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월간불광 특집
[내 집 내 부처님] 우리 집에 부처님이 계십니다[특집] 우리 집에 부처님이 계십니다

내 집 내 부처님

“가정에서 부처님을 모시고 염불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부처님 존상은 사가에 모시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하니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1980년대, 한 재가불자가 광덕 스님에게 물어본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2017년인 오늘날도 여전히 온라인 포털사이트 지식코너에서 검색되고 있습니다. 12월호 불광, 불자로서 부처님 존상을 모시는 일을 권장하려고 합니다. 생활공간에 불상을 모시는 것은 자신이 부처님의 제자라는 것을 잊지 않게 합니다. 그렇다면 생활공간에 어떻게 부처님을 모셔오면 좋을까요. 가정집, 일터에서 부처님은 어떻게 자리하고 계시면 될까요. 우리 집에 모신 부처님을 소개합니다.

01    우리 집에 부처님이 계십니다  유윤정
02    우리 곁에는 어떤 부처님이 계실까?  유근자
03    거실에 부처님이 편안히 앉아계신다면?    유윤정
04    1가 1불, 우리 집 부처님  유윤정

 

우리 집에 부처님이 계십니다
 

“가정에서 부처님을 모시고 염불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부처님 존상은 사가에 모시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하니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1987년에 출판한 『삶의 빛을 찾아』(광덕 스님 지음, 불광출판사)에 실린 질문이다. 1980년대 당시 재가불자가 순수불교, 행원불교, 실천불교운동으로 한국불교의 현대화를 주도한 광덕 스님에게 물었다. 이 질문은 2017년인 오늘도 여전히 온라인 포털사이트 지식코너에 검색되고 있다.

사진:최배문

 

|    불자들의 집에 불상이 없는 이유?

이 질문에 광덕 스님은 이렇게 답했다.

“부처님은 원래 처소를 초월하고 유무를 초월하신 영원히 현재하신 진리이며 법성신입니다. 그러기에 부처님을 아무도 멀리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을 멀리하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언제나 부처님과 함께 있습니다. 부처님 존상을 따로 모시는 것은 우리의 의식에서 자기 본분 생명인 부처님을 잊고 있기 때문에 부처님을 생각하고 본분 생명을 깨닫기 위해서입니다. … 자기 본분 생명인 부처님을 잊고 사는 사람에게 가장 쉽게 부처님을 보고 진리 광명을 드러나게 하는 방법은 부처님 존상을 대하는 일입니다. 형상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글자이든 다 좋습니다. 사가에 부처님 모시는 것이 안 좋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오지 않나 생각됩니다. 우리는 가정생활을 하면서 허물도 많이 짓고, 부정한 일을 다루기도 합니다. 부처님 존상을 모셔 놓고 허물을 범하면 벌을 받을까 걱정되고 그래서 조심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부처님 존상을 모시지 않았다고 해서 부처님이 못 보시거나 못 듣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우리들보다 너무나 밝으셔서 우리 자신보다 너무나 잘 아십니다. 존상을 모시고 안 모시고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너무나 자비로우시고 자상하십니다. 미욱한 우리들을 항상 너그럽게 살펴주시고 우리 편이 되어서 눈물, 웃음을 지으십니다. 결코 우리를 감시하고 비판하시고 벌을 내리시는 부처님은 아닙니다. 할머니보다도 더 인자하신 부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부처님 못 모실 이유가 없습니다. 사진이든 존상이든 부처님 상을 모셔 수행하는 것이 좋겠지요.”

광덕 스님은 부처님 존상을 조성해 모실 때는 반드시 점안작법을 권했다. 점안작법은 계덕戒德을 가지신 스님들이 의식절차에 따라 여법하게 하면 된다. 계덕과 법력은 함께 통하기에 특별히 법력 있는 스님을 선별해 모실 필요는 없다고 했다. 점안작법을 하지 못하고 모셨을 때에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간에서 흔히 말하기를 점안을 하지 않으면 잡신이 붙어 그 불상이 사불邪佛이 된다고 하는 말이 있으나, 사진을 모시든 그림을 모시든 부처님은 본래 상이 없는 도리를 믿는다면 그런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일심본무상一心本無相이고 법신은 자취가 없다는 것을 깊이 믿으시고 부처님 존상 앞에서 일심 수행하시기를 권합니다.”

