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광명으로 회향한 전법보살, 광덕 스님
상태바
부처님 광명으로 회향한 전법보살, 광덕 스님
  • 월조 효신 스님
  • 승인 2024.04.29 08: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근현대 스님들의 수행과 사상
월간 「불광」 창간인 광덕 스님

불법으로 인도한 병마

“스님께서는 도를 깨쳤는지요?”

“하하하, 지안 스님이라고 했는가? 왜, 내게 중노릇한 밥값 내라고? 글쎄, 중노릇하다 보니 마음이 훤‐히 밝아지는 순간을 느꼈다네. 스님도 중노릇 잘해서 한 번 느껴 보시게.”

젊은 스님의 건방진(?) 질문에 너그럽고 참 소탈하게 답을 하시는 금하 광덕(金河光德, 1927~1999) 스님이다. 극락암 경봉 스님께 인사드리러 갔을 때 일화로, ‘도를 깨쳤냐’는 당돌한 질문에 ‘불법을 만나니 마음이 환하게 밝아짐을 느꼈다’는 광덕 스님의 답변은 부처님의 광명이 바로 도(진리)임을 역설한 것이다. 

마음을 환하게 비추는 부처님 광명은 광덕 스님의 심장이 됐고, 그 은혜를 갚으려는 스님의 노력은 ‘월간 「불광」’의 창간과 불광사 창건을 통해 메마른 도심에 한국불교의 전법 터전을 개간했다. 재가불자 운동으로 생활불교를 뿌리내려 불법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광덕 스님을 불법으로 인도해 준 것은 몸에 깃든 병이었다. 스님의 출가와 전법은 당신이 밝혔듯이 어찌하다가 보니 삶의 방향이 그리 전개됐을 뿐, 처음부터 “법회를 만들어 한국불교의 잘못을 바로잡고 세계에 한국불교를 빛내는 새로운 선도자가 되도록 하리라” 하는 서원으로 행해진 것은 아니라 했다. 

스님이 불교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한국대학(현 서경대) 재학시절 건강 악화로 학업을 중단하게 됐을 때 한관섭 선생의 소개로 범어사 선방에 입문하면서다. “사내자식이 뭐가 되려면 참선 구경이라도 해야 한다”는 말에 속아 스님은 한 석 달쯤 선방 구경이나 하고 오려다 평생 먹물옷(승복)을 입고 살게 됐다고 너털웃음 치며 토로했다. 

출가 후에도 광덕 스님은 평생 병마에 시달렸고, 선방에서도 많은 고통을 겪었다. 

“어찌 된 일인지 어느 날 밥을 잘 먹고 잤는데, 아침에 일어났더니 창자에 구멍이 뚫려버렸어요. 그다음에 창자가 뚫려 수술한다고 그런 것이 창자만 끊은 게 아니라 엉뚱하게 위까지 잘라버렸습니다. 십이지장 잘라내고 그다음에는 몇 년 지나서 담낭을 또 잘라내 버렸어요. 그리고 그 밖에 몇 개 장기들을 함께 잘라버렸습니다…….”

스님의 회상은 듣는 것만으로도 끔찍할 정도로 고통스럽다. 그러나 이 무수한 고비들이 모두 불법으로 스님을 인도해 주는 ‘부처님의 큰 자비’였음을 알게 됐다고 역설했다. 스님은 몸에 여러 병을 만나면서 “내가 노력하고 내가 선택하고 내가 결단해서 내일을 개척해 가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은혜와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인한 것이었고, 부처님 자비의 인도하심이니, 부처님의 은덕으로 사는 것”임을 간절히 깨달았다고 한다. 

1967년 광덕 스님이 주지로 있던 봉은사에서 열린 수계식 기념사진. 사진 정중앙에 광덕 스님. 

 

부처님께 온전히 맡기는 기도

스님이 누누이 당부한 것은 ‘부처님 은덕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다. 그래서 “괴로울 때나 즐거울 때나 성공했을 때나 지금 실패한 듯이 보이거나 어느 때라도 잘 되어 가는 길이고, ‘부처님의 공덕’으로 지금 되어 간다”는 확신을 가지도록 당부한다. 김 씨의 아들에게는 김 씨의 피가 흐르듯, 부처님 자손에게는 부처의 피[佛性]가 흐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복을 구하는 자는 이것을 먼저 믿어야 하는데, 믿는 것이 현재에 나타나기 때문이라 한다. 기도성취 과정도 이와 같다고 한다. 스님은 기도란 전적으로 부처님을 온전히 믿고 맡기는 것임을 강조한다. 

그 예로 스님과 함께 지냈던 어느 부부의 기도성취 일화를 들었다.

1953년 겨울, 범어사 뒷산 미륵암에서 스님이 용맹정진을 하고 있을 때 한 달 반 가까이 함께 지내면서 기도하던 부부가 있었다. 남편이 병이 나서 병원에 다녔으나 차도가 없고 집안 살림도 바닥이 나자 ‘세상 법으로 안 되면 부처님께 가야 한다’는 마지막 선택으로 절에 왔다고 한다. 

부인은 미륵암에 올라가서 며칠 불철주야 염불하고 절하며 기도했는데, 그 가피로 위중했던 남편의 병이 나았다. 건강을 되찾은 남편은 절에서 열심히 독경했고, 집안의 어려운 사정도 다 극복됐다고 한다. 부인은 매사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가져 얼굴도 늘 감사한 표정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언제나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하며, 밝은 모습으로 사람을 대하고, 그 추운 겨울날에도 매일 절 구석구석을 깨끗이 청소하고 염불하며 기도했다. 스님을 뵐 때도 “스님, 감사합니다”며 예의를 다하고, 입에서는 언제나 “관세음보살”이 떠나지 않았다. 

