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예의 어머니 선화부인(善花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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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의 어머니 선화부인(善花부인)
  • 관리자
  • 승인 2007.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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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바이 만세, 여성불자 만세!

한국불교를 인문사상사 쪽에서 볼 때, 삽입되지 않는 위대한 고승으로는 묘청이나 궁예, 신돈등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원효 못지 않은 인물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불교내 자체에서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분들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역사책에서도 한결같이 이들을 요승이다 뭐다 해서 가르치고 있는데 이들 교과서가 역사를 완전히 잘못 전하고 있음을 우리는 한번 쯤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조상들이 역사를 왜곡했다 치면 적어도 우리는 다시는 그러한 것을 사실로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역사의 왜곡이란 역사를 잘못 기록하고 잘못 가르치는 것만이 아니라 잘못된 역사인 줄 알고도 시정하지 않으려는 것도 포함된다.

자, 묘청이 왜 요승인가. 궁예나 신돈이 어찌하여 요승이란 말인가. 고문헌 이조실록 등에 또는 김부식 같은 사대주의 사가의 기록 때문인가. 아니면 우리의 역사교과서에 그렇게 되어서인가. 통일신라 이후로 흥청거리고 거들먹거리던 소위 국사니 왕사니 하는 이들보다 궁예나 신돈 화상 등이 훨씬 자랑스럽고 위대하게 생각됨은 웬일인가.

작가 김성동 선생이 에세이라는 형식을 빌어 묘청, 궁예, 신돈과 같은 위대한 고승 등의 행적과 당시의 사회적 배경들을 바로 잡으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진정 역사학자들이 힘을 모아 왜곡된 부분을 바로 잡고 잘못된 교과서들을 아니, 심지어는 백과사전까지도 다시 간행하여야 할 것이다.

외세를 끌어들여 삼국을 통일한 김춘추니 김유신 같은 이는 영웅이다 뭐다 해서 추켜세우고 제 핏줄을 바로 찾고 제 잃어버린 강토를 수복하여 애썼던, 그리고 특히 남들은 형언할 수 없는 특권의식 속에서, 부리고 흥청거리던 그런 와중에서 경자유기전(耕者有基田)을 역설했던 궁예 화상이나 신돈 화상 등을 아직도 우리는 요승으로 치부해야 하는가. 왕건이나 이성계 같은 위정자들 때문에 옛 사가들은 설령 그렇게 기록했다손 치더라도 적어도 오늘날 우리들은 그러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궁예는 생몰연대가 분명치 않으니, 신라왕자로서 경명왕 2년(918)에 입적한 것으로 되어 있다. 잃어버린 고토를 수복하고 후고구려를 건국한 위대한 고승이자 성왕(聖王)이다. 정권의 분쟁 속에서 서자라는 이유 때문에 밀려나 세달사에서 축발수계하고 수행을 시작한다. 법명은 선종(善宗)이었다. 20여년의 수행 끝에 그는 단안을 내린다. 진정한 구제는 움직이는 것이다. 정체성으로 중생은 구원되지 않는다. 100%사는 것이다.

그는 30대 초반에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토호와 지배계급들의 착취에 허덕이는 민중을 구원해야 한다. 그의 사상은 오로지 평등이교 해방이며 자비였다. 특히나 외세를 업고 침략하여 와 무차별하게 당했던 조상들의 울분을 설욕하고 잃었던 옛 강토를 수복하려는 일념이었다.

그러나 그의 그러한 위대한 업적의 수행에는 서민들을 어루만지고 민중을 평등히 대우받으며 살게 하려는 보살심이 있었다. 그는 폭력을 싫어했다. 다만 평등한 이상국가만 실현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그였다. 그의 적은 토호들이었다. 수천 명의 노예를 거느리고 수만 평의 땅을 갖고 있던 기득권자들이었다. 그의 사상은 농사를 짓는 자에게 땅을 주어야 한다는 경자유기전 사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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