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10시 무렵까지 화폭을 마주하였습니다. 담묵으로 소품 감나무 시리즈 여남은 장을 그리고 나서 방 안에 늘어놓고 살펴보며 감상하다가 잠든 시간은 자정이 지난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전화 벨 소리에 잠이 깨었습니다. 해제 산철 결재 선방에 들어갔다가 정진을 마치고 온 스님의 전화.
나는 세수도 하지 않은 채 다시 붓을 잡고 방문을 열었습니다. 햇살이 눈이 부십니다. 감나무 붉은 잎사귀가 투명합니다. 홍시가 덜 된 붉은 감이 윤기를 냅니다. 문득 무더기로 열린 감가지가 오래 눈길을 끕니다. ‘옳지 이 걸 화폭에 옮겨봐야지.’
나는 그림을 그릴 때에 내멋대로입니다. 붓을 쥐고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립니다. 누가 잘 그렸다고 해도 좋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애초 평가를 받기 위해 감나무 가지를 그린 게 아니었으니까요.
감 무게에 축 늘어진 감나무. 지난 여름 지독한 무더위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감을 열리게 하였을까. 신기하기만 합니다. 너무 많이 열렸습니다. ‘너무’란 말이 허투루 쓰여지는 요즘 젊은 세대의 ‘너무’와는 다릅니다. 좋으면 좋았지 왜 ‘너무’ 좋을까요. 음식 맛도 그렇습니다. 놀이도 그렇습니다. 너무 맛있고 너무 재밌다는 표현은 ‘너무’의 본 뜻과 거리가 멉니다. 지나치게 맛있고 지나치게 재밌다는 표현과 같습니다.
결국 너무 많이 열린 감나무 가지는 찢겨서 지붕 위에 내려 앉고 말았습니다. 욕심많은 감나무, 찢긴 감나무 가지는 작은 줄기가 아니고 가운데 큰 기둥 두 가지였기 때문에 그 아픔은 더욱 큽니다.
열흘 전인가 싶습니다. 해인사에서 지내는 한 스님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그 대화 가운데 할 말이 있었으나 그만 둔 적이 있습니다.
“아니, 스님 왜 서울에서 그리 오래 지내세요?”
“서대문 형무소라서 그렇지요.”
“하하하. 그러고 보니 제가 제일 좋은데서 지내고 있군요.”
좋은 데라, 좋은 데. 그렇습니다. 좋은 데란 어떤 곳을 말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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