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구미의 금오산은 5세기에 아도화상이 지은 이름이다. 아도화상이 어느 날 이곳을 지나다가 저녁노을 속으로 황금빛 까마귀, 즉 태양 속에 산다는 금오(金烏)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태양의 정기를 받은 산이라 하여 부르게 됐다. 선산에서 보면 붓끝 같아서 ‘필봉(筆峰)’, 칠곡·인동에서 볼 적에 산릉선이 사람 얼굴 같다고 하여 ‘금오산 와불(臥佛)’이라 부른다. 다르게는 귀인이 관을 쓴 것 같아서 ‘귀봉(貴峰)’, 금릉·개령에서는 도적이 짐을 지고 내려오는 모습이라 하여 ‘적봉(賊峰)’ 등으로 불린다.
조선시대에는 ‘금오동학(金烏洞壑)’이라 불렸다. 금오산이 웅장한 기암괴석으로 된 절경이라는 뜻이다. 이 초서 글씨는 16세기 중엽에 고산 황기로가 쓴 것으로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등산로 150여m를 오르면 보이는 너럭바위에 새겨져 있다. 해동초성(海東草聖)으로 불린 고산은 “초서 필법이 신비롭고 기이해 마땅히 우리나라의 종장(宗匠)으로 삼는다”라고 근대 서예가 오세창이 평가한 인물이다. 금오산 정상에서 서남쪽에 있는 폭포 벅시소 주변의 암벽에는 신선이 사는 ‘금오동천(金烏洞天)’이란 글자도 남아 있다.
고려 후기부터 금오산은 황해도 해주의 북숭산(北崇山)과 함께 남숭산(南崇山)으로도 불렸다. 1342년 원나라 순황제가 북숭산 신광사를 그의 원찰로 지정해 중창할 무렵, 금오산을 남숭산이라 하여 짝을 이뤘다. 중국의 5대 명산 가운데 으뜸인 숭산에 비겨 손색이 없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야은 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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