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쉬운 교리강좌] 중국 종파불교의 성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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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쉬운 교리강좌] 중국 종파불교의 성립
  • 해주스님
  • 승인 2007.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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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존 재세 당시인 근본불교시대에는 석존의 감화가 주로 갠지스 강 유역의 제국에 미치었다. 물론 부루나 존자나 가전연 존자를 위시하여 많은 제자들의 전도를 통해 인도 서부 등 여러 지역에도 부분적으로 불교가 유포되었기는 하다.

그런데 기원전 3세기경, 중인도 마우리아 왕조에 아쇼카 왕이 출현하여 전 인도을 통일하면서부터 상황은 크게 달라지게 되었다. 호불왕인 아쇼카왕의 적극적인 외호에 의해 불교는 인도전역뿐 아니라 외국에도 널리 전파되었던 것이다.

왕은 아들인 마힌다 장로와 딸 상가미타로 하여금 스리랑카에 불교를 전하게 하였음을 비롯하여 많은 전도사의 파견으로 불교를 일약 세계적인 종교가 되게하였다. 남쪽으로는 스리랑카, 북쪽으로는 히말라야 및 중앙 아시아, 동쪽으로는 미얀마, 그리고 서쪽으로는 멀리 그리스․이집트에까지 퍼지게 되었다.

그후 다시 2세기 전반에 서북 인도를 중심으로 하여 중앙 아시아에 걸쳐 광대한 영토를 점유한 대월지국 카니슈카 왕의 보호를 말미암아, 쟈바 등 동남아쪽으로도 확장되고 페르시아와 소아시아 방면으로 서점하였다. 그리고 이미 그 이전에 동점을 시작했던 불교는 더욱 세력을 얻어서 인도와 서역지방으로부터 활발하게 중국을 향하여 전래되었고 또 우리나라 일본 티벳 등 각국으로 유포되었다. 그리하여 동서양 각국에 불교가 널리 퍼지게 되었던 것이다. 근래에 와서는 구미 각국에도 선포되어 불교를 신봉하는 신도의 수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세계적인 성황을 이루고 있다.

중국에 불교가 전래되는 모습을 보면, 초기에는 인도불교 그대로가 아니고 서역지방에 전해져 있었던 서역불교가 전래된 것이었다. 중국불교 초전에 관해서는 10여종의 이설이 있다. 그 가운데서 ‘금인강정설(金人降庭說)’이 거의 정설로 인정되어 오고 있다. 후한 명제 영평10년(67)에 금인(金人)이 서방으로부터 큰 빛을 내면서 궁궐정원에 내리는 꿈을 꾸고 서방에 불교가 있음을 알게 된 명제는 서역으로 사신들을 보내어 불교를 구하게 하였다. 사신들은 중도에서 백마에 불상을 싣고 동행하던 가섭마등과 축법란을 만나서 함께 돌아오니 명제는 크게 기뻐하여 낙양 성문 밖에 백마사(白馬寺)를 짓고 거주하게 하였다.

그들은 이곳에서 경전을 역출하였는데 현존의 사십이장경이 곧 이때에 역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불교가 중국에 들어온 시기가 그보다 훨씬 앞섰다는 것은 상식화된 일이다.

전항 애제(B.C. 2)이전부터 주로 무역하던 상인들에 의하여 전해지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중국불교의 시작은 가섭마등보다 약 80년 후 (147)에 서역으로부터 중국에 온 안세고와 지루가참에 의한 경전의 역출로부터 잡고 있다.

중국불교 1900년 역사의 전반 900년은 범어불전의 번역과 연구의 시기였고, 그를 통한 교학의 발전이 후반 900년 동안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중국불교사에 있어서 불전의 한역과 출판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불교의 위대함은 이 불전의 번역과 출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불교에 있어서 전역에 종사한 사람도 수백 명을 헤아린다. 주로 역경에 종사하면서 경율론에 통달한 스님을 삼장(三藏)이라는 칭호를 붙여 존경하였다. 구마라습 삼장, 현장 삼장은 모두 그러한 의미로 주어진 칭호이다. 한역된 경율론의 불전은 동진도안(314-385)이 목록 종리중경목록(綜理衆經目錄)을 작성한 이래 계속 목록으로 정리되어졌다. 당의 개원시대에는 왕명에 의하여 대장경으로 정돈되어 목록이 만들어졌으며, 북송에 이르러 비로소 대장경의 출판을 보게 되었다.(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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