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이유
상태바
기도의 이유
  • 불광미디어
  • 승인 2024.05.17 15: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당신의 기도는 안녕하십니까?

 

기도의 이유
저작·역자 중현 정가 22,000원
출간일 2024-05-15 분야 불교
책정보

판형 신국판 변형 (140 × 225mm) | 368쪽

ISBN 979-11-93454-91-6 (03220)

구매사이트
교보문고
Yes24
인터파크
알라딘
책소개 위로

마음의 흔들림을 잠재우고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채우는 수행!

기도,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해마다 수능일이 가까워지면 전국의 큰 절마다 수능 백일기도 플래카드가 붙는다. 수능 전날까지 백일 간 매일 기도하며 자녀의 수능시험 결과가 잘 나오길 기원하는 것이다. 그뿐일까? 각 절의 달력을 보면 각종 기도 일정으로 빽빽하다. 해마다 한 번씩 진행되는 정초기도, 입춘 삼재기도, 우란분절 백중기도, 동지기도, 오백나한대재와 생전예수재. 달마다 올리는 신중기도, 관음기도, 칠성기도, 지장기도. 여기에 스님들이 매일 지키는 새벽예불과 저녁예불, 사시불공까지 더하면 절의 하루하루가 기도로 시작해 기도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다양한 기도가 존재할까? 각각의 기도는 누구에게, 무엇을 비는 것일까? 불교의 기도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기도와 무엇이 다를까? 절에서 하는 기도의 방법과 순서는 어떨까? 무엇보다도 가장 근본적으로, 왜 기도할까? 이러한 의문들에 명쾌한 답안을 주고자 증심사 주지 중현 스님이 펜을 들었다.

이 책은 불자들이 일상적인 신행생활을 습관적으로 하기보다 불교의 핵심사상에 입각해 체화(體化)하기를 바라는 저자의 간절한 바람으로 완성되었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다 보면, 나와 내 주변의 이익만을 위해 기도하던 순간을 뛰어넘어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흔들리는 마음을 잠재우고, 진정한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수행으로서의 기도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저자소개 위로

중현 스님

20대 내내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전념하였고, 30대에 프로그래머로 변신하여 고려대장경 전산화 작업에 참여했다. 1998년 송광사에서 범일 보성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뒤 봉암사, 송광사, 화엄사, 석종사 등 제방 선원에서 정진했다. 화순 용암사 주지와 〈월간 송광사〉 편집장을 지냈으며, 〈광주일보〉 등 일간지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등산 증심사 주지로 살며 유튜브 채널(증심사)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저서로 《길고양이의 법문》, 《불교를 안다는 것 불교를 한다는 것》이 있다.

목차 위로

머리말

1장 우리에게 기도가 필요한 이유

고통은 신호, 행복은 보상

불안은 어떻게 다스리는가

행복하게 사는 법

올바른 삶의 기준

2장 종교적 믿음과 불교의 믿음

믿음의 바탕

종교와 인간

올바로 알아야 제대로 믿는다

종교적 기도, 소통과 간청

불교의 믿음

불교의 기도, 염불

기도와 불공 그리고 예불

3장 『천수경』 해설

– 귀의, 참회, 발원은 기도의 전부

『천수경』의 특징

『천수경』의 구성

참회하는 이유

『천수경』의 순서를 다시 생각함

4장 불교의 기도와 수행

기도의 공덕과 가피

혼자서 기도하는 법

축원문, 제대로 알고 있나요?

행선축원이 담고 있는 교훈

5장 이런 기도 저런 기도

관음신앙: 관세음보살님과 관음재일의 의미

정토신앙: 극락왕생과 나무아미타불

미륵신앙: 요즘 절에서 미륵부처님을

잘 모시지 않는 이유

신중기도 해설

나한기도: 당신의 나한님은 누구십니까?

생전예수재란 무엇인가?

6장 불교와 민간신앙

민간신앙의 역사

칠성기도는 왜 하는가?

삼재기도: 부적은 희망이다

동지기도: 절에서 동지기도를 왜 할까?

불교와 기복신앙

상세소개 위로

삶을 바꾸는 기도의 모든 것!

