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대의 석굴예술
중국에 있어 300년간에 절친 지루한 남북분열(南北分裂)의 시대를 끝맺고 새로운 통일국가를 이룩한 나라가 수(隋)이다. 그러나 3대(代) 38년의 짧은 치세(治世)에 그치는 비운(悲運)의 왕조(王朝)이다.
비록 정치적인 면에서는 단명(短命)했지만 불교미술사에 있어서는 잊을 수 없는 뚜렷한 자취를 남기고 있다. 절에서 자라 어린 시절부터 불교의 훈도(薰陶)를 깊게 받은 수문제(隋文帝)는 비교적 검소(儉素)한 생활을 하려고 애쓴 황제이지만 불교를 널리 펴기 위한 일에는 재화(財貨)를 아끼지 않았다. 거대한 사경(寫經) 조사(造寺)‧ 조탑(造塔) 등의 불사(佛事)를 일으키고 관리에게는 불교 보급을 공무(公務)로써 수행케 하기도 했다.
또한 황음(荒淫)과 사치(奢侈)로써 악명(惡名)이 높은 수양제(隋煬帝)도 불교를 독신(篤信)하는 데에는 아버지보다 더 했으니, 그의 집정 14년간에 〈조상(造像) 3천 8백 5십 구(驅)‧ 수리한 옛 불상의 수효가 십만일천 구(驅)〉라 한다.
이처럼 수왕조의 불교 창도정책(唱導政策)은 멀리 돈황에 까지 미처 막고굴(莫高窟)의 석굴사원 수(數)는 비약적인 증가(增加)와 장엄(莊嚴)이 이루어졌다. 현존하는 막고굴 가운데 수대(隋代)의 석굴은 합하여 70~80굴을 헤아리는 바, 이 숫자는 실로 앞서 200년간 이루어졌던 석굴 중에서 남아있는 굴의 총수(總數)의 배(倍)에 달하는 엄청난 수량이다.
월간불광 과월호는 로그인 후 전체(2021년 이후 특집기사 제외)열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