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 같은 터널을 벗어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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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 같은 터널을 벗어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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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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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스승

10년 전, 배낭과 등줄기를 땀으로 흠뻑 적셨던 여름날 밤, 칠흑같이 어두운 지리산 길목을 내려오다가 그만 길을 잘못 들어서 위험천만한 계곡으로 내려온 적이 있었다. 끝도 없는 험한 바윗길로 내려오면서, 지리산을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생각했던 자만심은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 식은 땀을 흘리며 절망하고 있을 때, 생명의 은인이라 할 수 있는 한 산악인을 만나서 무시무시한 죽음의 계곡을 탈출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한밤중에 잘못 들어간 이 계곡은 사고다발지역이라서 입산이 금지된 칠선계곡이었다.

지금도 그 날의 기억을 더듬으면, 온몸의 세포들이 몸부림을 친다. 그 때, 그 산악인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도 황천길에서 지리산 도인(?)을 만났을 것이다. 위험천만한 길을 어둠이라는 미혹과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제 발로 걸어 들어간 경험과 같이, 칠흑같이 어두운 사바세계의 긴 터널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진리의 등불이 되어줄 선지식, 즉 스승이 반드시 필요하다.

생활 속의 화두를 놓치지 말아야

끊임없이 일어나는 진리에 대한 갈구로 항상 목마름을 느끼며 헤매고 있을 때, 허깨비 같은 상을 여지없이 깨뜨려주셨던 소중한 스승을 소개하고자 한다. 춘성 노스님의 회상인 도봉산 망월사의 걸출한 선승 중 상족(上足)이셨던 대선(大善) 스님.

해인사 선원에서 사라진 이후, 지금은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의 조용하고 아담한 정원을 안고 있는 홍련 만발한 홍련암(紅蓮庵)에서 벌써 20년째 두문불출하며 인연 있는 재가불자를 육성하고 계신다.

우연한 계기로 스님과 인연을 맺은 이후, 매달 홍련암으로 철야를 하러 내려간다. 아침이면 항상 스님께서 간밤의 공부 내용을 물어보시고 세밀하게 가르쳐주신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특히 춘성, 성철 큰 선지식들을 모시면서 공부하셨던 스님의 이야기를 양념처럼 곁들여서 구수하게 지도해주신다. 스님의 가르침을 듣지 않으면, 밥을 먹고 숭늉을 마시지 않은 것처럼 허전함이 있을 뿐이다.

어느 날 아침, 스님과 공양을 마치고 난 뒤 스님께서 불쑥 밀짚모자를 쓰시고 연밥을 따러 가자고 하셨다. 대나무 작대기를 들고 연밥을 따시던 스님의 손길은 연신 쉬지 않고 움직이시면서 간밤에 공부가 어떠했는지 자상하게 여쭤보셨다. 이 정도면 간밤의 공부가 아주 훌륭하였다고 생각한 나는 스님께서 칭찬과 격려를 해주실 것이라는 기대 섞인 마음으로, 마치 무용담을 늘어놓듯이 스님께 공부 내용을 일렀더니, 스님께서는 정색을 하시면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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