‘실천하는 불교’를 강조하는 저자인 중현 스님은 바뀌어 가는 세상에 맞는 종교의 역할을 고민해왔다. “승복 입은 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멀리 있는 이들이 스스로 마음 건강을 챙길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고 최선을 다해 돕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는 스님은 그런 염원을 담아 불법(佛法)을 각자의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길잡이 책들을 펴왔다. 이번 신간 『기도의 이유』 또한 같은 마음으로 쓰였다. 사찰에서 행해지는 각종 기도와 불공들을 단지 기복신앙이 아닌 나를 다스리고 삶을 가꾸는 수행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따라서 기도를 하게 되는 근원적인 이유부터 불교 기도의 핵심 요소, 기도하거나 불공을 드릴 때 항상 독송하는 경전인 『천수경』 해설 등을 다룬다. 또한 관음기도·아미타기도·신중기도 등의 불교 기도는 물론, 민간 신앙과 불교가 융합되어 이제는 절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아 수행의 일부가 된 칠성기도, 산신기도 등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불안하고 마음을 다잡을 수 없을 때,

괴로움의 바다를 헤쳐가는 나를 위한 처방

인류의 역사에서 신과 기도는 빠질 수 없는 개념이다. 인간은 개인의 힘으로 이겨낼 수 없는 고난과 비극 앞에서 구원을 청했고,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불안 속에 자신을 이끌어 줄 전지적 절대자를 찾았다. 혼란한 시대일수록 종교와 민간 신앙이 성행한 데에는 까닭이 있다.

하지만 불교의 부처님은 절대자도 전지전능한 이도 아니다. 그는 다만 성실히 수행하고 깨달음을 얻어 자신의 지혜를 남들과 나눴다. 그렇기에 불자의 기도 역시 ‘무력한 나를 구해주세요’가 아닌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처럼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가 된다. “구원은 셀프(self)”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불교에서는 틀린 말이 아니다. 부처님도 보살님도 단지 우리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도록 중간 과정을 도울 뿐이다.

“몸이 고장나면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 약을 타면 되는데 마음에 병이 나면 그렇게 할 수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불안하고 마음을 다잡을 수 없을 때는 마음을 위해서 자가 치료를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기도이며 수행이다.”

- 본문 중에서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매일매일의 수행

중현 스님의 말에 따르면 “불교의 수행은 마음을 훈련하는 것이다. 체력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 헬스장에서 체력을 단련하듯, 마음을 단련하기 위해서는 매일 수행을 해야 한다. 수행이란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훈련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 크고 작은 근심 걱정으로 고통받고 흔들리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다. 이렇게 고해를 헤엄치는 마음을 다잡아 오직 현재에 머무르며 괴로움의 근원을 직시하는 수행을 해야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나간 과거는 후회스럽고, 알 수 없는 미래는 불안해 갖가지 생각으로 가득 찬 마음을 잠재워 고요한 상태와 느낌을 간직해야 한다. 이렇게 침묵한 상태를 신중하게 관찰하다 보면 ‘나’와 ‘나의 고통’에서 벗어나 세상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내게 다가온다. 이 모든 과정을 먼저 실행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수행의 한 방법이 바로 불교의 기도다.

책속으로 위로

부처님이 말씀하신 영원한 행복의 길은 보상으로서의 행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다. 대신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23p

일상에서 수행을 할 때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물러섬이 없는 목숨을 건 불퇴전(不退轉)의 수행이 아니다. 수행은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내 힘과 내 노력으로 만들어가겠다는 자세를 잃지 않는 것이다. 이 정도의 마음이라도 있으면 불자로서 충분히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 -64~65p

종교생활의 절반은 기도하고 절하고 예불하는 것이다. 자신이 믿는 존재 앞에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개인의 욕심을 줄이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 간다. 그러므로 종교생활에 있어서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은 나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종교를 이용하는 것이다. -80p

종교적 기도는 소통과 간청이라는 두 단어로 정의할 수 있다. 기도를 하려면 먼저 기도의 대상이 있어야 한다. 아무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고 기도할 수는 없다. 역사 이래로 인간은 기도와 함께해 왔고, 기도의 대상은 절대적인 존재인 신이었다. 신에게 소원을 들어 달라고 간청하거나 신과 영적으로 소통하고자 한 것이 인간에게 정착된 삶의 패턴이었다. -95p

