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없는 수제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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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 없는 수제비집
  • 관리자
  • 승인 2007.1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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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처럼 구름처럼

우습지만 웃고만 있을 일이 아닙니다. 제가 머물고 있는 서대문 밖 언덕받이 동네는 광화문 한복판과 10분이면 버스로 오갈 수 있는 거리인데도 아주 외딴 마을이나 다름없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후진 골목에 한 움막집 할머니가 수제비를 만들어서 팔고 지낸다는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거지가 살고 있지나 않을까 생각하고 지나쳤습니다. 한평 남짓한 움막집은 그야말로 20세게 말 서울의 한 골목 모습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허술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덕지덕지 누더기를 깁듯 양철 조각 등으로 매달아 겨우 밖의 눈을 막을 정도입니다. 문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 알아 보기가 힘듭니다.

“맛이 좋다.”

학생들이 움막집 안에서 음식을 먹으면서 떠드는 소리를 지나치다가 언뜻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 안에서 무엇을 먹으면서 맛이 좋다고 하는 것일까.

이윽고 문이 열리고 학생 두셋이 나왔습니다. 이때 들여다 본 움막집 안의 모습은 식당이었습니다.

“여기서 뭘 팔아요?”

내가 기웃하고 말을 꺼냈습니다.

머리칼이 몹시 흰 할머니가 대답하였습니다.

“스님한테는 안 팔아요.”

“그러니깐, 더 사먹고 싶은데.”

“웃스갯 말입니다. 수제비가 있어요.”

“가까운 데에 수제비 집이 있어서 좋군요. 제가 수제비를 참 좋아합니다.”

“잡수실 때는 언제든지 오세요.”

엊그제 저녁 무렵에는 기어이 움막집 수제비 맛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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