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근 에세이] 고독에는 백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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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 에세이] 고독에는 백신이 없다
  • 불광미디어
  • 승인 2020.11.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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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하늘은 높고 산은 붉다. 가을은 때깔이 아무리 고와도 그 속에 외로움이 묻어 있다. 바람은 우리를 자꾸 외딴곳으로 끌고 간다. 가을밤 풀벌레 소리는 잊힌 이름과 얼굴들을 불러온다. 문득 혼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내가 누군가를 버렸듯이 누군가도 나를 버렸을 것이다.      

 

| 버림받음보다 슬픈 일

누군가에게 버림받음은 슬프다. 그보다 더 슬픈 일은 누군가에게 잊힘이다. 미움보다 잊힘이 더 아프다. 미움 속에는 아직 ‘내’가 남아있다. 누군가가 나를 미워하는 것은 그의 생각 속에 내가 아직 지워지지 않음이다. 나의 체취와 체온이 남아있음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생각 속에서 내가 지워졌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사람들은 잊히지 않으려 몸부림을 친다. 그런데도 우리는 모두 잊혀 간다. 보통 사람도 그럴진대 대중의 갈채와 환호 속에 묻혀 본 사람들은 어떨 것인가. 아마도 뼛속까지 시릴 것이다. 만인의 연인이었던 배우, 잘나가던 정치인, 스포츠 스타, 그리고 각계각층의 우상들…. 그들의 울창한 명성도 이내 세월의 먹이가 된다. 명성이 크고 우람할수록 외로움은 길고 짙다. 외로움이 질병을 부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의 스티븐 콜 박사는 외로운 사람에게는 바이러스와 박테리아의 침입을 막는 백혈구가 덜 생성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외로운 사람’의 기준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몰라도 따지고 보면 우리는 외로운 사람들이다. 고독은 늘 곁에 있다. 현대인은 유독 고독에 약하다. 서로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광장이 점차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욱 스마트폰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고독사(孤獨死)라는 말이 유통되고 있다. 아직 개념이 정확하지 않지만 대략 ‘사회와 단절된 채 홀로 살던 사람이 자신만의 공간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아무도 찾지 않으니 고독사의 주검은 오래 방치되기 일쑤다. 고독은 연령과 직업과 출신을 가리지 않고 스며든다. 한때 잘나갔던 이들이 더 위험하다. 홀로 저승길로 떠나는 사람의 최후는 얼마나 고독할까. 

요즘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죽은 자들을 날마다 집계해서 발표한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격리되어 고독사한 사람들은 헤아리지 않는다. 집계할 방법도 없다. 아마 바이러스보다 고독에 감염되어 세상을 뜨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방안에 유폐된 이들이 바깥출입까지 못한다면 고독은 영혼까지 갉아먹을 것이다. 

 

| 주검 옆에서 치맥 먹는 사람들

정작 이웃들은 그 실상을 알지 못한다.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아주 먼 나라의 소식에 환호하고 탄식하지만, 이웃에게는 관심이 없다. 당장 옆 동네에 불이 났어도 대중매체가 전해줘야만 비로소 반응하는 시대다. 곁에 있어도 모두 멀리 있는 존재들이다. 곁에 주검이 있음에도 도시인들은 주식시세를 살피고, 스포츠를 즐기고, 치맥을 배달시켜 먹는다. 도시에는 보고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제법 크다 싶은 마을에는 불효자, 광인(狂人), 장애인이 있었다. 마을은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다스리고 품었다. 불효자에게 부모 대신 마을 사람들이 매를 들었고, 미친 사람을 돌아가며 거뒀고, 장애인에게는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 누구도 내치지 않았다. 손과 발이 불편한 채로 평생을 얻어먹어도 오래 살았다. 혈연과 지연 공동체가 곧 약자들의 울타리였다.

세태와 인심이 바뀌었다. 우리는 지금 빛처럼 빠른 속도로 어디론가 실려 가고 있다. 낙오된 사람들의 절망과 아픔은 아무도 챙겨주지 않아서 그대로 버려지고 있다. 집을 나온 젊은이들, 부모 잃은 아이들, 자식 없는 노인들, 식구들이 떠난 가장들이 무관심 속에 떠돌고 있다. 삶의 반대편에는 죽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무관심이 도사리고 있다. 혼자 산다는 것은 시간이 혼자에게만 쏟아짐이다. 그 시간의 무게를 분산시키지 못하고 사회적 외톨이가 되어가는 사람들에게 고독은 치명적이다. 고독사는 이제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사람들이 함부로 버려지고 있다. ‘인간의 최후’가 갈수록 가벼워지고 있다. 저들을 버리고, 저들의 주검을 방치하고 우리는 어디로 몰려가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디에 내릴 것인가. 오늘도 누군가 홀로 울고 있을 것이다.

바이러스 습격에 가을밤 불빛이 외로워졌다. 가을은 깊어가고 문득 사람이 그립다. 누군가에 안부를 전하고 싶다. 누군가의 당신이 되고 싶다. 그의 꿈속에 들어가 잠들고 싶다. 찬 바람이 불면 감기보다 고독을 조심해야 할 것 같다. 고독에는 그 어떤 백신도 없다.

 

김택근
시인, 작가.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오랜 기간 기자로 활동했다. 경향신문 문화부장, 종합편집장, 경향닷컴 사장,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1983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용성 평전』 『성철 평전』 『새벽, 김대중 평전』 『강아지똥별, 권정생 이야기』 『뿔난 그리움』 『벌거벗은 수박도둑』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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