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해는 변함없이 태고의 고요과 신기로움을 안겨준다. 몇 만년 변함 없는 새 아침의 선물은 정녕 영원히 새로운 태고의 선물이다. 그런데 이같이도 싱그럽고 이같이도 찬란한 아침에 어쩌면 이같이도 세계의 가슴은 어지러운 것일까. 세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세계 구석구석에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 대립 갈등과 슬픔의 아우성은 긴 한숨소리와 함께 끊길 날이 없다. 이같이도 찬란한 고요 속에서 말이다.
그것은 모두가 미혹과 번뇌에 시달리는 생명의 아우성이다. 맑고 밝고 진실한, 끝없는 꿈의 날개를 펼칠 생명의 넋들이 미혹에 휘둘리고 번뇌에 좀먹혀 처참한 가슴을 안고 울부짖는 그 소리다. 그러기에 삼계(三界)는 화택(火宅)이라 했었다. 중생 세계는 고해(苦海)라 했었다. 그러기에 부처님은 이 세계 이 중생을 건지시고자 이 땅에 오셨고 끝 없는 법문을 열어주셨다. 그러기에 중생 구원의 법문을 담아 세운 불교 교단은 이 땅, 이 세계 모든 중생을 건지는 영원한 광명이고 감로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세상이 어지럽고 불길에 싸이고, 중생이 혼들리고 고통의 아우성이 드높을수록 불법교단에 대한 여망과 기대는 더 할 나위 없이 막중하다. 실로 불법교단은 이 땅을 밝히는 영겁의 광명 깃대이며 세간을 밝히는 청정한 물줄기이고 중생의 가슴 속 불길을 잡고 생명의 혼을 불어넣는 감로의 원류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 불교 교단의 실정은 어떠한가. 과연 그 모습이 건전하고 그 맑은 감로의 물줄기가 오늘도 소리 높이 흐르고 있는가. 천 六백년을 끊임없이 흘러서 겨레에게 문명의 아침을 가져다주고 역사에 광휘를 주며, 겨레의 가슴에 빛나는 슬기와 따스한 자애로움과 억센 용기를 부어준 그 도도한 물결은 오늘 이 시간 정말 건재한가. 우리는 슬픈 마음으로 이 점을 되묻지 않을 수 없으며 한편 아픈 가슴을 가눌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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