부처님은 절대자가 아니다. 전지전능하지도 않다. 다만 매우 훌륭하고 뛰어난 수행자였다. 때문에 불교에서는 부처님에게 무언가를 해 달라고 간청하기보다 ‘나도 부처님처럼 살아야겠다’, ‘나도 부처님처럼 깨달아서 진정한 행복을 성취해야 되겠다’ 하는 존경의 마음을 표한다. 이것이 불교의 기도이다. -101~102p

믿기만 하면 극락에도 가고, 부귀영화를 손에 쥘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수행할 수 있는 힘이 믿음에서 나온다는 이야기다. 무엇을 믿어야 한다는 것인가? 부처님 말씀대로 하면 깨달음의 길을 갈 수 있다는 믿음이다. -106p

기도에 동참하는 행위는 작은 수고로움이지만 이 작은 수고로움으로 인해서 욕심내고 미워하고 슬퍼하고 화내고 괴로워하는 내 마음에 기대고 의지할 것이 생긴다. (…) 우리가 믿어야 하는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화내는 마음, 기뻐하는 마음, 슬퍼하는 마음, 괴로워하는 마음은 중생의 마음이다. 중생의 마음을 믿어서는 안 된다. 나의 어떤 마음을 믿어야 하는가? 법회에 이런저런 사정으로 못 간다면 유튜브를 통해서 동참하고, 때가 되면 빼먹지 않고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읽는 등, 귀찮지만 신행생활을 ‘하려고 하는’ 내 마음을 믿어야 한다. 그 마음이 보살의 마음이고, 그 마음이 관세음보살님의 마음이다. 그 순간만은 중생이 아니라 관세음보살님이다. 매 순간 찰나마다 변하는 것이 마음이라 하더라도 중생의 마음이 아니라 관세음보살님의 마음으로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108~109p

우리가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것은 우리도 이렇게 살겠다는 것이다. 열심히 수행하여 깨달아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중생들을 위해 내 삶을 온전히 다 바치겠다고 하는 것이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것의 참된 의미이다. -116p

“나는 수행자니까 열심히 수행해야지.” 부처님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태어났을 때부터 보장된 제왕의 길을 버리고 수행자의 길로 가야 하겠다고 결심하고, 수행에 그토록 매진한 것은 삶이 고통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부처님을 따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불자니까 기도를 하고, 불자니까 절에 나오는 것이 아니다. 왜 내가 불자로서 열심히 수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자신의 삶에서 생생하게 깨닫는 시점이 있어야 한다. -118~119p

기도를 왜 하는가? 내가 변하기 위해서 기도한다. 어떻게 변화하기를 원하는가? 중생이 아니라 부처가 되기 위해서, 중생에서 부처로 변하기 위해서 기도한다. 이러한 마음을 놓치지 않아야 스스로 바뀔 수 있다. -127p

500원짜리 동전의 앞면에는 학이 그려져 있고, 뒷면에는 500이라는 숫자가 쓰여 있다. 앞에서 보면 학이 보이고 뒤에서 보면 숫자가 보이지만 둘은 똑같은 500원짜리 동전이다. 수행도 마찬가지다. 수행의 공덕, 수행의 결과를 어ᄄᅠᇂ게 할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수행을 바라보면 그것이 기도다. -132p

교리를 깊이 알고 불교학에 박식하다 하더라도 귀의하지 않고 발원하지 않으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이 아니며 진정한 의미의 불자라고 할 수 없다. 반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모른다 하더라도, 매일 잊지 않고 진심으로 귀의하고 발원한다면 그 사람은 참된 의미의 불자라 할 것이다. -150p

『천수경』은 신묘장구대다라니라는 진언을 제대로 독송하기 위해 준비된 경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다라니가 엄청난 에너지를 담고 있는 진언이기 때문에 달랑 진언만 외우는 것이 아니라 앞뒤로 귀의하고 참회하고 발원하는 과정을 함께하는 것이다. -154p

나를 나이게 하는 무엇, 즉 자성이 있다면 내가 아무리 중생으로서의 나를 바꾸기 위해서 노력해도 나는 바뀔 수 없는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본능적으로 무자성을 체험한다. 노력하면 내 자신이 바뀐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것이 바로 자성이 없다는 증거이다. 자성이 없기 때문에 어떤 때에는 좋은 행동을 하고, 어떤 때에는 나쁜 행동을 한다. 나쁜 행동을 했을 때 참회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애시당초 ‘나’라는 것은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매 순간의 행동 하나하나, 생각 하나하나가 곧 ‘나’에 다름 아니다. -167p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를 가피라고 한다면, 공덕이란 농부가 땅을 열심히 일구는 것이다. 부지런한 농부가 비료도 주고 김도 매고 돌도 골라낸 밭에만 비가 내리는 것은 아니다. 게으른 자가 조금도 돌보지 않는 밭에도, 돌무더기나 자갈밭에도, 공장 폐수가 스며들어 아무것도 자랄 수 없는 땅에도 비는 내린다. 이 중에서 씨앗을 틔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곳은 부지런한 농부의 기름진 밭이다. -182p