 

|    가정 불단에서 예불의식과 공양을 행하는 방법

“사랑하거나 존경하는 사람의 사진을 가까이 놓고 그를 생각하는 것처럼, 집이나 일터에 두고 예배하는 마음은 당연하다. 불상은 불자들이 항상 가까이 모셔야 할 신앙의 대상이다. 부처님 모습을 집안에 둔다면 언제나 그분의 말씀을 되새기고, 자비한 마음을 배울 수 있으며, 부처님을 닮아가는 행동을 연습하게 된다.” 

전 송광사 율원장 도일 스님은 가정에서 불상을 모시는 일은 자신이 부처님의 제자라는 것을 잊지 않게 해주는 방편이며, 불자로서의 자긍심을 키우고 보살심을 키우는 일이라 했다. 

- 집에 불단을 조성하려다, 스님이 집에 불상을 모시지 말라 하여 모시지 않는 경우들도 있다고 합니다. 

“일본, 중국, 대만, 티베트, 인도 등 해외 불자들은 대부분 가정에 불단을 조성해 불제자로서의 정체성을 되새기고 신심을 고양시킵니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터부시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국보, 고려시대, 신라시대 손가락 크기의 부처님은 탑에서 나온 불상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몸에 지녔거나 집에 모셨던 불상입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숭유억불정책 때문에 불교가 민간에서 멀어지게 되었고, 개화기 이후에는 기독교의 영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단도직입으로 이야기해서 스님들의 지식이 부족해서입니다.
가정에 부처 불佛 자 글씨를 붙여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처님 말씀 구절을 표구해놓은 집도 있습니다. 부처님을 글자로서, 법으로서 모신 경우입니다. 법을 걸어놓는다는 것은 부처님 형상을 모시는 행위와 같습니다. 글자는 걸어도 형상을 모시면 안 된다는 이야기는 이율배반입니다. 부처님 말씀과 존안을 가까이하는 것이 친근해야 부처님 말씀과 더욱 가깝게 됩니다. 마음은 불상이 없을 때보다 눈앞에 보일 때 더 잘 일어납니다. 예불도 거창하게 할 필요 없습니다.”

- 예불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누구든지 세수는 합니다. 세수를 하고 부처님 바라보면서, 삼배를 올려도 되고 반배를 올려도 됩니다. 그리고 책상 앞에 앉아서 경전 한 구절, 하루에 2~3줄을 읽는 것, 그거면 됩니다. 1분도 안 걸립니다. 그것이 곧 예배고 공양하는 것입니다. 짧게 한다고 해서 신심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거창한 의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 행위가 중요합니다.”

- 공양은 언제 올리면 되는지요.

“예불을 하고 공양을 올리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인가요. 예불 올리는 이유는 부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향상을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은 착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부처님께 예불을 드리니 부처님이 내게 가피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아침에 일어나 부처님 가르침 한 구절 잘 읽고, 일터에 나가서, 차 한 잔 마시면서 오늘 읽은 부처님 말씀을 가슴에 잘 새겨보는 것이 진짜 공양이고 명상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 읽은 구절에 ‘자비를 베풀어라,’ 하는 구절이 있다면 자비에 대해서 생각하십시오. 명상은 폼 잡고 하는 것이 아니라 1분이라도 깊이 생각해보는 것이 명상입니다. 경전 한 구절이 마음에 새겨지면 그렇게 행동하게 됩니다.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곧 불자입니다. 생활에 도움이 안 되는 예불과 명상은 아무 필요 없습니다.”

 

|    가정 불단을 조성하는 방법

집안에 부처님을 어떻게 모셔야 하며, 불상을 모실 때 점안의식 등은 어떻게 행해야 할까. 

전통불복장및점안의식보존회장 경암 스님은 원불願佛의 개념을 잘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원불을 모신다고 한다면 절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지장보살, 관세음보살 등을 천불, 만불 모시는 것을 떠올립니다. 원불은 나의 서원불이라는 개념입니다. 부처님에게 ‘~해주세요.’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하겠다, 불보살님의 길을 따라 걷겠다.’고 결심하는 원을 세우는 것입니다. 서원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예를 들어 ‘대용맹력을 보이신 석가모니 부처님처럼 대정진심을 가지겠다.’ 하는 마음이 든다면 석가모니 부처님을 원불로 삼습니다. 대자대비 관세음보살처럼 살겠다는 발원을 하면 관세음보살이 원불입니다. 지장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등 서원하는 바가 다릅니다. 원력을 세우고서 원불을 모시는 것입니다. 부처님을 집에 모시며 원력을 상기하는 일은 아주 적극적인 행동입니다.”

