타내는 하얀색, 강물의 빛깔, 철로, 기관차의 색채를 희뿌연 안개가 모두 빨아들였다가 노란색과 갈색으로 토해내고 있다. 

강가에 홀로 떠 있는 조각배 정도가 이 그림이 풍경화임을 인증하는 듯하다. <눈보라>에서 증기선의 깃발처럼 증기기관차의 검은 연통이 그나마 선명하고 뒤로 살짝 보이는 연기가 그 속도감을 더해 준다. 눈에 들어오는 순간 이내 사라져 버릴 증기기관차의 등장에 집중하고 포착할 뿐, 이 순간의 시간이나 공간의 논리적 묘사도 동시에 축소되거나 사라진다. 적어도 터너의 눈에는 이 순간 런던 대기의 움직임, 안개의 부피감과 질감은 이러했을 것이다.         

 

“윌리엄 터너의 작품은 우리에게 세상을 보는 새로운 방식을 알려준다.” 

- 존 러스킨(John Ruskin)

 

터너, <해체를 위해 마지막 정박지로 예인되는 전함 테메레르>(1838), 내셔널 갤러리 소장

 

그렇다고 해서 터너의 작품이 추상성만으로 일관한 것은 아니다. 이보다 젊은 시절 터너 자신이 가장 애착을 가졌던 <해체를 위해 마지막 정박지로 예인되는 전함 테메레르>(1838)에서는 선명하고 구체적인 묘사와 정교한 원근법이 조화를 이루면서 걸작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터너는 어느 날 우연히 과거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나폴레옹의 전함들을 물리치는 빛나는 공을 세운 전함 테메레르가 선박 해체장으로 예인돼 가는 장면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는다. 마치 한때 전장을 누비다 백발이 다 된 노병이 지팡이를 짚고 겨우 걸어가듯, 승리와 영광의 상징이었던 전함 테메레르가 회색빛으로 변색해 예인선에 의지한 채 그 운명을 마감하려 한다. 이제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듯이, 지는 노을이 향수를 자극하는 동시에 증기선인 예인선은 전함보다 작지만 세차게 물살을 헤치고 나아가는 모습이 또렷하게 물 표면에 비치고 있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이 한 장면에 모두 담겨 있다. 

터너는 이 작품에 대해 “돈을 주거나 혹은 부탁한다 해도 내가 사랑하는 이 그림을 누구에게도 빌려주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애착을 보였고, 실제로도 팔지 않았다. 물론 터너가 매각하지 않은 것은 이 작품만이 아니다. 터너는 생전에 그의 작품들을 영국 정부에 기부했고 현재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들을 소장 전시하고 있다. 윌리엄 터너는 그렇게 마지막까지 큰 울림을 남겼고, 전통을 과감히 넘어서면서 ‘세상을 보는 새로운 방식’을 알려준 화가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자욱한 안개 사이로 런던 템스강 강가에 윌리엄 터너가 걷고 있다. <자화상>에 나오는 모습 그대로 터너가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건넨다. 

“지금 무엇을 보고 있나요? 
보이는 것은 대상입니까, 
아니면 당신의 마음입니까?
그 어느 쪽도 아니라면 둘 다인가요?”   

 

보일 스님
해인사로 출가해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 서울대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박사를 수료했다. 현재 해인사승가대학에서 경전과 논서를 강의하며, 예술과 인공지능을 주제로 붓다의 지혜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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