수행하는 자라면 제일 먼저 삼보에 귀의하는 마음을 내야 한다. ‘내가 열심히 하면 된다’는 아상을 버리고 부처님 법대로 생각하고 승가의 계율에 따라서 살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내 수행의 공덕을 주변에 나누겠다는 마음으로 수행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모든 중생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의지를 불보살님 앞에서 맹세하는 것으로 항상 수행을 마무리해야 한다. 삼보에 귀의하고, 공덕을 쌓고, 불보살님께 서원하는 것. 이것이 수행이며, 이것이 불자들의 올바른 삶의 모습이다. 매일 듣는 축원문에 이 모든 내용이 들어 있다. -202~203p

출가한 스님과 재가자인 자신은 다른 존재라고 여기는 불자들도 많다. 그러나 불자들이 절에 다니는 이유는 재가자와 출가자가 결코 다르지 않음을 알기 위해서다. 스님들은 조금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수행하고, 재가불자는 현실 여건상 스님들보다 조금 덜 수행할 뿐이지 출가자와 재가자 모두는 일불제자(一佛弟子)이며, 부처님의 깨달음을 향해서 함께 수행정진하는 도반이다. -207p

불교에는 삼세불(三世佛)이 있다. 현재불은 석가모니불이고 과거불은 연등불이고 미래불은 미륵불이다. 왜 과거·현재·미래불이 따로 있는가? 그 이유를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부처님이 발견한 진리는 연기법이다. 연기법은 변하지 않는 진리이므로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연기법을 현재에 발견하고 깨달음을 얻은 분이 석가모니 부처님이라면 과거 시대에도 연기법을 발견하고 깨달은 부처님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253p

“내게 꽃과 향을 올리며 존경을 표하는 사람은 나를 진실로 존경하는 사람이 아니다. 높고 낮은 법을 얻기 위해 열심히 수행하는 사람이 나를 진실로 존경하는 사람이다.” -298p

왜 하필이면 윤달에 생전예수재를 지내는 것일까? ‘윤달에는 송장을 거꾸로 세워도 탈이 나지 않는다’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윤달은 덤으로 있는 달이라 윤달엔 뭘 해도 괜찮다고 여겨지는 속설이 민간에 오래전부터 퍼져 있었다. 그래서 현세의 복만이 아닌 내생의 복까지 닦는 생전예수재를 지낸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304p

절에서는 제사 대신에 ‘재(齋)’라는 표현을 쓴다. 재는 ‘삼가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에 속가에서 말하는 ‘제사’라고 하지 않고 ‘재’라고 명명하였다. 재의 핵심은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304p

동양에서는 북두칠성 혹은 칠성님과 연관에서 7을 길한 숫자라고 생각했다. 칠월 칠석은 날짜에 7이 두 개나 들어가니 엄청나게 길한 날이었다. 그다음으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아무래도 일 년을 시작하는 정월의 7일이었다. 한 해를 열면서 우리 마을과 가족들의 무사 안녕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민초들에게 가장 친근한 칠성님에게 기도를 올린 것이다. 이렇게 마을공동체에서 이어져 온 풍습이 절 안으로 들어와 오늘날의 정초기도가 되었다. -324p

선업을 행한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일을 할 때 즐거운 마음으로 사심 없이 행복하게 일을 하면 그것이 나에게 좋은 과보로 쌓이게 된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공덕을 쌓는 일이라고 이야기했다. -341p

기도나 정근을 할 때 누군지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축원을 해보자. 이기심이 아니라 순수한 자비심을 내보자. 이렇게 순수한 자비심으로 축원할 수 있다면 이것이 곧 자비심을 키우는 수행이다. 우리들을 이기심과 욕심의 족쇄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길이다. -361p

언론사 서평 위로
내용을 입력하세요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