사시 마지도 직접 따로 지어 부처님께 올렸다. 생명에 대한 존중으로 땔감은 마른 나무만을 손으로 꺾어 준비했고, 논에 소를 들여보내 농사를 짓지 않고 괭이와 손으로 직접 김을 매서 지은 쌀로 밥을 지어 부처님께 올렸다. 죽어가는 자기 남편과 집안을 부처님이 구해주셨기 때문에, 그 감사한 마음을 담아 부처님께 자신이 할 수 있는 정성을 다한다고 했다. 

스님은 이 보살님의 경우처럼 “부처님의 은덕을 생각하는 사람은 감사의 마음으로 바뀌고, 마음이 바뀌면 환경이 바뀌는 것”이라고 한다. 불교도는 “자기 생명이 불심(佛心)이고 찬란한 환희가 넘치고 있음을 항상 생각해야 기도성취를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한다. 바른 믿음으로 인한 바른 기도는 언제나 상황을 바꾸고 반드시 기도는 성취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불교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법성(法性) 진리의 힘을 활용하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없다. 혹여 기도 중에 오히려 더 나쁘게 진행되는 것은 과거 어두운 마음의 축적이 소멸되는 일시적 현상으로, 마치 종기 뿌리가 삭아 나올 때 일시적으로 통증이 심해지는 일종의 명현 현상임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위)군 장병 수계식을 진행하는 광덕 스님.
(아래)생일을 맞은 어린이를 축하해 주는 광덕 스님.

 

‘반야바라밀’

스님의 병든 몸은 산중이 아닌 도심의 절에서 지내게 했고, 여기서 스님은 산중불교를 도심불교로 전환시키는 대작업을 이뤘다. 이 과정을 스님은 “부끄럽지만, 부처님의 자비와 방편으로 엉뚱하게 법회를 하게 되고 불광 형제들과 만나게 되었을 뿐”이라고 술회했다. 

불광법회의 시작은 1954년 부산 동구 좌천동 어느 가정집 사랑방 법회로 소급된다. 이후 1974년 재단법인 대각회 이사장에 스님이 취임하면서, 대각사(서울 종로구 봉익동)에서 불광회를 창립하고 그해 11월 1일 포교지 월간 「불광」 창간호를 발행했다. 나아가 1982년 서울 송파구 잠실에 불광사 건립과 1994년 불광원을 개원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한 전문적인 재가불자 교육을 펼쳤다. 

기존 포교 활동과 사뭇 다른 점은 법회에서 재가불자가 의식 집전을 담당하는 주역을 맡게 하는, 즉 주체성을 부여한 재가불자 운동이었다. 이는 재가자의 신행의식 고조와 자발적인 수행풍토를 조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한 사람 한 사람이 가는 곳마다 세상을 밝히는 법등을 전하는 주인공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스님은 늘 신도님이라는 호칭 대신 ‘우리 형제들, 불광 형제들’이라고 불렀다.

광덕 스님이 생각한 불법의 요체, 즉 부처님 최상의 가르침은 ‘반야바라밀’이었다. 스님은 “반야바라밀은 바로 부처님의 생명이며, 부처님의 생명이 바로 내 생명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나는 부처님의 진리를 나타내는 창구’라는 확신이 생기면서부터 반야바라밀에 대한 새로운 신앙이 커졌다”고 했다. 이 말은 스님의 불타관(佛陀觀)을 풀어낸 것으로, ‘부처님, 광명, 생명, 반야바라밀’ 네 단어가 바로 그 골자다. ‘반야바라밀’에 그 개념들이 모두 함축돼 있다. 스님은 “불교는 신행(실천행)이기 때문에 사회적 실천을 담보하지 않는 것은 부처님의 뜻이 아닌데, ‘반야바라밀’이 바로 실천행의 원리”라고 한다. 이 ‘반야바라밀’은 『반야심경』의 그것이다. 

스님은 『반야심경』을 “중생을 깨우치시려는 부처님의 의중을 가장 잘 담은 경전으로, 바라밀을 성취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이 의거해야 할 결정적 요전”이라 평했다. 그래서인가 광덕 스님께 패기 넘친 질문을 던진 그 스님도 『반야심경』을 좋아해 통도사에서 ‘반야’암을 창건, 후학을 지도하고 있다. 

불교도의 근원 목적인 성불의 자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방법도 바로 ‘반야바라밀에 의지하는 것’이라 설했다. 스님은 반야바라밀에 의지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보현보살의 10가지 서원을 제시했다. “보현보살이 마하반야바라밀의 개현자이며 실천자이기 때문에 그 행을 통해 우리는 부처님의 무량공덕 세계를 열 수 있다”고 스님은 설명한다. 

광덕 스님의 재가불교운동 본질은 스님이 밝혔듯 반야바라밀로 향하는 전법에 있다. 그것은 “전법이 곧 믿음이며, 전법이 최상의 수행”이기 때문이라 한다. 여기에 핵심이 있다. 전법과 수행 그리고 깨침은 한데 뭉쳐 있는 것이다. 따로 분리돼 있지 않다. 법을 모르면 법등을 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법의 시작은, 수행의 시작은, 깨침의 시작은 대자대비한 부처님의 은덕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이라 한다. 이처럼 쉬운 깨달음과 수행이 어디 있는가? 이 순간, 부처님 은혜를 떠올리면 우리 마음은 부처님의 광명으로 가득 빛나게 되리라. 오직 주는 사랑인 대자대비한 부처님의 그 깊은 은덕에 감사드립니다. 

 

월조 효신 스님
동국대 강사, 철학과 국어학 그리고 불교를 전공했으며 인문학을 통한 경전 풀어쓰기에 관심이 많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