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력보살로 왔다간 대원 장경호 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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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력보살로 왔다간 대원 장경호 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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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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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원력

이십대에 참선수행을 시작한 대원(大願) 장경호 거사가 평생 견지했던 사상은 ‘심조만유(心造萬有)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곧 마음이 모든 것은 만든다는 ‘마음’의 철학이었다. 십대의 나이에 이미, 무한한 지혜 공덕과 빛과 생명을 지니고 있는 ‘마음’을 발견한 그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 마음의 위대한 힘을 믿었다.

그 마음이 부처와 다름 아님을 믿었고, ‘나’와 ‘내’가 둘이 아님을 믿었으며, 인과가 필연적임을 믿었으니, 그 믿음을 바탕으로 삶을 경영했고 기업을 경영했던 것이다. 죽음을 앞두고 그가 마지막 가족, 혹은 세상을 향해 던진 메시지도 ‘심조만유(心造萬有)’, 즉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가 걸었던 수행의 여정을 살펴보면 17살에 처음 불교에 입문했고, 20대 초반에 불교를 통해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발견, 참선수행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0~40대엔 참선수행은 물론, 많은 선지식들을 찾아다니면서 법을 물었으니, 그의 수행정진은 이때 가장 왕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50대 초반, 전쟁 중에도 산사의 선지식을 찾아 수행을 할 만큼 그의 공부는 깊었으며, 60대에는 사업의 일선에서 물러나 산사에서 안거를 나면서 집중수행을 했다. 그는 마음의 힘을 굳건히 믿고 참선 수행을 하다가 27살에 처음 안거에 들어가게 되는데, 3개월간의 안거가 끝나는 해제날,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곳을 향해 무릎을 꿇고 서원했다.

“부처님, 이제 저는 사업을 하여서 돈을 크게 벌겠습니다. 그리고 사업을 해서 얻어진 이윤을 국가의 은혜와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데 회향하겠습니다.”

그 맑고 간절한 서원 때문이었을까, 그는 첫 안거 해제날의 그 서원 이후, 사업을 일으켜 이 땅의 민간 철강 제일의 동국제강을 일으켰고, 그 사업의 성장과 함께 국가와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았다.

사업가이자 구도자였던 대원 장경호 거사

32살에 가마니장사를 시작으로 해서 1949년 6·25전쟁이 나기 직전 못을 제조하는 회사를 인수해서 조선선재라는 회사를 설립했는데, 전쟁 때 못의 폭발적인 수요로 인해 엄청난 부를 축적해서, 1954년 지금의 동국제강을 창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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