- 재가자가 집에 불상을 모실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불상을 모시는 방법과 의미는 『조상경』에 있지만, 재가불자 집에 모실 때 어떻게 하는지는 따로 나와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조상경』의 이 문구를 잘 새겨야 합니다. ‘이치를 가지고 사물을 배대한다.’ 이치를 가지고 사물에 배대하는 것이지, 사물을 가지고 이치를 논하지 않는다는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복장에 들어가는 5곡穀, 5향香 등은 사물입니다. 이 사물은 어떤 의미로 넣는가. 5곡을 넣는 것은 보리심 종자를 심는다는 의미입니다. 보리심을 상징하는 것이 5곡입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5곡이 아니라 보리심입니다.”

- 재가불자들이 집에서 부처님을 모실 때 장엄은 어떻게 구성해야 합니까.

“집에 불단을 모실 때 장엄은 필수입니다. 장엄을 하지 않으면 차라리 모시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다고 장엄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장엄이란 온 가족이 바라볼 수 있는 정갈하고 깨끗한 장소를 고르는 것, 촛대와 향로를 올려 정돈하는 것, 청정수를 올릴 수 있는 다기를 놓고, 천을 깔고 좌복을 만들어 그 위에 부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꽃을 놓는 것도 장엄입니다. 쉬운 예로, 가족의 사진을 놓을 때도 예쁜 액자에 두었을 때 더 자주 보고 싶어집니다. 그와 같이 필요합니다. 장엄은 필수조건입니다.”

- 점안의식은 스님을 집에 모셔서 해야 합니까, 아니면 스님께 점안을 받고 오면 됩니까. 집에 모셔올 때 어떤 의례를 받으면 됩니까.

“이웃종교는 성물을 집에 두는 일이 당연시되어있습니다. 가톨릭 신자의 경우 집에 십자가와 마리아상을 두는데, 신자들은 십자가를 신부에게 가지고 가 ‘축성’이라는 의식을 받은 후 성물로써 집에 모십니다. 이처럼 불자는 불상을 가지고 가 점안식을 하면 됩니다. 점안식이라 하면 흔히 어렵게 생각하지만, 간단한 점안의식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점안식은 상을 성상으로서 모시는 의식이자 점검, 통과의례라 생각하면 됩니다. 점검과 통과란, 『조상경』에서는 ‘성상이 성스럽게 이뤄지지 못하고 성스럽지 못할 때는 모시지 마라.’라고 합니다. 불상이 32상 80종호에 맞지 않거나, 예를 들어, 폐비닐로 불상을 만들어놓고 모시겠다고 한다면 이게 예배대상으로 합당한가요? 이런 것들을 스님에게 점검 받는 것입니다.”

- 만일 점안의식을 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점안의식을 하지 못했다면 『금강경』이나 『법화경』을 함께 놓으면 됩니다. 『법화경』, 『금강경』에는 ‘이 경전이 있는 곳은 여래가 있는 것과 같다.’고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복장에 넣는 경전이기도 합니다. 불상이 작은 가정 불단의 경우 부처님 밑에 놓으면 됩니다.”

- 불상이 역할을 다하고 파손됐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상의 물질은 유한합니다. 모든 것은 파괴되고 사라집니다. 불상도 그러할 수 있습니다. 의식집에는 파불破佛의식이 있습니다. 불상의 봉안과 파송은 다른 것이 아니어서, 파불의식은 점안의식이나 조성의식 등에 준합니다. 옛 스님들은 불상을 파하는 경우 의식을 행한 후 땅에 묻거나 태우셨습니다. 법다운 절차를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불상을 모셨다가 모시지 못할 상황이 되면 스님과 상의하기를 바랍니다. 중생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 스님입니다. 스님들은 불상이 훼손되어 파불할 때, 죄가 없다는 걸 이야기해줘야 합니다.

한편, 불상을 너무 쉽게 모시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정성 없이 조성하거나 잡칠 한 부처님 말고, 제대로 만든 불상을 잘 선택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옛 어른들은 불상을 모실 적에 아무렇게 모시는 것이 아니라 어떤 나무를 사용했는지, 어떻게 칠했는지, 옻칠을 했는지 등을 굉장히 신경 쓰셨습니다. 오래도록 곁에서 모실 부처님이기 때문입니다.”                    

 

                          

유윤정  vac9136@hanmail.net

<저작권자 © 불광미디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윤정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